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들이 개봉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1996년은 '블록버스터 공습의 원년'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여름시즌을 중심으로 많은 대작 영화들이 개봉했다. <스피드>의 얀 드봉 감독이 만든 재난 블록버스터 <트위스터>가 있었고 오늘 날까지 꾸준히 제작되고 있는 톰 크루즈의 명작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도 그 해 시작됐다. 마이클 베이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더 록>도 빠지면 섭섭한 대작이다.

1996년 여름 시즌에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온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흥행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92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트위스터>는 세계적으로 4억94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거뒀고, 80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든 <미션 임파서블>도 4억5700만 달러를 벌어 들이는 짭짤한 수익을 남겼다. 북미에서 다소 아쉬운 성적(1억3400만 달러)을 남긴 <더 록>도 해외시장에서의 선전으로 3억3500만 달러를 벌어 들였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하지만 수 많은 블록 버스터 영화가 쏟아져 나온 1996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영화는 따로 있었다. 바로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7500만 달러)와 화려하지 않았던 캐스팅, 그리고 명성이 썩 높지 않았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만든 <인디펜던스 데이>였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외계인의 지구 침공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화려한 CG, 그리고 절묘한 개봉시기가 어우러지면서 1996년 최고의 흥행작으로 우뚝 섰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세계 박스오피스 8억 달러 시대를 연 25년 전의 최고 흥행영화였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세계 박스오피스 8억 달러 시대를 연 25년 전의 최고 흥행영화였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사이즈로 승부하는 재난 영화 성애자(?)

아기자기한 미적 표현이나 디테일에 집중하는 감독이 있는가 하면 이야기의 촘촘함에 신경을 쓰는 감독도 있다. 하지만 독일(구 서독) 출신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미장센도도, 디테일도, 스토리도 아닌 커다란 스케일과 화끈한 물량 공세로 오락 영화를 만드는데 재능을 보이는 감독이다. 영화 마니아들에게는 스토리와 구성이 빈약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그 이상의 볼거리를 제공하며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켰다.

80년대 서독에서 SF영화들을 만들던 에머리히 감독은 1990년 할리우드와의 합작 영화 <문44>를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미국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1992년 장 끌로드 반담과 돌프 룬드그렌이 출연한 <유니버셜 솔저>를 통해 할리우드에 입성한 에머리히 감독은 1994년에 만든 SF판타지 <스타게이트>를 통해 세계적으로 1억96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리며 할리우드의 흥행 감독으로 떠올랐다.

독일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외계인에게 깊은 관심을 보여온 에머리히 감독은 1996년 지구가 외계인의 침공을 받는다는 내용의 SF 액션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를 선보였다(에머리히 감독은 제작자 딘 데블린과 함께 각본 작업에도 참여했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단순한 스토리로 비평가들에게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통쾌한 액션에 목말라 있던 관객들은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해 준 오락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 열광했다.

<인디펜던스 데이>는 세계적으로 8억1700만 달러의 성적을 남기며 크게 성공했는데 이는 오늘 날까지 에머리히 감독이 만든 영화 중 최고의 흥행기록이다. 물론 이듬 해 <타이타닉>에 의해 금방 깨졌지만 <인디펜던스 데이>는 역대 최초로 세계 흥행 8억 달러 시대를 연 영화였다. 국내에서도 1996년 7월에 개봉해 서울에서만 92만 관객을 모으며 크게 성공했고(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199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각효과상을 수상했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성공 이후 에머리히 감독은 본격적으로 '재난 영화 성애자'로서 정체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투모로우>나 <2012>처럼 흥행에 성공한 영화도 있고 <페트리어트>나 <10,000 B.C>, <화이트 하우스 다운>처럼 아쉬운 성적을 남긴 영화도 있다. 에머리히 감독은 지난 2016년 20년 만에 <인디펜던스 데이>의 속편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를 선보였지만 전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성적으로 관객들을 실망시켰다.

눈이 즐거운 화려한 볼거리의 향연
 
 영화 초반에 나오는 백악관 폭파씬은 <인디펜던스 데이>를 상징하는 명장면이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백악관 폭파씬은 <인디펜던스 데이>를 상징하는 명장면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개봉 25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인디펜던스 데이>는 그저 평범한(?) 오락 영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인디펜던스 데이>의 제작과 개봉은 영화계뿐 아니라 정치권에서 관심을 가졌을 정도로 크게 화제였다. 특히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은 <인디펜던스 데이>를 빨리 보기 위해 개봉 직전 백악관에서 특별 시사회를 개최했을 정도(외계인의 공격으로 백악관이 터지는 장면이 나올 때 에머리히 감독은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인디펜던스 데이>는 외계인과 지구인(정확히 말하면 미군)의 대결을 그린 영화지만 사실 중반까지 지구는 외계인들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워싱턴과 뉴욕, LA 등 대도시를 비롯해 백악관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등 미국의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폭파당하는 장면을 정교한 CG로 구현해 냈다. 특히 <인디펜던스 데이>의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백악관 폭파는 임팩트가 워낙 강해 훗날 상업 광고 등에서도 꾸준히 오마쥬(혹은 패러디)됐다. 

외계인의 공격을 받은 지구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겁에 질리지만 오로지 미 해병대의 전투기 조종사 스티븐 힐러 대위(윌 스미스 분)는 계곡 사이에서 외계인의 전투기를 격추시키는 활약을 펼친다. 아직 의식이 남아 꿈틀대고 있는 외계인에게 강펀치를 날리고 "지구에 온걸 환영해"라고 외치는 장면은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으로 꼽힌다(윌 스미스는 이듬 해 <맨 인 블랙>에 출연하면서 '외계인 퇴치 전문배우'가 됐다).

사실 <인디펜던스 데이>는 철저한 미국 우월주의 영화다. 특히 최종 결전 이전에 미국대통령(빌 풀만 분)이 "오늘은 전 인류의 독립기념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연설하는 장면은 손, 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간지럽다. 하지만 실제로도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만약 현실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세계는 미국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미국 자본으로 만든 미국의 상업 영화에서 미국인이 영웅이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2016년에 개봉한 <인디펜던스 데이: 리써전스>에서는 대통령 역의 빌 풀만(임기가 끝나 전 대통령이 됐다), 데이빗 레빈슨 역의 제프 골드브럼, 브랙키쉬 오쿤 역의 브렌트 스피너 등 전편의 주요 인물들이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인디펜던스 데이>가 낳은 슈퍼스타 윌 스미스는 속편에 캐스팅되지 못했고 극 중에서는 신형 전투기 시험 비행 중 사고사한 것으로 처리됐다. 대신 '토르' 크리스 햄스워스의 동생 리암 햄스워스가 파일럿 역으로 새로 투입됐다.

외계인의 신호를 처음으로 눈치 챈 인물
 
 제프 골드브럼은 <쥬라기 공원>의 말콤 박사와 마블 시리즈의 그랜드 마스터 역으로도 유명한 배우다.

제프 골드브럼은 <쥬라기 공원>의 말콤 박사와 마블 시리즈의 그랜드 마스터 역으로도 유명한 배우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무지한 지구인들은 외계인들이 보낸 경고로 감지된 위성의 신호를 운석의 낙하 정도로 취급하려 한다. 하지만 외계 지적 탐사팀의 데이빗 레빈슨 박사는 신호의 패턴을 정확히 파악하고 외계인이 지구에 적대적임을 가장 먼저 알게 된다(물론 그 역시 백악관이 폭파되는 1차 공격은 막지 못했다). 외계인의 우주선에 바이러스를 침투시켜 방어막을 사라지게 만들자는 의견을 제시한 인물 역시 레빈슨 박사였다.

데이빗 레빈슨 박사를 연기한 배우 제프 골드블럼은 70년대 중반부터 배우로 활동하다가 1986년 리메이크작 <플라이>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한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이안 말콤 박사로 익숙한 얼굴이다. 최근에는 마블 시리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와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그랜드 마스터를 연기했다.

10년 전 외계인에게 납치됐다가 생체 실험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러셀 캐시(랜디 퀘이드 분)는 마을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지구를 구한 인물은 바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러셀이었다. 러셀은 과거 베트남전 참전과 경비행기 조종 경력으로 핵미사일이 장착된 전투기를 조종하게 된다. 그리고 미사일이 불발돼 퇴각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홀로 외계인 우주선으로 돌격해 핵을 폭발시켰다.

그가 외계인 우주선으로 돌진하면서 "야 이 놈들아, 내가 돌아왔다"라고 외치는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짠한 러셀의 유언이었다. <투모로우>, <루키> 등으로 유명한 데니스 퀘이드의 친형이기도 한 랜디 퀘이드는 1973년 <마지막 지령>으로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바 있다. 랜디 퀘이드는 2005년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제이크 질렌할과 고 히스 레저를 고용하는 목장주인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윌 스미스 제프 골드브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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