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결승전을 예고하는 유로 2020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결승전을 예고하는 유로 2020 공식 홈페이지 이미지 ⓒ 유로 2020 공식 홈페이지

 
영국 잉글랜드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유로2020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배한 이후 극심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승부차기에 실축한 선수들과 감독을 향한 무분별한 비난에서부터 훌리건들의 난동으로 인한 폭력사태, 대회 기간 코로나19 환자 폭등으로 인하여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55년 만의 국가대항 메이저대회 우승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잉글랜드는 현대축구 종주국이라는 의미에서 '축구종가'라는 수식어로 자주 불린다. 하지만 축구에 대한 높은 자부심과 별개로 국제대회에서의 성과는 빈약하다. 196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성과가 없었고 심지어 유럽선수권대회에서는 정상은 커녕 결승에도 올라보지 못했다.

유로2020은 잉글랜드 축구사를 다시 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이끄는 잉글랜드는 조별리그에서 크로아티아, 스코틀랜드, 체코를 상대로 2승 1무를 기록해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했고, 16강에서 독일을 2-0으로 제압했다. 8강에선 우크라이나를 4-0으로 대파했고, 4강에서 덴마크를 연장 접전 끝에 2-1로 눌러 결승에 올랐다.

잉글랜드의 우승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면서 현지에서도 응원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2030년 아일랜드와 월드컵 공동 유치를 노리는 영국 축구계와 정치계, 왕실까지 나서서 대표팀에 응원 메시지를 보냈고 방송에서는 연일 유로2020과 관련된 콘텐츠들이 쏟아졌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팬들은 거리와 펍으로 쏟아져나와 단체응원을 펼쳤고, 각 집과 차에 잉글랜드 깃발이 내걸렸으며 대표팀 셔츠가 완판되어 재고가 부족하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였다.

결승전에서 폭발한 잉글랜드의 불안요소 

하지만 일각에서는 잉글랜드의 결승진출을 이미 곱지않게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잉글랜드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우크라이나를 상대한 8강전을 제외하면, 결승전을 비롯한 모든 경기를 자신들의 안방인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치렀다. 대회 60주년을 기념하여 11개국에서 분산개최되었던 유로2020이었지만 잉글랜드는 사실상 대회 내내 홈팀이나 다름없는 혜택을 누린 셈이다. 더구나 영국은 하필 유럽연합을 탈퇴한 국가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UEFA(유럽축구연맹)가 잉글랜드를 위한 대회를 구성했다'는 음모론에서부터 '유럽연합을 떠난 국가를 위해 과도한 특혜를 베풀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잉글랜드의 결승진출에는 운도 많이 따랐다. 피파랭킹 4위의 잉글랜드는 조별리그에서 결승에 오를 때까지 우승후보급으로 꼽힐 만한 강팀을 거의 만나지 않았다. 16강에서 만난 '천적' 독일이 있었지만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속적인 하향세를 겪고있던 독일은 과거에 월드컵을 제패했던 그 전차군단이 아니었다. 4강에서 만난 덴마크와는 연장전에서 해리 케인의 결승 PK를 이끌어낸 라힘 스털링의 '다이빙' 논란이 있었다. 결승에서 만난 이탈리아가 벨기에-스페인같은 강력한 우승후보들을 격침시키고 경기력과 팀워크에서도 꾸준히 호평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승리에 가려졌던 잉글랜드의 불안요소들은 결국 결승전에서 폭발했다. 잉글랜드는 전반 루크 쇼의 깜짝 선제골로 앞서나갔으나 후반 22분 보누치에게 뼈아픈 동점골을 허용했다. 전반적인 경기력과 조직력 모두 이탈리아가 더 승리할 자격이 있었던 경기였다. 승부차기에서는 잉글랜드가 먼저 앞서나갔으나 3-5번 키커가 모조리 실축하면서 이탈리아에게 2-3으로 역전당하여 무릎을 꿇었다.

승부차기를 실축한 잉글랜드의 세 선수는 마커스 래쉬포드, 제이든 산초, 그리고 부카요 사카였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고 유색인종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경기가 거의 끝나가던 연장전 막판에 래쉬포드와 산초를 투입했다. 승부차기를 염두에 둔 교체였다. 심지어 부담감이 가장 큰 마지막 키커로 나선 선수는 2001년생으로 팀내에서 막내급인 사카였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이들의 킥 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을 믿었지만, 문제는 이들이 성인대표팀이 나서는 메이저대회, 그것도 유로 결승전같은 큰 무대에서 승부차기에 나서본 경험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었다는 점이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래쉬포드와 산초를 투입하기 위하여 카일 워커와 조던 헨더슨같은 베테랑들을 교체했고, 잭 그릴리쉬같이 준수한 키커도 남아있었음에도 젊은 선수들에게 도박을 걸었다. 그러나 승부차기가 기술보다 심리전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압박감을 극복할 수 있는 경험의 차이를 간과한 것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결정적 패착이었다. 우려한대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던 잉글랜드의 영건들은 잇달아 실축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들이 앞으로도 잉글랜드 축구를 이끌어가야 할 주역임을 감안할 때 이번 유로 결승전의 트라우마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경기 후 당연히 엄청난 후폭풍이 쏟아졌다. 패배에 실망한 잉글랜드 팬들은 SNS에서 실축을 한 유색인종 선수들에게 인종차별성 비난을 퍼부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과 승부차기에 나서지 않은 베테랑 선수들에게도 무책임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쏟아졌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승부차기 키커 선정은 온전히 나의 결정"이라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고, 그릴리쉬는 "승부차기에 나서고 싶었다. 회피한 적이 없다"고 해명에 나서야 했다.

잉글랜드 훌리건들 혐오범죄까지
 
 잉글랜드 대표팀 마커스 래시포드의 훼손된 벽화를 복원학 위한 온라인 모금 페이지 갈무리.

잉글랜드 대표팀 마커스 래시포드의 훼손된 벽화를 복원학 위한 온라인 모금 페이지 갈무리. ⓒ 크라우드펀더

 
잉글랜드는 이번 대회에서 '유럽선수권 사상 첫 무패 준우승(승부차기 패배는 공식전 무승부로 처리)'이라는 나름의 위업을 세웠지만 2인자의 명예를 기억해주는 팬들은 없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2018년 잉글랜드 대표팀 부임 이후 러시아월드컵-네이션스리그 4강, 유로 준우승 등 화려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결승전 패배의 후유증으로 하루아침에 경질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 훌리건(극성팬)들의 난동까지 부각되며 잉글랜드는 더욱 난처한 지경에 몰렸다. 유럽축구계에서도 악명높은 잉글랜드의 훌리건들은 이미 경기전부터 웸블리에 집결하여 경기장 난입을 시도하는가 하면, 결승이 패배로 끝난 직후에는 이탈리아 팬들과 아시아계 유색인종들을 잇달아 폭행하는 혐오범죄를 일으키는 등 역대급 비매너로 국제망신을 초래했다. 물리적인 난동도 난동이지만 코로나19 시국에서 사회적 방역과 안전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훌리건들의 추태에 유럽 축구팬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야말로 경기도 지고 매너에서도 완패했다는 말의 교과서적인 구현이었다.

또한 잉글랜드는 유로2020 기간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대회 이전보다 4배 가까이 치솟은 것으로 알려지며 방역에 큰 구멍이 뚫린 것이 확인됐다. 결승전을 앞두고 잉글랜드의 코로나 확진자 숫자는 이미 3만 명을 넘겼다. 대표팀의 유로 대회 열풍에 휩쓸리며 국민적 경계심이 흐트러진 데다 최근 델타 변이 바이러스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영국에서는 또다른 코로나 대유행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축제는 끝났지만 잉글랜드에게는 환희보다 상처만 남게된 유로202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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