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갈매기>를 연출한 김미조 감독.

영화 <갈매기>를 연출한 김미조 감독. ⓒ 영화사 진진

 
시작은 어쩌면 사소할 수도 있는 하나의 풍경부터였다. 서울 삼성역 부근 탄천 길을 걷고 있던 중년 여성과 그의 뒤에서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좁히던 20대 남성, 두 사람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감독은 어떤 공포감을 느꼈고 그것이 지금의 영화 <갈매기>의 모티브가 됐다. 개봉을 앞둔 26일 서울 삼청동의 모처에서 김미조 감독을 만나 영화 관련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해 열린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을 받은 <갈매기>는 한 중년 여성의 변화를 끈질기게 붙잡고 있다. 두 딸의 엄마이자 오랜 시간 시장 한 공간에서 생선을 팔아온 오복(정애화)은 재개발 보상 문제로 함께 시위하던 동료 상인에게 몹쓸 일을 당한다. 힘겹게 사실을 털어놓은 그에게 남편은 "거부하지 않았으면 성폭행은 성립이 안 된다"는 말로 스스럼없이 상처를 준다. 

왜 가해자 편에 서나

"엄마와 닮은 분이 걷고 있었고, 한 남성이 바짝 따라붙었는데 대낮인데도 공포스러웠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약간의 장애가 있는 분인 것 같더라. 꽤 오래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아무일은 없었지만 만약 우리 엄마에게 혹은 내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떡하지 생각하다가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갈매기>가 특별한 지점은 피해 사실을 영화 안에 자세히 묘사하지 않고 당사자의 감정과 마음에 집중하는 데 있다. 감독의 의도였다. "피해자가 받은 고통이 어땠는지가 아닌 어떻게 고통을 극복하는지가 중요했다"고 그는 지난 언론 시사회 이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그 때문에 사건의 극적 묘사보단 한 중년 여성이 처한 현실과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영화에 녹이는 게 중요했다.
 
 영화 <갈매기> 스틸 컷

영화 <갈매기> 스틸 컷 ⓒ 영화사 진진

 
"젊은 여성의 피해 사례는 되게 많은데 나이든 여성의 성폭력은 수면 위로 올라온 게 많이 없었다. 그나마 영화 <69세>의 실제 모티브(20대 간호조무사가 노인을 성폭행한 사건)가 된 사건 정도였다. 그래서 오히려 성폭력 자체에 치중하지 말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여러 폭력, 집단 내 문제, 미투 운동 등을 바라보려 했다."

서지현 검사로부터 시작된 미투 운동, 대한항공 갑질 사건 등. 김미조 감독이 주목한 사건들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재개발 문제, 각종 폭로와 2차 가해 문제에 얽혀 있는 것도 감독이 실제 사건을 통찰한 결과였다.

"엄마의 친구분이 노량진에서 장사하셨다. 그때 구 시장과 신 시장 상인들의 갈등을 전해들으며 남일같지 않더라. 수 십년간 함께 장사하던 분들이 이권에 밀려 비극적 일이 일어난다는 게 재난이라 생각했다. 영화를 준비하며 60대 여성분들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엄마의 지인분들이다. 다들 (성폭력 같은 비극을 당해도) 절대 남에게 말 안 하고 묻고 간다고 하시더라. 

흥미로운 건 가해자 편에 선 사람들이었다. 잘못된 일인 줄 모르고 가해자 편을 드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그러는 것 같더라. 그리고 대부분 피해자들이 그 집단을 먼저 떠난다. 마치 정해진 순서인 것처럼 말이다. 성폭력 사건뿐 아니라 여러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양상이었다. 저도 공분하기도 했고, 스스로 묻기도 했다. '내가 그 집단 안에 있었다면 피해자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 하고."


영화화 과정에서 정애화를 비롯해 큰딸 역의 고서희, 막내의 김가빈 등 배우들은 모두 감독이 마음속 1순위로 꼽고 있던 이들이었다. 특히 실제로 감독의 친언니인 김가빈은 시나리오 수정 과정에서 여러 의견을 제시했고, 자매의 실제 성격들이 캐릭터에 반영된 경우였다. 

이처럼 자신에게 익숙한 것에서 시작해 남다른 통찰력으로 작품을 하나씩 내놓고 있는 김미조 감독의 등장이 반갑다. 극작가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너무나 좋아해 자신의 첫 장편 제목은 무조건 갈매기여야 했다는 점에서 일종의 뚝심도 엿보인다. 

"안톤 체호프의 작품이 인물들이 엄청 많이 나오잖나. 제가 복닥거리는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그런 게 매력적이더라. 남들이 보기엔 막장이라 하는 요소가 재밌게 느껴진다. 그리고 평소 영화를 볼 때 주인공보다는 그 주변 사람들에 눈길이 많이 가는 편이다. 그러면서 왜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이야기는 묻히는 걸까 생각하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일이 과연 전부 정의로운 걸까 생각도 든다." 
 
 영화 <갈매기>를 연출한 김미조 감독.

영화 <갈매기>를 연출한 김미조 감독. ⓒ 영화사 진진

 
한국영화계 기대주자

이런 의문에 평소 품고 있던 도발적 자세가 합쳐진 작품들이 단편 <혐오가족>과 <혀>다. 대학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한 뒤 다소 늦게 영화에 대한 애정을 느끼고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첫 장편 <갈매기>로 그간 자신이 겪은 변화와 성장을 담아내려 했다.

"두 단편을 할 땐 짖궂은 마음이 있긴 했다. 불편한 이야기를 왜 하면 안 돼? 그런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지금은 좀 달라진 게 영화로 누군가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건 어렵다는 걸 인정했다. 난 이런 견해와 생각을 갖고 있으니 제 영화를 보는 분들게 그런 걸 보이면서 재미와 위로를 드리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영화를 하기까지 스스로 재능이 있는지 많이 물어봤다. 영화는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괜히 뛰어들었다가 내 인생의 말로가 비참하면 어떡하나 두려움도 컸다. 방황하다가 제가 만든 단편이 공모전에도 입상하고 영화제에도 초청되며 일종의 확신을 갖게 됐다. '내가 재능이 아주 없는 건 아니구나' 조금씩 응원받는 느낌이랄까(웃음)."


영화계에 발을 들인 것에 "후회는 없다. 이미 후회하긴 늦었다. 영화 만드는 재미에 빠져버렸다"며 그는 웃어 보였다. 차기작으로 예정한 건 두 모녀의 복수극이란다. 이미 시나리오는 완성했고, 내년 촬영하는 게 목표라며 그는 "신인 감독에게 기회가 잘 오지 않으니 적극적으로 먼저 움직여보려고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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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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