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수비하는 이상민 2일 일본 이바라키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조별리그 B조 1차전 대한민국 대 뉴질랜드 경기. 이상민이 헤딩으로 크리스 우드를 수비하고 있다.

▲ [올림픽] 수비하는 이상민 2일 일본 이바라키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조별리그 B조 1차전 대한민국 대 뉴질랜드 경기. 이상민이 헤딩으로 크리스 우드를 수비하고 있다. ⓒ 연합뉴스

 
"뉴질랜드는 쉽지 않은 상대다. 사실상 성인 국가대표팀이다."

김학범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이 도쿄올림픽 조별리그 첫 상대였던 뉴질랜드와의 경기를 앞두고 남긴 평가였다. 김 감독은 올림픽 조추첨이 끝나고 한국축구가 최상의 조편성을 얻었다는 장및빛 전망이 나올 때에도 언론의 섣부른 낙관론에 일침을 놓으며 "결코 쉬운 조가 아니다"라고 할 만큼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김 감독의 우려는 안타깝게도 첫 경기 만에 현실이 됐다.

김학범호는 22일 오후 5시 일본 이바라키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2020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B조 1차전에서 0-1로 패했다. 후반 24분 역습에 나선 뉴질랜드는 조 벨의 중거리 슛이 정태욱의 발을 맞고 굴절된 것이 크리스 우드에게 연결되며 오른발 슈팅으로 득점으로 만들어냈다. 득점 직후 오프사이드가 선언돼 골이 취소되는 듯했으나 비디오 판독(VAR)을 거쳐 결국 득점으로 인정됐다. 한국은 만회골을 넣기 위하여 총공세를 펼쳤으나 안타깝게도 뉴질랜드의 골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B조에서도 최약체로 꼽히는 뉴질랜드는 한국이 반드시 잡아야 할 상대이자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상대였다. 뉴질랜드가 만만치 않은 상대가 될 것이라는 김학범 감독의 '진단' 자체는 옳았으나 정작 '처방'이 잘못됐다.

한국은 경기 내내 뉴질랜드를 거의 일방적으로 몰아붙였고 볼점유율은 최대 70%까지 이를 정도였다. 슈팅 숫자에서도 12-2로 압도했다. 하지만 축구란 결국 골을 넣어야하는 경기. 한국은 단 한 번의 역습과 유효슈팅에 허무하게 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뉴질랜드는 기대했던 와일드카드 우드가 골을 성공시킨 반면, 한국의 와일드카드인 황의조는 끝내 침묵했다.

하필 올림픽을 앞두고 가장 우려했던 불안요소가 현실이 됐다. 김학범호의 약점은 공격진의 다양성 부족에 있었다. 올림픽팀은 2선 자원이 어느때보다 풍부한 반면 최전방에서 마무리를 지어줄 스트라이커 자원은 황의조 단 한 명 뿐이었다. U-23 연령대에서 스트라이커 자원으로 활용되어 왔던 오세훈과 조규성이 이미 2차 소집부터 명단에서 제외됐다. 또다른 와일드카드 후보였던 손흥민은 스트라이커로도 활용이 가능한 자원이었지만 김학범 감독이 고심 끝에 차출을 포기하면서 2선 자원인 권창훈을 선택했다.

심지어 김 감독은 최종엔트리가 18명에서 22명으로 확대되었음에도 공격수를 추가 발탁하지 않았다. A대표팀 주전 공격수이자 유럽무대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은 황의조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뒷받침이 되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만일 황의조가 막히거나 대회 도중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축구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도 생각할 수 있을 법한 시나리오였지만, 한국대표팀에서 오직 유일하게 아랑곳하지 않은 인물이 바로 김학범 감독이었다. 우려한 대로 황의조는 뉴질랜드의 두터운 수비에 막혀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손발을 맞춘 지 얼마 되지 않은 올림픽 대표선수들과의 호흡도 아직 잘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한국 맞춤형' 전술 들고나온 뉴질랜드에 정곡
 
[올림픽] 아쉬움에 고개 숙인 황의조  22일 일본 이바라키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조별리그 B조 1차전 대한민국 대 뉴질랜드 경기. 0-1로 패한 한국의 황의조가 아쉬워하고 있다.

▲ [올림픽] 아쉬움에 고개 숙인 황의조 22일 일본 이바라키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조별리그 B조 1차전 대한민국 대 뉴질랜드 경기. 0-1로 패한 한국의 황의조가 아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황의조는 몸싸움이나 제공권을 이용한 포스트플레이보다는, 수비 뒷공간을 침투하는 데 능한 라인브레이커형 공격수다. 하지만 상대가 뉴질랜드처럼 라인을 깊이 내리고 밀집수비 전술을 펼친다면 황의조의 장점은 반감된다. 유럽팀에 가까운 뉴질랜드는 수비수들의 체격조건이 우수하여 황의조라도 최전방에서 등지고 공을 받은 상황에서 득점찬스를 노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김학범호는 뉴질랜드전에서 유효슈팅 2개를 그나마 황의조 혼자 기록했을 만큼 공격에서의 의존도가 너무 컸다.

공격이 풀리지 않자 김학범 감독의 대안이라는 것은 고작 2선 자원 이동준과 수비수 정태욱의 최전방 배치였다. 하지만 역시 스피드가 주무기인 이동준의 스트라이커 기용은 평가전에서도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고 더구나 상대가 뉴질랜드처럼 힘과 높이를 주무기로 하는 팀에는 오히려 부적합한 선택이었다. 궁여지책으로 갑작스럽게 타깃맨 역할을 맡긴 정태욱도 경기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물론 오세훈-조규성-손흥민이 있었다고 무조건 상황이 달라졌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확실한 '플랜B'를 준비하고 전장에 나서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김학범 감독은 상대를 잘 알아야 한다고 자만심을 경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자신의 팀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는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U-23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2020 AFC U-23 챔피언십 우승 등으로 이어진 거대한 성공과 찬사가 김학범 감독에게는 오히려 자만심과 독선을 초래하는 독이 된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김학범 감독은 아시아무대에서 분명히 큰 성공을 거뒀다. 수많은 선수들을 발굴하여 K리그와 A대표팀 주축으로까지 키워냈고, 황의조 역시 김학범 감독이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로 발굴해낸 이후 대성공을 거둔 선수다.

그러나 올림픽은 아시아 무대와 차원이 다르다. 참가국들의 수준이 더 높아진데다 아시아팀들과는 스타일도 전혀 다르기에 그에 맞는 대비가 필요했다. 오히려 한국축구가 올림픽 본선에만 9회 연속 출전하여 상대팀들도 이제 무시할수 없는 견제대상이 되었고, 실제로 뉴질랜드는 한국의 장단점을 분석하여 그에 어울리는 맞춤형 전술을 들고 나온 것이 김학범호의 정곡을 찔렀다.

올림픽 대표팀은 황의조 문제 외에도 이미 선수구성에서부터 잡음이 많았다. 와일드카드 손흥민의 차출 번복에서부터 소속팀의 동의를 얻지 못한 김민재 발탁에 집착하다가 대회를 닷새 앞두고 박지수를 대체 선발하며 실전에서 손발을 맞춰보지도 못하고 대회에 나서야 했다. 첫 상대인 뉴질랜드가 수비와 역습에 강점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면서도 김학범호는 그에 맞는 공략법이 전무했다.

더 걱정되는 것은 이제 겨우 첫 경기를 치렀을뿐이라는 점이다. 뉴질랜드가 한국을 어떻게 상대하는지 지켜봤을 루마니아-온두라스 등이 비슷한 전략을 들고 나온다면 앞으로의 상황은 더욱 험난해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남은 경기에서 2승을 거두더라도 시드니올림픽 때처럼 골득실을 따져야 하는 복잡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학범 감독은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있을까. 한국은 25일 오후 8시 이바라키 가시마스타디움에서 루마니아와 B조 2차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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