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제종합병원 간담췌외과의 이익준(조정석 분)은 동생 익순(곽선영 분)으로부터 친구 흉부외과의 김준완(정경호 분)과의 관계에 대해 듣게 된다. 익순은 이미 뻔한 이별을 했다며 준완에게 절대 자신이 아픈 것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간수치가 높았던 익순은 결국 간경변증을 진단 받는다. 오빠 익준에게 담담히 준완과의 이별을 전했던 익순은 익준의 차 안에서 준완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별 후에야 익준에게 공개되고 익순의 귀국과 질병은 이별한 준완에게 숨겨진다. 오빠의 절친한 친구와의 연애도, 연인에게 이별을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절친한 친구의 연인이었던 동생의 질병도, 쉽게 공개할 수 없는 '말 못할 사정'을 가지기 마련이다. 

병원 이사장 주종수(김갑수 분)는 어릴 적 소꼽동무인 소아외과의 안정원(유연석 분)의 엄마 정로사(김해숙 분)와 밥을 먹으며 사연이 없는 집은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세상의 많은 일들은 드러난 것 이상의, 저마다의 사연을 감추고 있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5화는 우리가 아는 것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라는, 자주 잊지만 늘 기억해야 할 사실을 전한다.

시모의 비틀린 관심과 석형의 태도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5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5화 한 장면 ⓒ tvN


산부인과의 양석형(김대명 분)의 엄마 조영혜(문희경 분)는 로사와 함께 병원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 석형의 전처 윤신혜(박지연 분)를 본다. 영혜는 로사에게 석형의 결혼은 빚투성이였던 신혜의 집안에서 재산을 노리고 벌인 계획적인 사기 결혼이었다고 말한다. 영혜는 신혜가 혼수로 해온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훔쳐 갔다며 지금 목에 걸린 목걸이의 다이아몬드가 그것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로사는 영혜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지만, 영혜는 확신에 차있다.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 이 판단에는 신혜의 사정이나 입장은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돈의 문제를 석형과 신혜의 결혼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영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가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영혜는 자신이 석형의 불행에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석형이 결혼한다면 더 행복해질 것 같다는 영혜가 자신 때문에 석형이 누군가와의 만남을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걸 안다면 어떤 기분일까. 자기 확신에 빠져 다른 이의 사정을 묻지도 들으려 하지도 않을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불행에 빠트리게 된다.

영혜와는 다르지만 석형 역시 신혜의 사정을 묻지 않았다. 석형은 엄마의 과도한 간섭과 비난으로 인한 신혜의 불행을 알고 나름의 방법으로 도우려 한다. 신혜가 엄마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져가는 걸 봤지만 모른 척했다는 석형의 이야기에 신경외과의 채송화(전미도 분)는 왜 이유를 묻지 않았냐고 묻는다.

신혜는 왜 시어머니에게 혼수로 준 다이아몬드를 가져갔을까. 아무도 묻지 않는 상황 속에서 신혜의 사정은 밝혀지지 않는다. 얼마나 힘들면 그랬을까라는 나름의 판단으로 석형은 묻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힘든 자신에게 유학을 권하고 친정에서 지내라는 남편을 보면서 신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시모의 반지를 훔치는 자신을 보고도 여전히 묵무부답인 석형에게 신혜는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하루에 30여 통의 전화를 해대는 시모의 비틀린 관심보다 무관심으로 읽히는 석형의 태도가 더 절망적이지 않았을까. 묻지도 말해지지도 않은 신혜와 석형의 속사정은 여전히 의문 속에 남겨져 있다. 때문에 그들의 이혼을 영혜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말해지지 못한 사정은 아직도 여전히 의문형이기 때문이다.

신혜가 석형에게 바란 것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5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5화 한 장면 ⓒ tvN

 
이혼에 이르기까지 두 사람의 사연을 전해 들은 송화는 석형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라고 주문한다. 석형은 주변인들과의 일반적인 친목을 피하고 업무에 필요한 대화만을 나누는 사람이다. 목적이 분명한 대화는 갈등을 일으킬 소지는 적지만 감춰진 말 못할 사정을 들추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말 못한 사정은 결국 큰 갈등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석형과 신혜가 사소한 싸움으로 서로를 좀더 이해할 시간을 가졌다면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이면의 이야기를 하려면 쓸데없는 말도 친밀하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누군가의 사정을 안다는 건 한편 부담스럽기도 하다. 안다는 건 일말의 책임감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게 된 모든 사정을 해결해 주거나 책임질 수는 없을 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 사람들이 그러한 것을 바라고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이들이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관심을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힘들었던 신혜가 석형에게 바란 것은 말 못할 사정을 이야기하며 함께하는, 그런 위안이 아니었을까. 
 
 tvN 목요드라ㅁ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5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ㅁ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5화 한 장면 ⓒ tvN

 
11살 소년의 심장를 기증 받은 은지의 엄마는 준완을 찾아 기증자 가족에게 감사 편지와 함께 준비한 선물을 전해달라고 부탁한다. 준완은 은지 엄마(이은주 분)를 만류하며 (이러한 소통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그녀는 "우리에겐 축복이자 기적이 다른 이에겐 불행이었다"면서 자신은 그걸 매일 기도했다며, 심장을 기증한 아이 몫까지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말한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31조 '비밀의 유지'에 따르면 기증자와 이식 대상자, 장기 등에 관한 정보를 발설해서는 안되는 조항이 있다. 장기 기증은 윤리적으로 많은 논란이 따르는 사안인 데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공개하는 데 따르는 해악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이러한 법령을 제정케 했을 것이다. 

은지 엄마는 은지의 수술 날짜와 같은 날 벌어진 기증자의 사고와 그에 따른 장기 기증 사실을 기사로 접했다. 아이의 사망으로 참담한 슬픔에 빠진 기증자 가족을 생각하며 은지 엄마는 안도 뒤 밀려드는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본인이나 가족의 생명을 빚진 기증자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망한 가족의 장기 이식 대상자가 누구라는 걸 아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어떨 것이라는 예상조차 무례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것이 생명과 관련한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할지 정하기 힘든 혼돈의 문제라면 서로 모르도록 묻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때론 말 못할 사정으로 남아야 할 수밖에 없는 일들도 존재한다. 그러한 진실은 은폐되는 것이 아닌, 공개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혼란으로부터 여러 사람을 보호한다. 

밝히는 것이 고민되는 일도 있는 반면, 꼭 밝혀야만 하는 일도 있다. 말기 간암인 익준의 최현숙(김현 분) 환자가 담관에 이상에 생겨 다시 입원한다. 현숙을 간호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이상을 감지한 익준은 현숙에게 혹시 도움이 필요한지 조심스레 묻는다. 사실 현숙은 매일 밤 술에 취한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었고, 이를 눈치 챈 다른 환자의 보호자는 병실을 바꿔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5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5화 한 장면 ⓒ tvN


현숙은 익준의 제의를 거절하지만 외과 레지던트 장겨울(신현빈 분)은 폭행 현장을 급습하고, 익준의 요청으로 예의 주시 중이던 경호팀이 출동한다. 남편이 잡혀 가자, 익준은 현숙을 중환자실로 보내고 보험 수익자는 남편에서 친정 엄마로 변경된다. 이후 현숙의 거취를 돕는 다양한 보호 장치들이 가동된다. 이에 현숙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이라도 마음 편히 보내고 싶다며,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로 마음 먹는다.

가정 폭력은 공개되지 못하고 은폐되는 속성이 있다. 주변에 알려진다 해도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가 개입하기 쉽지 않다. 현숙처럼 겁에 질린 피해자가 자포자기의 상태로 상황에서 벗어날 생각을 아예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폭력 행위를 묵인하고 피해자가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가정 폭력 피해자의 대다수는 신체적인 상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사정을 눈치 챈 외부의 개입과 도움이 몹시도 절실하다. 오랜 기간 폭력에 노출되어 무력감에 빠진 그들을 탓해서는 안된다. 가정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그곳을 벗어나도 살 길이 있다는, 아니 그곳을 벗어나야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우리와 사회가 주어야 한다. 

현숙을 방어하다 다친 겨울에게 정원은 그녀에게 자신이 모르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한다. 겨울은 정원에게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하지만, 늘 폭력 행위에 무모하게 나서는 겨울의 모습은 숨겨진 다른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새벽녘에 걸려온 겨울 엄마의 전화 역시 이러한 생각을 부추긴다. 

정원의 바람처럼 사랑하는 사람의 사소한 일까지 모두 다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누구나 말할 수 없는 한두 가지 비밀쯤은 감추고 있으며, 그 비밀들 대부분에는 상처가 동반되어 있기 마련이다. 겨울에게 건네는 정원의 다정한 말에는 사랑하는 이가 혼자 아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5화 한 장면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 5화 한 장면 ⓒ tvN


그러나, 사랑은 아픈 이야기를 하지 못하도록 막기도 한다. 익순은 준완에게 자신의 귀국도 병도 알리지 않는다. 오빠 익준의 따뜻한 관심 속에서 성실히 간경병증 치료를 받은 익순은 점차 건강을 회복한다. 그렇게 1년 여의 시간이, 누군가의 채 전하지 못한 말을 감추며 흐른다. 말하지 못하는 익순의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그 시간이 못내 안타까운 것도 어쩔 수 없다. 

어느 날, 헤어진 연인의 말 못할 사정을 마주하게 된 준완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때로 전해지지 않은 사실에 못내 분노가 치미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알았더라면 함께할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아쉽고, 혼자 감당했을 그 시간이 안타까워 가슴이 아프기도 할 것이다. 

무심한 시간 앞에서 말하지 못했던 그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보다 말하지 않았음을 탓하기는 쉽다. 우리에게 상대가 말해주지 않은 사연을 제 스스로 알아채는 능력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말 못할 사정 밑에 앙금처럼 가라앉은, 말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말 못할 아픔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에 게재됩니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한 귀퉁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녀입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