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용성은 2019년 데뷔 앨범 <김일성이 죽던 해>로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대중음악상 2관왕에 오르는 등 이름을 알렸다. 음악 관계자들과 팬들은 그의 음악에 찬사를 보냈다.

천용성은 2019년 데뷔 앨범 <김일성이 죽던 해>로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대중음악상 2관왕에 오르는 등 이름을 알렸다. 음악 관계자들과 팬들은 그의 음악에 찬사를 보냈다. ⓒ 오소리웍스

 
천용성의 <수몰> 발매 10일 전 오소리웍스로부터 프레스 킷이 담긴 메일을 받았다. 음원을 듣고, 보도자료를 읽고, 리뷰와 기사를 썼다(관련기사 : 담담히 길어올린 '분하고 더러운 팝').

"22일 화요일까지 주소, 받으실 분, 연락처를 보내주시면 이를 반영해 6월 23일에 함께 배송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에는 차마 답을 하지 못했다. <수몰>의 텀블벅에 참여하지도 못했거니와 앨범은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천용성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싣고 싶다는 답신을 보냈다. 지난주 마곡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천용성은 2019년 데뷔 앨범 <김일성이 죽던 해>로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대중음악상 2관왕에 오르는 등 이름을 알렸다. 음악 관계자들과 팬들은 그의 음악에 찬사를 보냈다. 정작 뮤지션은 담담했다. "변한 건 없어요. 벌이가 변할 때 삶이 가장 크게 변하는데 그러지 못했죠. 라이프 사이클이 변할 정도로 일이 늘진 않았어요."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것은 맞지 않느냐는 질문에도 돌아온 대답은 겸손했다.

"'내 노래가 나쁘지 않구나' 싶었죠. 그 전에는 반반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 음악을 들려주면 '노래는 다른 사람한테 시켜라'는 반응만 돌아왔으니까요. 1집이 그래도 성과를 얻으니까 왔다 갔다 하는 빈도가 줄었어요. 상도 타고 여기저기 소개도 되니까 내 음악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안 좋은 음악은 아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거죠."

6월 24일 발표된 천용성의 정규 2집 <수몰>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분명 우리 곁에 있지만 노래로 다뤄질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진 않는 존재들이다. 불치병에 걸린 소년, 식물원, 눈 내리는 밤, 설 명절 오랜만에 아들을 만난 어머니, 정치인. 천용성은 계산하지 않고 깊게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작업 비화랄 것이 따로 없었다.

"다양한 삶을 담아보겠다, 그런 노력은 하지 않았어요. 만들 때도 고를 때도 마찬가지에요. 좋은 노래를 골랐을 뿐 콘셉트에 맞춰 작업하지 않아요. 아무리 내용이 좋고 의미가 있다 해도 결국 노래가 좋아야 하니까요." 
 
 <수몰>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분명 우리 곁에 있지만 노래로 다뤄질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진 않는 존재들이다. 불치병에 걸린 소년, 식물원, 눈 내리는 밤, 설 명절 오랜만에 아들을 만난 어머니, 정치인. 천용성은 계산하지 않고 깊게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작업 비화랄 것이 따로 없었다.

<수몰>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분명 우리 곁에 있지만 노래로 다뤄질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지진 않는 존재들이다. 불치병에 걸린 소년, 식물원, 눈 내리는 밤, 설 명절 오랜만에 아들을 만난 어머니, 정치인. 천용성은 계산하지 않고 깊게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에게는 작업 비화랄 것이 따로 없었다. ⓒ 오소리웍스

 
명절 때 오랜만에 뵌 어머니의 대사를 그대로 가사로 옮겨 적은 '설', 장엄한 풍경을 바라보며 써내려간 '붉은 밤', '식물원' 등 다양한 시선이 <수몰>에 담겨 있다. 어떤 노래는 직접 겪었고 어떤 이야기는 듣고 쓴 이야기다. 죽음을 앞두고 천국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아이의 '어떡해', 2004년 정립회관 점거 농성에서 만난 신인기씨와 우동민씨의 이야기를 담은 '거북이'는 마음 한 구석을 저릿하게 파고든다(우동민씨는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 점거 농성 때 폐렴을 얻어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상상을 노래로 만들어도 그게 완전히 가상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나의 경험을 섞어두는 편이죠. '어떡해'의 후반부 '딸이 되고 싶어요' 같은 대목이 그렇다. 정말 딸이 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으니까요. <김일성이 죽던 해>의 '대설주의보'도 마찬가지에요. <대설주의보> 소설을 읽고 쓴 노래지만 뒤의 팥빙수 이야기는 제 이야기거든요. 원전에서 내가 마음에 드는 포인트를 가져올 때 살아오며 겪었던 일이나 감정과 일치하는 부분을 가져옵니다."

"'어떡해'를 만드는 데는 15분도 걸리지 않았어요. 다만 윤리적인 고민은 했죠. 이 이야기가 실화라면 모르겠지만 내가 지어내는 이야기에 불치병에 걸린 아이를 등장시키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갈등했습니다. 내 주위 불치병에 걸린 가족 혹은 친구가 있는 사람이 이 노래를 들으면 괜찮을까, 그런 생각들을 했습니다. 원래는 컴필레이션 음반 '모두의 동요' 에 넣기 위해 썼던 곡인데, 동요는 슬퍼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일부러 신파조로 썼어요."

천용성의 말에는 유머가 있었다. '어떡해'에 나오는 '엄마 긴 밤새우지 마세요' 대목에서는 '긴 밤새우지 말라'는 이야기와 '긴 밤 새 울지 마세요'라는 펀치라인을 자랑하며 "스윙스의 시대는 갔다. 새로운 펀치 라인 킹은 천용성이다"라며 웃음지었다. 그러나 재치있는 그의 음악 세계와 반대로 세상은 신보를 공개한 인디 뮤지션에게 너그럽지 못했다.

<수몰>과 동봉된 그의 산문집 '내역서 II'에는 <김일성이 죽던 해>로 천용성이 벌어들인 소득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인터뷰에서 소개한 내용을 옮기자면 'CD 판 것과 음원 소득까지 합하면 4백만 원 정도 된다. "<김일성이 죽던 해>가 잘 됐다"고 무심코 말하자 그는 '우리끼리 잘 된 것'이라며 정정해주었다.
 
 <수몰>과 동봉된 그의 산문집 ‘내역서 II’에는 <김일성이 죽던 해>로 천용성이 벌어들인 소득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인터뷰에서 소개한 내용을 옮기자면 ‘CD 판 것과 음원 소득까지 합하면 4백만 원 정도 된다.’. "<김일성이 죽던 해>가 잘 됐다”고 무심코 말하자 그는 ‘우리끼리 잘 된 것’이라며 문장을 정정해주었다.

<수몰>과 동봉된 그의 산문집 ‘내역서 II’에는 <김일성이 죽던 해>로 천용성이 벌어들인 소득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다. 인터뷰에서 소개한 내용을 옮기자면 ‘CD 판 것과 음원 소득까지 합하면 4백만 원 정도 된다.’. "<김일성이 죽던 해>가 잘 됐다”고 무심코 말하자 그는 ‘우리끼리 잘 된 것’이라며 문장을 정정해주었다. ⓒ 오소리웍스

 
"내 음악이 좋아서 잘 팔렸으면 하는 바람은 별로 없어요. 시장이 커져서 잘 팔렸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수몰>이 잘 돼서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최저 연봉 수준의 수익을 손에 넣는다고 생각해볼까요. 당장은 기분이 좋겠지만 일회성의 성과에 그칠 겁니다. 3집을 낼 수 있다는 보장이 되지 못해요. 이상한 말이지만, 1,2집보다 못한 차기작을 내도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는 시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 잘했으면 한 번 정도는 못해도 되는 것 아닌가요? 이곳에는 실패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요."

천용성은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크게 의미를 역설하지 않았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도 아니었다. 대중음악을 하는 인디 뮤지션의 당장 해소되지 못할 고민이 창밖의 부슬비처럼 힘없이 흩어져갔다. 다만 뭔가가 '있다'는 것만은 천천히 실감 났다. 무언가 잊고 있던 것들, 외면했던 것들, 막연히 잘 될 거라며 넘어갔던 것들이 지나치게 밝은 카페 조명 아래 일렁거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천용성을 배웅하며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일이 아주 잘 풀려 천용성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이 나온다면, 그가 매번 앨범에 동봉하는 산문집 '내역서'의 세 번째 이야기에서 이 인터뷰는 어떤 식으로 기록될까. '그럼에도 누군가는 천용성을 보며 가수의 꿈을 품고 노래를 부를 것이다'라는 질문에 그가 대답한 내용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롤 모델로의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른세 살 먹고 첫 앨범을 내서 정규 2집까지 내고 가수로 먹고 살게 되는… 늦게 성공한 사람의 본보기로요. 그런 종류의 커리어 패스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천용성이 수몰된 지역에서 건져 올린 수많은 삶과 노래, 이야기는 영원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6월 24일 발표된 천용성의 정규 2집 <수몰> 커버.

6월 24일 발표된 천용성의 정규 2집 <수몰> 커버. ⓒ 오소리웍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도헌 시민기자의 뉴스레터 제너레이트(https://zenerate.glivery.co.kr/p/2256692401395)에도 실렸습니다.
천용성 인터뷰 수몰 음악 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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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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