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니키리라고도 알려진>의 포스터.

다큐멘터리 영화 <니키리라고도 알려진>의 포스터. ⓒ 엣나인필름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은 시대와 세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은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많은 예술가 또한 자신들만의 시각과 생각을 담은 작품들을 내보여왔고, 한국을 떠나 1990년 중반부터 2000년 초중반까지 뉴욕에 머물렀던 니키 리 또한 그중 하나였다. 

최근엔 배우 유태오의 아내로 대중에 노출됐지만, 사실 그는 대학 졸업 직후인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뉴욕대 대학원을 거치며 여러 사진 작업을 해왔고, 연작 시리즈인 '파츠'(parts), '프로젝스'(projects)를 발표하며 일약 유명 아티스트로 발돋움한 인물이다. 그의 작품 일부가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을 비롯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에 작품이 영구 전시돼 있기도 하다. 

예술영화전용관 아트나인에서 지난 6월 30일부터 상영 중인 다큐멘터리 영화 <니키리라고도 알려진(a.k.a. Nikki Lee)>은 바로 우리가 잘 몰랐던 니키 리의 자전적 이야기면서 동시에 그가 지난 세월 꾸준히 던져온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대답이기도 하다.

이미 2007년 베를린영화제에 소개됐던 이 영화가 2021년 다시금 세상에 등장한 이유는 여전히 그의 작업과 질문이 유의미하기 때문 아닐까. 실제로 그의 SNS엔 유독 20대 여성, 기성세대로 분류할 수 없는 청춘들의 '좋아요'와 댓글들로 가득하다. TV 등 대중매체로 거의 알려진 적 없는 니키 리를 다들 어떻게 알아본 것이고, 대체 왜 열광하는 걸까. 

너무 심각해지지 말 것

영화는 사진 작가로 한창 주목받던 아티스트 니키가 본인의 설정을 니키1 니키2로 나눠 관객에게 제시하는 구성이다. 자신이 자신을 촬영한다는 콘셉트지만 사실 여기엔 타인이 원하는 니키, 타인이 정의하는 니키가 혼재돼 있다. 이탈리아와 독일, 그리고 뉴욕과 멕시코를 오가며 작업과 전시를 반복하는 그의 모습을 보다 보면 카메라 속 니키와 그를 바라보는 니키 사이의 묘한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

"학교 졸업 후 1997년부터 작업을 시작했고, 2005년에 다큐를 찍었다. 영화를 너무 좋아하다 보니 뭔가를 만들고 싶었는데 자비로 하자니 극 영화는 못 할 것 같았고, 다큐는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시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한창 화두여서 나에 대한 페이크 다큐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지. 작가로 유명해지면서 미국 전역 대학에서 특강 요청이 있었는데 공항으로 마중 나오시는 분들마다 하는 말이 '내가 생각한 니키와 다른 모습이네요'였다. 내 작품을 보고 자기들만의 니키를 상상했다가 웬 작고 잘 웃는 여자가 등장하니까 그런 말을 한 거겠지. 니키 리라는 사람을 어떻게 보고들 있는 걸까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니키 리.

니키 리. ⓒ 니키 리

 
영화에 나오는 인터뷰 장소, 각종 책과 소품은 니키 리가 직접 빌리거나 구입한 것들이다. 촬영감독 2명과 함께 니키 리의 활동 전반을 찍었다. 일반적인 다큐라면 있는 그대로를 담고 말겠지만 종종 화면 속 니키는 같은 의미의 말을 단어만 바꿔가며 반복한다거나 특정한 표정이나 행동을 반복적으로 드러낸다. 함께 찍은 사진에서 남자의 모습만 잘라낸 결과물인 '파츠'(parts), 수 개월간 히피, 펑크족, 흑인 집단 등의 일원이 되어 촬영한 '프로젝스'(projects)의 연장선처럼 보이는 이유다. "딱 연장선이라 생각하고 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정체성 이야길 하고 있기에 그렇게 봐도 무리는 아니다"라며 그가 말을 이었다.

"정체성을 확실하게 정의하려는 노력을 사람들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영화를 보시라. 정체성을 속이기가 너무 쉽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보는 법이거든. 정의를 내리면서까지 정체성이 확고해야 하나? 관계에 따라서든 어떤 이유에서든 그건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정체성 자체가 그리 심각한 게 아닐 수 있다.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습관 때문에 스스로 힘들어지고 서로 상처 주고 심한 경우 목숨까지 위태롭게 하잖나. 정체성이라는 건 가변적이기에 거기에 대한 과한 의미 부여를 하면서 너무 심각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사실 이런 영화의 구성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사연 중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구조적이기도 하거든. 내 성격이 그렇다. 굉장히 계획적인 사람이다. 꽉 짜여있고 안정적인 걸 좋아하는데 동시에 그걸 파괴하는 걸 즐기기도 한다. 아이러니지. 파괴하는 건 과감한데 그걸 결정하기까진 엄청 고민을 많이 한다. 영화 또한 상당히 정신 없어 보이지만 나름 잘 짜인 계획이 담겨 있다(웃음)."


열광의 이유

미국과 유럽 평단에서 니키 리 작품에 주목했던 이유를 여럿 들 수 있겠지만 니키 리 스스로는 "보기에는 쉽고, 접근 방식은 달라서가 아닐까"라고 답하고 있었다.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뼛속까지 한국적인 정규 교육을 받고 유학길에 오른 니키 리를 두고 외국에선 미국에서 자라온 교포거나 한인 2세로 생각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아마 그때 작업이 동시대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체성에 대한 접근이 아주 달랐다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간 서양 작가들은 스스로에게만 집중해왔는데 전 관계 속의 나 자신, 사회 안의 나를 바라보면서 작업했다. 정체성이 유기적으로 생명력 있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 그런 점을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인 것 같다.

나름 존중받으며 자랐다. 부자는 아니었지만 부족함 없이 생활했고, 부모님도 날 사랑해주셨다. 근데 그런 환경임에도 왠지 고독했고, 뭔가 갈망했던 것 같다. 그걸 충족시켜준 게 영화다. 어릴 때부터 영화에 미쳤다. 이모들이 데이트할 때 날 데리고 다니곤 했다. 처음 본 영화가 6살 때였을 것이다.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이었는데 마리솔이라는 여자 주인공 이름까지 기억난다. 우리와 다른 문화, 다른 세계가 날 자극시켰다. 지금은 다들 마음만 먹으면 그걸 알 수 있지만 제가 자랄 땐 뭔가 막힌 느낌이었다. 그 세계를 모른다는 사실에 화도 났다. 그래서 영화를 더 탐닉했던 것 같다." 


그랬다면 애초에 영화를 전공하면 어땠을까라는 말에 그는 "아빠가 사진을 공부하라고 해서 타협한 것"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어떤 신념을 가지고 꼿꼿하게 가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며 그는 "너무 신념이 강하면 꺾이기도 쉽고, 많은 세계를 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는 나름의 인생 철학을 덧붙였다. 그 덕에 뛰어난 니키 리의 사진이 탄생한 건 아닐까.  
 니키 리의 < project > 시리즈 중 하나. The Hip Hop Project-1,-Digital-C-Print, 75x101cm, 2001

니키 리의 < project > 시리즈 중 하나. The Hip Hop Project-1,-Digital-C-Print, 75x101cm, 2001 ⓒ 니키 리


예술적 동반자, 유태오

"솔직히 말해 제 작업이 동양에서도 서양에서도 100퍼센트 이해받을 순 없다. 동양에선 서양 문법이라, 서양에선 서양문법 안에 있는 동양적 정서라 그렇지. 온전한 비평가의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그래서 좀 외롭긴 하다. 온전히 날 바라봐주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지. 그래도 괜찮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겐 다 딜레마가 있잖나."

이 지점에서 니키 리의 남편이자 배우인 유태오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뉴욕 유학 시절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몇몇 방송과 인터뷰로 꽤 소개된 바 있다. 칸영화제 경쟁 진출작인 <레토>에서 러시아 록스타 빅토르 최를 연기한 이후 유태오의 진가를 국내에서도 알아보기 시작했고, 여러 상업영화 및 드라마 출연이 이어지고 있다. 그 뒤엔 니키 리의 완벽한 지지와 응원이 있었다. 결혼 직후 10년의 무명 시간을 두 사람은 오롯이 함께 버티고 견뎠고, 니키 리는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잠시 쉬었다.

"경력 단절은 그다지 관심 없었다. 작업은 내가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니까. 스스로는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지난 10년간 결과물은 아직 없었지만 나름 지금도 하고 있다. 태오 배우는 내가 좋아서 응원하고 연기 활동을 지지해 온 것이다. 처음 봤을 때 흙 속에 있는 다이아몬드라고 느껴져서 반짝거리게 하고 싶었다. 나의 또 다른 작업을 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무명이 좀 길어서 생활고는 있었지(웃음). 태오 배우는 온전히 예술가로서의 날 존중해주는 사람이자 있는 그대로 날 바라보고 사랑해주는 사람이다. 그 자체가 예술을 너무 사랑한다. 그래서 모든 걸 이해해주지. 내 인생의 든든한 지지자다."


솔직하면서도 열정적인 니키 리와 배우로서 자신의 길을 올곧이 가는 유태오를 향한 팬들의 사랑 또한 커지고 있다. 최근 관객과의 대화에서 유독 20대 여성들이 극장을 가득 채웠고, SNS로도 서슴없이 진솔한 마음을 보낸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니키 리는 나름의 생각을 밝혔다.

"사랑받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그 부분이 고맙다. 동시에 전 아티스트다. 혹시라도 내게 어떤 인생의 모범 답안이나 조언을 기대한다면 그건 부담이다. 아티스트로 절 좋아해 주는 게 더 좋고 감사하다. 제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수는 없다. 그런 걸 기대한다면 좀 미안하다. 그냥 멋진 언니로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부분에선 참 신난다." 

다만 인생의 격변기를 보내고 있을 이들에게 니키 리의 이런 말은 유효할 것 같다. 영화 속 그의 말 중 하나 "인생엔 패턴이 있는 것 같다"를 되물어봤다. 스치듯 지나가는 말이지만, 니키 리가 발견한 어떤 깨달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주팔자라는 게 있고 그건 고칠 수 없다고들 하잖나. 근데 난 고칠 수 있다고 본다. 본인 의지로 말이다. 물론 굉장히 어렵기에 다들 팔자대로 산다고 말하곤 한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그게 모여서 날 바꾼다. 늦게 자는 사람이 일찍 잔다든가, 밥을 많이 먹던 사람이 적게 먹기 시작한다든가 말이지. 작은 패턴을 바꿔나가면 인생이 바뀌거든. 

제 경우엔 바꿨다. 예전의 전 차갑고 도도한 사람이었다. 혼자만의 세상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대학교 동창들은 절 그렇게들 기억한다. 여러 사연이 있었지만, 지금의 전 타인에게 다정한 사람이 되어 있다. 단순히 말투나 태도가 아닌 마음 깊이 상대를 생각하고 이해하려 한다. 스스로 내 직업이 자랑스러운 적은 없었는데, 내가 날 이렇게 변화시킨 것엔 자부심이 크다. 사람에게 다정한 내가 된 게 너무 좋다."


사람에게 영감을 얻고, 사람과 대화를 좋아하는 니키 리의 지금 모습은 어쩌면 부단한 자기 성찰의 결과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호기심과 예술가 기질을 품고 그는 오랜 꿈인 장편 영화 감독을 위해 단계를 밟아가는 중이다. 이미 몇 편의 단편을 통해 여러 배우와 호흡한 그는 몇 가지 장편 시나리오를 완성해놨고, 캐스팅 단계에 있는 작품도 있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저만의 기조가 있을 것이다. 삶의 애잔함이랄까. 어떤 장르, 어떤 이야길 하든 그게 묻어날 것 같다. 사람은 결국 헤어지고 죽잖나. 우리 삶의 모든 순간들이 다 그리로 간다. 그래서 어떤 순간들이고 애잔하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유머를 좋아한다. 아마도 그런 게 묻어난 작품을 내놓게 되겠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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