넷플릭스 스페셜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 포스터

넷플릭스 스페셜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 포스터 ⓒ Netflix

 
영화 <부산행>의 성공 이후, 대한민국에서 '좀비'는 더이상 생경한 B급 영화 소재가 아니게 됐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은 그러한 흐름의 결정타였다. 김은희 작가와 김성훈 감독은 무대를 조선시대로 옮겼다. 상투 머리에 한복을 쓴 채 달려드는 좀비를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킹덤>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장르물인 동시에, 치밀한 정치 스릴러이기도 했다. 세도 가문 해원 조씨가 권력의 연장을 위해 생사역(좀비)을 만들고, 역병이 임금으로부터 민초들에게 전파된다는 설정은 지극히 정치적이었다.
 
피 칠갑을 한 좀비들은 인간의 살과 피를 탐하며, 세도 정치가들과 왕실은 타인의 피를 밟으면서 권력을 탐한다. 데칼코마니처럼 펼쳐지는 피의 구도가 흥미롭다. 이 작품은 세자 이창(주지훈 분)으로 대표되는 성장형 히어로 서사이기도 했다. 서자인 그는 본래 언제든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컴플렉스로 가득 찬 인물이었지만, 여정을 거듭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체화한 인물로 성장하게 된다.

"난 다르다! 난 이들을 버리고 간 이들과도 다르고! 해원 조씨와도 다르다! 난 절대로 이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킹덤> 속 이창 대사)

<킹덤>의 앞선 시즌이 세자 이창의 성장 서사였다면, 지난 23일 공개된 스페셜 에피소드 편 <킹덤: 아신전>(아래 <아신전>)의 온도는 조금 다르다. 이 이야기는 시즌2 마지막 장면에 등장했던 아신(전지현 분)의 전사(前史)다. 아신은 인간을 좀비로 만드는 약초인 '생사초'를 전역에 퍼뜨린 주범이다.

입체적인 이야기, 아래로부터의 혁명
 
 넷플릭스 스페셜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 스틸 컷

넷플릭스 스페셜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 스틸 컷 ⓒ Netflix

 
극 중에서 아신은 조선인이 아니다. 조선 번호부락에 밀집해 살았던 '성저야인' 출신 여성이다. 성저야인은 조선 땅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온 여진족들을 일컫는다. 성저야인들은 여진족으로도, 조선인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채 천민 취급을 받으며 차별에 노출된 채 살아왔다. 경계인의 출신 성분은 <아신전>의 서사를 만드는 시발점이다.
 
<남한산성>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국내 시대극에 등장하는 조선은 언제나 중국에 사대의 예를 갖추는 약자로 등장했다. 그러나 김은희 작가가 그린 조선은 약자가 아니다. 어린 아신(김시아 분)은 민치록(박병은 분)에게 가족의 원수인 파저위 여진족을 벌해 달라고 간청하면서 "조선은 강한 나라이니 충분히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어린 아신의 이 대사는 글자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우리가 역사책에서 접해 온 조선은 거대한 중국에 치이기 바쁜 국가였으나, 성저야인들이 바라본 조선은 범접할 수 없는 '대국'이었다. 야심찬 전복이다. 누구나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기득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보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신전>의 이야기는 이주민 혐오가 고개를 들고 있는 2020년대의 대한민국과도 동떨어져 있지 않다.  
 
아신을 경계인으로 설정한 선택은 이 이야기를 더욱 입체적으로 키우는 선택이었다. 대국이 소수 민족에게 가하는 폭력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민자, 천민, 그리고 여성인 그가 겪는 차별은 이중적, 삼중적이다. 밑바닥에서 모든 것을 빼앗긴 아신은 자신이 서 있어야 할 곳을 정하게 된다. 그에게는 조선과 여진족이 모두 척결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 

새로운 <킹덤>의 기둥, 아신의 탄생 
 
 넷플릭스 스페셜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 스틸 컷

넷플릭스 스페셜 에피소드 <킹덤: 아신전> 스틸 컷 ⓒ Netflix

 
서늘한 눈빛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의 전지현이 인상적이다. <아신전>은 자연스럽게 쿠엔틴 타란티노가 선보였던 폭력의 미학을 소환한다. 여성 캐릭터가 살육전을 벌인다는 점에서는 <킬 빌>이 떠오른다. 공동체를 대신하여 무자비한 복수를 한다는 점에서는 <장고: 분노의 추적자>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 우리가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면서 불편한 기색 없이 웃을 수 있었던 것은, 폭력에 당해도 문제 없는 대상에 대한 합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신전> 역시 그 폭력의 근거를 충실히 제공하고 있다.
 
<아신전>은 <킹덤> 시리즈 특유의 빠른 전개, 좀비들의 돌진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기대를 비껴간다. 극 초중반에는 아역배우 김시아가 아신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며, 주연 배우 전지현은 중반이 되어서야 등장한다. 인간 좀비가 날뛰는 것도 극후반의 일이다. 대신 <아신전>은 낯선 인물 아신의 서사를 천천히 쌓아가는 데에 성공했고, 세계관에 대한 이해를 돕는 프리퀄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동래와 상주를 넘어 조선 전역을 집어 삼키던 <킹덤>의 이야기는 이제 북녘 땅으로 뻗어 나간다. 이야기를 끊임없이 확장시키는 한편, 오늘날의 시대와 호흡하며 뒤를 돌아볼 줄 아는 김은희 작가의 역량이 빛났다. 또 다른 외전 <세자전>과 시즌3를 준비하고 있는 '킹덤 유니버스'에서 아신의 존재는 어떤 식으로 펼쳐질까.

이창과 그들의 일행이 '조선을 살리는 혁명'에 집중한다면, 아신은 파멸에 대한 욕구를 동력으로 삼는다. 어떤 식으로든 아신의 존재는 이 시리즈의 새로운 기둥이 될 것이다. 조선의 편도, 여진의 편도 아닌 자, 동시에 선으로도, 악으로도 규정될 수 없는 '안티 히어로', 복수귀 아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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