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MBC의 도쿄올림픽 개막식 진행 방송 중 한 장면.

23일 MBC의 도쿄올림픽 개막식 진행 방송 중 한 장면. ⓒ MBC

 
지난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미 지상파 방송인 NBC의 진행자가 일본선수단의 입장 당시 곁들인 소개 내용이 논란이 됐다. 일견 국내 뉴라이트 학자들이 할법한 식민지 근대화론을 닮은 해석이었다.

"일본은 한국을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식민지로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한국인은 일본이 문화, 기술, 경제적으로 변화의 매우 중요한 본보기였다고 말할 겁니다."

누리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NBC는 이를 무시하다 결국 평창올림픽조직위원회가 공식적으로 항의한 뒤에야 "한국 역사에 대한 부적절하고 무신경한 발언으로 많은 한국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며 못이기는 척 사과를 했다.

공교롭게도, MBC 또한 평창올림픽 당시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개막식에서 중계진으로 나선 방송인 김미화씨가 "아프리카 선수들은 지금 눈이라곤 구경도 못 해봤을 것 같다"는 등 비전문적이고 사견이 뒤섞인 멘트를 일삼았다 논란이 일었고, 급기야 김씨는 사과에 나서야 했다. 결과적으로, MBC는 평창올림픽 당시 지상파 3사 중 개막식 시청률 꼴찌란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이처럼 전 세계 200여개 국가가 참여하는 동하계 올림픽 개막식 중계는 자칫 타국 국민들에게 상처를 줄만한 '무신경한 발언'이 종종 문제가 되곤 한다. 특히 약소국이나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1세계 선진국 국가 방송인들의 우월적․배타적 시선과 관점이 문제란 지적이 이어진다.

4년 만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 중계를 위해 타국의 역사를 세세하고 균형 있게 공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 누구라도 각국의 방송을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시대임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무엇이 부적절한지는 분별하는,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를 걸러낼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맞다. 23일 도쿄 하계올림픽 개막식 중계에서 방송참사를 일으켜 뭇매(관련 기사 : 역대급 올림픽 중계 참사에 고개 숙인 MBC "배려·고민 부족")를 맞고 있는 MBC가 그랬어야 했다. 한데, MBC는 사과조차 사려 깊지 못했다. 사고를 치고선 수습마저 개운치 못한 모습이다.

 
 MBC는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단 소개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엘살바도르 선수단 소개에는 비트코인 사진을, 아이티 선수단 소개에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과 함께 시위 사진을 사용했다가 중계방송 말미에 사과한 바 있다.

MBC는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에서 우크라이나 선수단 소개에는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엘살바도르 선수단 소개에는 비트코인 사진을, 아이티 선수단 소개에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자막과 함께 시위 사진을 사용했다가 중계방송 말미에 사과한 바 있다. ⓒ 연합뉴스

 
침묵한 뉴스데스크
 
해당 국가 국민과 시청자 여러분께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MBC는 7월 23일 밤 도쿄 올림픽 개회식을 중계방송하면서 국가 소개 영상과 자막에 일부 부적절한 사진과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해당 국가 국민과 시청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문제의 영상과 자막은 개회식에 국가별로 입장하는 선수단을 짧은 시간에 쉽게 소개하려는 의도로 준비했지만, 당사국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 크게 부족했고, 검수 과정도 부실했습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잘못입니다.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드립니다.

MBC는 올림픽 중계에서 발생한 이번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영상 자료 선별과 자막 정리 및 검수 과정 전반에 대해 철저히 조사한 뒤 그 결과에 따라 엄정한 후속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나아가 스포츠 프로그램 제작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 유사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24일 MBC가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한 공식 사과문)

23일 밤 개막식 중계 말미 허일후 아나운서가 짤막히 사과한 이후 나온 정식 사과문은 이랬다. "정중히 사과"한다며 "해당 국가 국민"들을 소환했다. 그러나 한글 사과문이 전부였다. "당사국에 대한 배려와 고민"이 실제였다면 최소한 영어 사과문 정도는 준비했어야 옳다. 일각에서 재차 '눈 가리고 아웅'식 사과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또 이 정도 논란이 일었다면 적어도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에서 직접 사과를 하는 것이 옳았다. MBC의 선택은 달랐다. MBC는 이날 양궁 대표팀 안산․김제덕 선수의 첫 금메달 합작 소식을 메인으로 도쿄올림픽 소식만 4꼭지를 보도했다. 하지만 오프닝에도, 클로징에까지 그 어떤 사과도 없었다.

반면 JTBC는 해당 논란에 2꼭지를 할애하며 '맹폭'했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 영국 인디펜던트 등 외신의 반응을 전하는 동시에 '한국은 무례하다', '미쳤다'는 해외 누리꾼들의 비난을 소개하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13년 전 베이징 하계 올림픽 당시 MBC의 사고(?) 전력까지 길어 올렸다.

"MBC가 오늘(24일)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만, 사실 MBC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중계 때도 비슷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때도 개회식 때 국가 소개하면서 다른 나라를 비하하는 내용을 방송에 담았다는 지적을 받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중징계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사과문을 내놓고선 '쿨'(?)하게 넘기려던 MBC와 달리 올림픽 중계에서 제외된 '종편' JTBC가 논란의 불을 지핀 격이랄까. 어디 종편 뿐이랴. 나라 안팎에서 논란이 일자 CNN에 이어 가디언과 같은 주목도 높은 외신들이 줄줄이 관련 보도를 이어갔다. 이틀이 지난 25일까지 소셜 미디어 상에선 '나라 망신'이란 한탄이 끊이질 않는다. 

방송사는 모든 사안에 방송으로 답하는 것이 맞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도쿄올림픽 소식을 전한 <뉴스데스크>를 보며 시청자들은 MBC가 마치 소나기를 피하고보자고 작심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국내에 거주하는 러시아인까지 분노하는 상황을 안일하게 판단한 것은 아닐까.
이 자막 만들면서 "오? 괜찮은데?"라고 생각한 담당자, 대한민국 선수들이 입장했을 때 세월호 사진 넣지, 왜 안 넣었어? 미국은 911 테러 사진도 넣고? 도대체 얼마나 무식하고 무지해야 폭발한 핵발전소 사진을 넣어? (23일 러시아인 방송인 일리야 벨라코프 트위터)

4년 만의 아이러니

JTBC 보도 앞서 13년 전 베이징 올림픽 당시 MBC의 무신경하고 부적절한 자막을 길어 올린 것은 누리꾼들이었다. 올림픽 중계와 관련한 MBC의 흑역사가 인터넷 상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얘기다.

또 이명박 정부의 MBC 장악 전에도 금번 참사와 같은 일이 반복돼 왔었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또 2008년은 MBC 김재철 전 사장 취임 전이었다. 13년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중징계에도 불구하고 나아진 것이 없었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메인뉴스에서 사과조차 하지 않은 MBC가 23일 내놓은 사과문 속 재발방지 약속 또한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일각에선 이미 예견된 사고란 분석도 없지 않다. 올 초 MBC가 스포츠국 조직개편에 나서면서 인력난을 겪었고, 이전 올림픽 중계보다 현저히 적은 인력이 투입된 결과가 이번 중계 참사로 나타난 것 아니냐는 평가였다.

지난 5월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노보를 통해 "본사 PD들은 해설자 섭외, 방송 편성, 올림픽 경기 중 실시간 대응을 위한 자막시스템, 편집시스템, 정보검색시스템 등의 부조 설비 확충 등으로 정신없이 바빴고, (자사) MBC플러스 PD 2명이 합류했지만 국가대표 선수단의 선수촌 입촌이 시작돼 출전 선수나 감독들의 인터뷰가 들어가는 사전 제작물을 새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스포츠국 조합원들의 토로를 전한 바 있다.

그게 전부일까. 그렇다면 2008년의 유사한 사고는, 이후에도 끊임없었던 무신경한 중계와 사과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비단 인력의 문제가 아닌 올림픽 중계의 해묵은 관행이나 그로인해 쌓인 올드한, 부적절한 관점의 폐단이라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그래서다. 2000년대 들어 시청률 경쟁이 가열되며 좀 더 가볍고 자극적인, 흥미와 트랜드 위주의 진행과 화면, 편집을 쫓은 결과가 2021년에까지 해소되지 못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것은. 여기에 소셜 미디어 시대의 '밈'(Meem) 문화에 친숙한 직원들이 체르노빌 원전이나 드라큘라 영화 사진 등 쉽고 자극적인 화면을 연출했다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고.

도쿄 올림픽 개막식에 앞서 SBS의 예고편이 입길에 오른 바 있다. 마치 SBS 아나운서들이 독립운동에 나선 듯한 예고편의 뉘앙스는 우리네 '반일' 정서에 대한 의식을 넘어 그 '반일' 정서를 부추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청률 경쟁이 바탕에 깔리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다소 선정적이고 다분히 의도적인 영상이었다고 할까. 허나 시청률 경쟁이 불가피하더라도 지켜야 할 선은 존재하는 법. MBC의 금번 중계 참사는, 그에 이은 사과의 양상은 이를 감안하더라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아울러, 평창올림픽 당시 논란이 일자 김미화씨는 사과와 함께 "일베(일간 베스트) 사용자들의 악의적 조리돌림을 당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2021년 도쿄올림픽 개막식 중계 직후, 이제 'MBC는 일베 방송'이란 비난이 쏟아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는 중이다. 금번 중계 참사가 도쿄 올림픽 중계를 넘어 MBC 전체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셈이 됐다. 
 
MBC 도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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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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