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 중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입장하는 장면에서 체르노빌 원전사고 사진을 사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MBC가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 중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입장하는 장면에서 체르노빌 원전사고 사진을 사용해 논란이 일고 있다. ⓒ MBC

   
충격과 경악이라는 말조차 부족하다. MBC가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 화면에서 수많은 참가국들을 모욕하는 자료 사진과 자막을 남발하며 국제망신을 초래했다. 한국 방송사 역대 올림픽 중계를 통틀어 사상 최악의 참사라고 할 만했다.

MBC는 23일 오후 7시 30분부터 허일후, 김초롱 아나운서 진행으로 2020 도쿄올림픽 개회식을 중계했다. 문제는 각국 선수단 입장 장면에서 발생했다. MBC 제작진은 각국 선수단이 입장하는 장면에 각 나라 특성에 맞게 관련 사진과 설명 자막을 넣었는데, 그 내용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엽기적이었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입장하는 장면에서 삽입된 배경사진은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의 장면이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1986년 4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접경 지역에 위치한 원자로가 폭발한 대형 참사로 잘 알려져 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 시절 벌어졌던 사건으로 현재의 우크라이나를 설명하는 데는 맞지 않는 데다, 지금까지도 전세계적인 비극으로 기억되는 가슴 아픈 사건을 건드린 것이었다. 외국 방송사가 우리 선수단이 입장하는 장면에 5·18이나 세월호 사건 사진을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등장시켰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이 장면 하나로도 충분히 대형사고인데 MBC의 잘못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엘살바도르 선수들이 입장할 때에는 비트코인 이미지를 사용했다. 엘살바도르는 전 세계 국가 중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채택한 곳임은 사실이지만 반대 시위도 일어날 만큼 논란이 현재진행형이다. 굳이 올림픽과 크게 상관도 없는 비트코인을 해당 국가의 대표 이미지로 언급한 자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키려고 한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는 대목이다.

또한 아이티를 소개할 때는 최근 대통령 암살에 대한 언급과 현지 폭동 사진이 나왔다. 시리아에 대해서는 내전에 대한 내용이 언급되었으며, 마셜 제도에 대해서는 미국의 핵실험장이라는 모욕적인 자막이 등장하기도 했다. 말레이시아가 등장할 때는 스포츠와는 관계없는 국내총생산(GDP)이나 코로나 백신 접종 비중이 언급되기도 했다. 또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분리장벽이 화면으로 등장했고.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된 역사를, 파키스탄은 종교갈등과 인도로부터 분리독립된 내용 등이 언급됐다. 하나같이 관계된 국가들의 시각에서 봤을 때는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부적절한 사진과 자막들 다수
 
[올림픽] 후지산 성화대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가 타오르고 있다.

▲ [올림픽] 후지산 성화대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가 타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스포츠 제전인 올림픽 대회에서 여러 나라의 민감한 정치적 갈등과 관계를 거론하는 것은 금기에 해당한다. 해당 국가들에 대한 존중보다는, 제작자의 주관과 이념이 강하게 개입된 정치적-사회적 평가들이었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 심각하다.

아예 특정국가에 대한 조롱이나 장난스러운 희화화에 가까운 묘사도 많았다. 개최국 일본을 소개할 때는 초밥 사진이, 노르웨이는 연어 사진이 등장했으며, 루마니아는 드라큘라가 자료화면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서사모아의 배경화면에서는 영화배우 드웨인 존슨이, 도미니카공화국 때는 하필 약물 복용 전력이 있는 전직 프로야구선수 데이비드 오티스의 사진이 등장했다. 아프리카 국가인 가봉이 입장할 때는 광고를 이유로 중계를 끊기도 했다.

일개 유투버나 개인방송에서 이런 사고가 벌어졌더라도 엄청난 비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인데, 하물며 방송사인 MBC가 개회식 내내 이런 콘텐츠를 아무런 점검도 없이 내보냈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고 절망적이다. 

우려한 대로 MBC의 개회식 방송이 공개되자마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수많은 시청자들의 비판이 폭주했다. 해외 누리꾼들은 자국의 역사와 국가 이미지를 모욕한 데 대하여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국내 누리꾼들 역시 '나라 망신'이라며 MBC의 방송사고를 강력하게 성토하고 있다.
 
 MBC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 중 한 장면.

MBC 도쿄올림픽 개회식 중계 중 한 장면. ⓒ MBC

 
논란이 커지자 MBC는 결국 중계 방송 말미가 되어서야 사과했다. MBC는 자막을 통하여 "오늘 개회식 중계 방송에서 우크라이나, 아이티 등 국가 소개 시 부적절한 사진이 사용됐습니다. 이밖에 일부 국가 소개에서도 부적절한 사진과 자막이 사용됐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해당 국가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성의없는 몇 줄짜리 자막으로 성난 여론을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MBC의 공개적인 정식 사과와 함께 사실규명이 있어야 한다. 제작에 관계된 모든 이들에 대해서는 엄중한 문책과 구체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한국 방송사에 역대급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단순히 MBC나 국내 시청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방송사고를 넘어섰다. 전세계인들에게 송출되는 올림픽 중계에서 벌어진 참사로, 수많은 올림픽 참가국들을 모독하고 대한민국의 국격까지 떨어뜨린 중대한 사건이다. 분명한 해명과 조치가 없다면 MBC가 앞으로도 올림픽을 중계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MBC방송사고 올림픽개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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