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사회면에 야구 선수가 등장했을 때, 해당 소식이 긍정적일 확률은 극히 드물다. 지금 상황도 그렇다.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투수가 한순간에 몰락하는가 하면, 안전지대였던 리그의 이미지 역시 단시간에 추락하고 말았다.

정규시즌 일정이 중단된 지 일주일이 지났고, 야구 선수들의 이름을 스포츠면보다 사회면에서 찾는 게 더 빠른 것이 KBO리그의 현주소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정말 말 그대로 '역대급' 위기다.
 
첫 재판서 공소사실 인정, 베테랑 투수 윤성환의 몰락
 
 지난 시즌을 끝으로 삼성 유니폼을 벗은 윤성환

지난 시즌을 끝으로 삼성 유니폼을 벗은 윤성환 ⓒ 삼성 라이온즈

 
KBO리그 정규시즌 중단 여부 및 방역 수칙 미준수 이슈에 모든 관심이 쏠렸던 지난 13일, 팬들을 놀라게 할 만한 뉴스가 한 가지 더 나왔다. 이날 대구지법 제11형사단도(판사 이성욱)은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를 받는 윤성환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지난 6월 25일 구속 기소된 윤성환은 2020년 9월 A씨로부터 승부 조작 관련 부정 청탁에 대한 대가로 5억 원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주말 경기에서 상대팀에 1회 볼넷 허용 이후 4회 이전에 일정 실점 이상을 기록하는 내용을 승부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윤성환은 승부조작을 통해 챙긴 5억 원을 불법 도박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재판에서 윤성환의 변호인은 "공소사실, 검찰 증거에 모두 동의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서 승부조작을 실제로 했다는 것을 윤성환이 인정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큰 걱정이 없다고 여겨졌던 승부조작의 그림자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야구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윤성환은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해 줄곧 한 팀에서만 활약했던 프랜차이즈 스타로, KBO리그를 대표하는 우완 투수로 이름을 알렸다. 통산 135승을 기록한 윤성환보다 많은 승수를 거둔 우완 투수는 지금까지 단 네 명밖에 없었다.

제구 난조와 구위 저하로 이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도 여전히 삼성 팬들의 응원은 이어져 왔다. 윤성환의 승부조작 혐의가 사실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 누구보다도 윤성환을 지지했던 팬들이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대놓고 방역수칙 미준수... 팬 기만하는 선수와 구단
 
 KBO로부터 엄중경고 조치를 받은 두산 워커 로켓-김재호

KBO로부터 엄중경고 조치를 받은 두산 워커 로켓-김재호 ⓒ 두산 베어스

 
방역수칙 미준수에 대한 팬들의 분노도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일주일 내내 NC 다이노스 선수들의 호텔 술자리 논란으로 떠들썩했고, 한화 이글스와 키움 히어로즈 선수들까지 술자리 및 방역수칙 미준수로 인해 팬들의 질타를 받아야만 했다.

여기에 지난 18일에는 잠실구장에서 일부 선수들끼리 훈련을 진행한 두산 베어스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일부 선수들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그라운드에 나오는가 하면, '베테랑' 김재호는 자녀와 함께 그라운드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팬들의 분노가 절정에 달했다.

여기에 두산 구단의 늑장 대처도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난 9일 구단 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팬들이 분노하고 나서야 고개를 숙였다. 선수단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일부 팬들이 송파구청과 문체부에 두산 선수들의 방역수칙 미준수 관련 민원을 접수하면서 일이 점점 커졌고,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KBO는 19일 오후 두산 구단과 로켓, 김재호에 대해 엄중경고를 통보했다.

엄중경고로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에 대한 두산의 태도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NC 선수단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시즌 중단 사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두산은 팬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일을 단 한 가지도 하지 못했다.
 
 지난 6월 23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의 정규시즌 8차전, 듬성듬성 빈 자리가 보이는 3루 쪽 관중석의 모습.

지난 6월 23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SSG 랜더스의 정규시즌 8차전, 듬성듬성 빈 자리가 보이는 3루 쪽 관중석의 모습. ⓒ 유준상

 
역대 최악의 시즌, KBO도 책임 피할 수 없다

팀과 선수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리그 전체에 대한 신뢰도 자연스럽게 떨어지기 마련이다. 관중석 취식 금지 등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야구장을 향했던 팬들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 속에서 더 이상 야구장에 갈 이유가 없다.

승부조작과 방역수칙 미준수 사안 모두 선수 개인이나 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뒷짐을 지고 있는 듯한 KBO도 책임을 피해가기 어렵다. 제대로 리그가 진행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돼야 하는 곳이 오히려 우왕좌왕하고 있다.

어쩌면 도쿄올림픽을 앞둔 현시점에서, KBO는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게 된다면 지금의 여론이 잠잠해질 것이라고 예상할지도 모른다. 13년 전 베이징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야구 인기가 다시 반등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금메달 획득과 관계없이 지금의 분위기는 긴 시간 동안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직전까지 와 있는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1982년에 출범한 KBO리그가 이렇게까지 몸살을 앓았던 시즌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야구계 안팎에서는 수년간 '지금이 위기'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이제는 40년 리그 역사상 최대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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