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농구에게 '잔혹한 7월'이 이어지고 있다. 조상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성인 남자농구 대표팀은 이달초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베네수엘라와 리투아니아에게 2연패를 당하며 올림픽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이로서 한국 남자농구는 1996 애틀랜타 대회를 끝으로 무려 25년째 올림픽 본선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만 2008년 이후 6전 전패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A대표팀이 받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한국농구의 미래'로 꼽히는 유망주들도 수모를 당했다. 이무진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19세 이하(U-19) 남자농구 대표팀은 라트비아 리가에서 열리고있는 2021년 국제농구연맹(FIBA) U-19 월드컵에서 4전 전패에 그쳤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프랑스(48-117), 아르헨티나(74-112), 스페인(48-99)에 무기력하게 무너진 데 이어 미국(60-132)과의 16강전에서도 더블스코어 이상의 완패를 당했다. 그나마 성인 팀에 비하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던 연령대별 대표팀이었기에 더욱 실망스러운 모습이다.

단순히 졌다는 사실만이 문제는 아니다. A팀이 상대한 리투아니아-베네수엘라, U-19팀이 만난 미국, 스페인, 프랑스, 아르헨티나 모두 한국보다 FIBA 랭킹과 객관적인 전력에서 모두 앞서며 세계무대를 호령하는 강호들이다. 한국보다 전력이 뛰어난 중국이나 이란같은 아시아 강호들도 세계무대에서는 유럽과 아메리카팀들의 1승 제물 취급을 받을 만큼 아시아 농구는 힘을 못 쓰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과정과 희망이다. 과연 한국농구가 세계 무대에 나설만한 준비가 되어있었는지, 당장 현실의 격차는 인정하더라도 최소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건졌느냐고 묻는다면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A팀도, U-19팀 모두 준비 과정부터 부실해 보였다. 두 팀 모두 지난 5월에 새로운 감독이 선임되며 그때부터야 대회 준비에 돌입했다. 다른 국가들이 오래 전부터 체계적인 플랜과 연속성을 가지고 대표팀을 운영하는 것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조상현 감독은 전임 김상식 감독 시절 대표팀과 프로팀 코치를 역임했지만 성인팀 감독 경험은 아예 전무한 인물이다. 김동우 코치 역시 고등학교 코치를 맡았던 게 이전까지 지도자 경력의 전부였다. 국가대표팀은 국내 최고의 선수들을 이끌어야하는 자리인데 감독과 코치 모두 초보 지도자를 선임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농구협회는 대표팀 감독 공개모집을 통하여 추일승-김진같은 프로 경력이 풍부한 베테랑 지도자들을 제치고 조상현-김동우 코칭스태프를 낙점했다.

조상현호 1기는 FIBA 아시아컵 예선과 올림픽 최종예선 일정을 연이어 소화했다. 현실적인 우선순위는 아시아컵 본선 진출이었다. 조상현호는 약체 태국-인도네시아에게 압승하며 조 2위로 아시아컵 본선행에서는 성공했으나 유일한 강호였던 필리핀에게는 2연패를 당했다. 최종예선에서도 베네수엘라전에서 3쿼터만 반짝 선전했던 것을 제외하면 2경기 모두 상대와의 실력 차를 드러내며 대체로 무기력했다.

선수 구성부터 아쉬웠다. 허훈-김종규-오세근-김선형-이정현-송교창 등 현재 프로농구 정상급으로 꼽힐만한 선수들이 대거 부상과 개인 사정으로 합류가 불발됐다. 이번 대표팀은 라건아 등 몇몇 선수를 제외하면 프로 저연차와 아마추어 유망주들로 구성된 2진에 가까운 전력이었다. 라건아와 이현중의 원투펀치가 분전했지만, 조상현호만의 특별한 개성이나 전술적 플랜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기본기와 높이 열세-체력 저하라는 한국농구의 고질적인 약점만 재확인했다.

19세 이하 대표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세계 최강 미국을 비롯한 유럽과 남미의 강호들임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무기력했다. 불안정하고 허술하게나마 전임감독제를 운영하는 A팀과 달리, 연령대별 대표팀은 아직도 국제대회마다 사령탑이 바뀐다. 5월에 이무진 감독이 선임되고 6월초에 첫 소집된 대표팀이 제대로 대회를 준비한 기간은 고작 3주 정도에 불과했다. 대표팀 구성 면에서도 과연 얼마나 꾸준히 선수들을 점검하고 제대로 발탁했는지, 상대국에 대한 전력분석은 제대로 되었는지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에이스인 여준석(용산고)은 A대표팀에 발탁되어 아시아컵 예선과 도쿄 올림픽 최종예선에 참가했다가 현지에서 합류하여 동료들과 아예 제대로 손발을 맞추지도 못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나마 이무진호에서 제 몫을 한 몇 안 되는 선수가 여준석이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높이와 힘에서 크게 밀리는 외국 선수들을 낯설어하며 주눅이 든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세계최강 미국과의 대결에서 상대가 초반 작정하고 전면압박수비를 걸어오자 아예 하프코트조차 넘지 못하고 잇달아 농락 당하는 모습은 안쓰러움까지 느끼게 했다.

한국은 역대 U-19 월드컵에서 2007년 대회 11위에 오른 것이 최고성적이다. 하지만 2017년에는 16개국 가운데 14위에 그쳤고, 2019년 대회 때는 본선 진출조차 실패하는 등 최근 연이어 저조한 성적에 그치고 있다. 선수층이 두텁지 않은 한국농구에서 이 연령대 선수들이 성장하여 프로와 국가대표에서도 주축 선수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미래는 더 암울하다.

구조적인 문제를 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유망주들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자국 내에서 비슷한 또래들하고만 경쟁한다. 자신보다 크거나 힘이 좋은 선수들을 상대해볼 수 있는 경험이 부족하다. 또한 프로 선수들은 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들에게 의존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보니 주도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신체조건과 개인능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면, 수비-스피드-외곽슛-패스-세트 오펜스 등 단신팀에 걸맞는 스타일로 돌파구를 모색해야하는데, 이제 더 이상 이런 요소들도 한국농구의 장점이라고 할 수 없다. 오히려 한국 선수들보다 더 크고 힘좋은 선수들이 더 빠르고 슛도 잘 던지고 조직력까지 좋은 게 현대농구의 현실이다. 가드가 골밑을 공략하고 센터가 외곽슛을 던지는 포지션 파괴가 일상화된 토털농구를 펼치는 강팀들을 상대로, '한국식 농구'만 답습하고 있는 대표팀에게 국제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대표팀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면 자연히 시스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고, 시스템은 곧 대표팀에 대한 지원과 농구협회의 재정 문제로 이어진다. 한국농구계는 농구협회, 프로(KBL), 대학과 중고농구연맹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운영주체들이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분열되어있고, 이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이나 공통의 목표의식도 보이지않는다.

국제대회에서 부진할때마다 대표팀에 대한 지원과 시스템 개선에 대한 여론이 나오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금새 흐지부지되어버린다. 이런 구조적인 환경속에서 라건아, 이현중, 여준석 같이 국제무대에서도 통할만한 몇몇 선수들이 나온다고 해서 대표팀의 경쟁력이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축구나 야구 등 다른 스포츠들이 이제 자국을 넘어 세계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국농구는 아직도 기나긴 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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