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스타를 육성하는 게 답이다. 선수들의 개개인의 능력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조직력이나 한국식 농구를 운운하는 것은 현실도피적 핑계에 불과하다. 한국농구의 초라한 국제경쟁력이라는 현실이 증명한다. 

대한민국 남자농구는 최근 국제무대에서 연이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조상현 감독이 이끄는 성인대표팀은 지난 6월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에서 조 2위로 본선진출에는 성공했으나 라이벌이자 홈팀 필리핀에게 두 번 연속 패했다. 곧이어 7월에 열린 도쿄올림픽 남자농구 최종예선에서는 리투아니아와 베네수엘라에 연패하며 25년 연속 올림픽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이무진 감독이 이끄는 한국 19세 이하(U-19) 남자농구 대표팀도 7월 라트비아에서 열린 U-19 월드컵을 15위로 마쳤다. U-19 대표팀은 프랑스, 아르헨티나, 스페인과 조별리그 경기, 미국과 16강전, 라트비아-푸에르토리코와의 순위결정전까지 내리 6연패를 당했으나 대회 마지막 날 같은 아시아팀인 일본과 15-16위 결정전에서 95-92로 승리하며 간신히 꼴찌만 면할수 있었다. 형님과 동생들 모두 세계농구의 벽이 높다는 것을 확인했던 씁쓸한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농구는 국제대회를 통하여 이현중(데이비슨대)-여준석(용산고)같은 차세대 유망주들이 세계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경쟁력을 확인하며 한가닥 희망을 남겼다. 두 선수 모두 성인 대표팀 승선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현중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리스트 성정아씨와 고려대와 삼성전자에서 선수로 활약한 이윤환씨 사이에서 태어난 농구인 2세다. 삼일상고 졸업 후 데이비슨 대학교에 진학한 이현중은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디비전1에서 동양인으로서는 드물게 당당히 주전급으로 자리잡으며 주목을 받았다.

2020∼2021시즌에는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남자농구 디비전1 22경기를 소화하며 데이비슨대 최초로 정규리그 180클럽(야투 성공률 50%, 3점슛 성공률 40%, 자유투 성공률 90% 이상으로 합계 '180'을 넘긴 선수)에 가입하기도 했다.

한국 농구는 해외파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농구선수로서 최고의 무대라는 미국프로농구(NBA) 무대에 진출한 사례는 벤치멤버로 짧게 활약하다가 돌아온 하승진(은퇴) 정도가 유일하다. 이밖에 서장훈, 최진수, 방성윤, 이대성 등이 미국 대학이나 하부리그에 잠깐 도전장을 던지기도 했지만 아직 눈에 띄는 성과를 남긴 사례는 없었다.

201cm의 장신인 이현중은 슈팅가드와 스몰포워드 역할을 오가는 스윙맨에 가까운 포지션이다. 한국농구는 문태종의 은퇴 이후 이렇다 할 장신슈터가 없었 데다 신체조건상으로는 국제무대나 미국프로농구NBA에 내놓아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기에 이현중의 성장에 거는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현중은 2015년 국제농구연맹(FIBA) 16세 이하(U16) 대표팀을 시작으로 17세-18세 대표팀을 모두 거쳤고 올해 6월 새롭게 출범한 조상현호에서 마침내 성인대표팀에도 첫 승선했다. 이현중은 아시아컵 예선 네 경기서 평균 17.3점, 7.5리바운드, 2어시스트, 1.5블록슛, 경기당 3점슛 성공수 3개, 3점슛 성공률 38.7%의 놀라운 성적을 내며 단숨에 대표팀의 주포로 자리잡았다. 아시아 무대를 벗어난 최종예선 무대에서도 베네수엘라전에 18점, 리투아니아를 상대로 11점을 올려 평균 14.5점을 기록했다. 21.5점를 기록한 라건아에 이어 대표팀의 2옵션이었다.

이현중처럼 어린 나이에 데뷔와 동시에 대표팀 에이스로 두각을 드러낸 경우는 사상 처음이다. 이현중은 오는 8월 16일부터 28일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FIBA 아시아컵 본선에 도 발탁이 거론되었지만 아쉽게 이번에는 최종명단합류가 무산됐다. 8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대학교 3학년 학사 일정과 겹쳐서 참가가 어려웠다. 미국대학농구협회(NCAA)는 일정 학점 이상을 취득해야만 선수 자격을 엄격하게 부여한다. 대표팀으로서는 당장의 전력이 아쉽지만, 이현중이 장차 대학을 넘어 NBA 진출까지 기대되는 선수라는 것을 감안하면 마땅히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했다.

용산고의 '괴물'로 불리는 여준석도 이번 여름에 가장 두각을 나타낸 유망주다. 여준석은 지난달 춘계전국남녀중고연맹전에서 경기당 평균 27.8득점, 10리바운드, 2.8어시스트로 최우수상과 득점상을 휩쓸며 용산고를 우승으로 이끌고 국내무대를 평정한 바 있다.

탁월한 실력과 발전 가능성을 인정받아 고교생의 신분으로 유일하게 올여름 U19 대표팀과 성인대표팀에 모두 발탁되는 행운을 누렸다. 여준석은 성인대표팀의 FIBA 아시아컵예선과 올림픽 최종예선에 모두 참가한 뒤 곧바로 라트비아가 날아가 19세 이하 대표팀에 합류하여 U-19 월드컵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이어갔다.

조상현 성인 대표팀 감독은 대표팀 주전 빅맨이던 김종규, 장재석의 부상으로 203cm의 여준석을 과감하게 발탁하며 3, 4번(스몰포워드, 파워포워드) 포지션에서 활용했다. 어린 선수라고 단순히 엔트리만 채우는 백업으로만 데려간 것이 아니라, 태국-인도네시아 등 약체팀들과의 경기에서는 상당한 출전시간을 부여기도 했다. 여준석은 막내임에도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A대표팀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는지, 본인의 연령대로 돌아온 19세 이하 월드컵에서는 군계일학에 가까운 활약을 펼쳤다. 현지에서 늦게 합류하여 동료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 부족했음에도 이번 대회 7경기에 모두 출전, 평균 36분 동안 25.6점 10.6리바운드 1.7어시스트 2.1스틸 1.4블록슛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출전시간과 득점, 공헌도 등 대부분의 기록에서 팀내 1위를 독식했다.

비록 팀이 최하위권의 성적에 머물며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여준석의 활약상만큼은 해외무대에서도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호주, 미국 등 해외 주요언론들에서 여준석의 기량과 발전가능성을 주목하는 보도가 나왔다는 것은 한국 선수로서는 보기드문 장면이었다.

이현중은 NBA급 선수들을 대거 배출하는 미국 대학농구에서도 당당히 주전급으로 활약하고 있고, 여준석은 각 연령대별 청소년대표팀에서 성인대표팀까지 두루 거치며 일찍 다양한 국제경험을 쌓았다. 동세대의 한국 선수들이 한창 성장기인 고교와 대학무대에서 비슷하게 고만고만한 또래들하고 경쟁하다가 20대 초반을 훌쩍 넘겨 프로에 진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현중은 2미터의 장신임에도 미국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3&D(3점슈터-수비)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했다. 여준석은 아직 포지션 정착이 되지 않는 상태로 국내무대에서는 빅맨에 가깝게 활용되고 있지만 3번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이들이 만일 보수적인 한국농구 시스템 내에서만 성장했다면 농구스타일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최근에는 송교창-양홍석 같은 선수들의 성공사례로 한국농구에도 유망주들의 프로 조기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는 덩달아 한국 아마추어 농구의 선수 육성시스템에 대한 회의로도 이어진다.

물론 모든 선수들이 프로에 빨리 나가는 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최근 한국농구의 초라한 국제경쟁력을 보면서 세계무대와 비교하여 선수들의 개인능력 격차와 스타 부재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이현중이나 여준석 같은 유망주들이 어쩌다 한번 등장하는 게 아니라 꾸준히 배출해낼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국농구도 같이 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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