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 포스터

<우리, 둘>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한 아파트에서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살고 있는 니나와 마도. 노년의 두 여인은 밖에서 바라볼 때는 사이좋은 친구이자 이웃이다. 이 둘에게는 비밀이 있다. 바로 20년 동안 사랑을 이어온 연인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일에서 은퇴를 한 두 사람은 로마에서 함께 남은 여생을 보내고자 한다. 생일 날, 마도는 가족에게 비밀을 털어놓던 중 그 충격으로 쓰러지고 만다. <우리, 둘>은 두 사람이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과정을 그린다.
 
작품은 독특한 재질로 퀴어 로맨스를 스릴러의 문법으로 완성한다. 이 스릴러의 감정적인 근저는 불안이다. 니나-마도-앤은 각자가 지닌 불안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다. 마도의 딸인 앤은 어머니가 가족을 속여 왔다는 점에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알아왔던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니나가 마도에게 접근하는 걸 막고자 한다. 쓰러진 마도를 앤이 데려가면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란 공포를 느낀다.
 
반대로 니나는 앤이 마도를 빼앗아갈 것이란 공포에 빠진다. 앤이 고용한 간병인을 몰아내는가 하면 병원에 보내자 그 장소를 알아내려고 시도한다. 노년의 니나에게 자신의 삶을 증명해줄 수 있는 존재는 마도가 유일하다. 보수적인 시대를 살아온 두 사람에게 사랑은 숨겨야 하는 것이었다. 시대가 변했다 한들 이때의 은밀한 감정과 사회적인 터부에 갇혀 있던 마도에게 이를 고백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둘> 스틸컷

<우리, 둘>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쓰러진 마도의 불안이 각각 니나와 앤에게 흘러간 이미지를 통해 심리적인 긴장감의 구도를 만들어 낸다. 이 불안이란 감정은 니나를 통해 갈망으로 심화된다. 사랑보다 욕망에 가까운 감정을 피워내면서 극적인 몰입을 더한다. 특히 니나가 침대 위 마도를 껴안는 장면은 어두운 화면에 오직 두 사람의 모습만이 보이도록 조명을 잡으면서 미장센에 전체적으로 진한 갈망이 느껴지도록 표현해낸다.
 
다양성의 가치에 중점을 두고 섬세한 감정을 잡아내는 데 주력하는 현재의 퀴어와는 다른 색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끌로드 샤브롤의 <의식>과 라이너 베르네 파스빈더 감독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표현과 정서가 합쳐진 모습을 보인다. 먼저 불안의 정서는 제목 그대로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 온다. 이 작품은 빈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중년여성과 외국인 노동자의 로맨스를 그린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와 인종을 이유로 주변의 싸늘한 시선을 받는다. 전후 독일의 파시즘을 주 소재로 다뤄온 파스빈더의 작품에는 불안이 내재되어 있다. 집단화된 사회의 편견이 주인공들에게 억압과 편견으로 작용한다. 그의 직선적인 연출은 부차적인 요소를 만들지 않고 중심인물에만 중점을 두며 그 불안을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이는 니나와 마도의 관계에만 집중한 <우리, 둘>의 연출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우리, 둘> 스틸컷

<우리, 둘>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부르주아 계층의 위선을 보여주며 이에 대해 노동계층이 복수를 가하는 내용을 다룬 <의식>은 사회적인 구조가 지닌 문제점에 대한 일종의 처벌을 보여준다. 동성애는 오랜 시간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었다. 그 구조에 의해 억압을 받았던 것이다. 니나가 마도에게 일종의 구출을 가하려 한다는 점은 앞서 언급했던 구조에 대한 처벌을 가하는 모양을 취한다. <의식>이란 제목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가정부가 일종의 처벌을 위한 '의식'을 치르는 주제의식을 지니고 있다면, 이 작품은 지난 20년간 숨겨왔던 사랑이 이들의 해방을 위한 의식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여기에 가정부가 부르주아 가정과 한집에서 지내며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묘한 긴장감을 형성하는 것처럼, 니나와 마도 역시 한 건물 그리고 같은 집에서 앤의 등장과 그들 사이의 사랑으로 인해 심리적인 긴장감을 묘하게 형성한다. 동시에 샤브롤 영화가 보여주는 실내에서 고정된 카메라를 통해 조명하는 인물의 모습 역시 담아내며 긴장감을 통한 갈망을 강렬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한다.
 
신예 필리포 메네게티 감독은 현대에 아트버스터로 각광받는 퀴어란 소재를 고전의 매력들로 표현하면서 다른 질감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마치 죽음이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기 전까지, 사랑을 멈추지 않겠다는 처절하면서 절절한 감정을 담아낸 이 작품은 섬세함을 갖춘 로맨스릴러의 매력을 선보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우리,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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