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1일 유럽의 24개국이 우승컵을 두고 경쟁한 유로 2020이 어느덧 8강까지의 일정을 마치고 상위 4개 팀을 가려냈다. 매 대회마다 크고 작은 이변이 생기는 게 축구의 묘미지만 이번 대회엔 유난히 많은 이변이 발생했다. 유로대회는 물론이고 월드컵에서도 우승후보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프랑스, 독일, 포르투갈이 조별리그에서 힘을 다 쏟으면서 나란히 16강에서 허탈하게 탈락해 버린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한편 에이스 크리스티안 에릭센(인터밀란FC)의 아찔한 부상 속에 조별리그 첫 두 경기에서 연패를 당했던 덴마크는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4-1로 승리하며 기사회생한 후 대반전을 만들었다. 16강에서 가레스 베일이 이끄는 웨일스를 4-0으로 완파한 후 8강에서 체코마저 2-1로 꺾고 4강에 진출한 것이다. 28년 만에 유로대회 4강에 진출한 덴마크는 내심 1992년 스웨덴 대회 이후 역대 두 번째 우승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강호들이 대거 탈락하며 많은 이변을 만들고 있는 이번 대회에서 4강까지 단 한 번의 위기도 없이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팀도 있다. 8강까지 5경기 연속 클린시트(무실점 경기)를 기록한 '축구종가' 잉글랜드다. 중원에만 강한 전력이 집중돼 있던 2000년대 초·중반을 지나 골키퍼부터 최전방까지 탄탄한 전력을 자랑하고 있는 잉글랜드는 대회를 치를수록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첫 우승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화려한 명성에 비해 부족한 유로대회 실적

잉글랜드는 축구종가임을 차치하더라도 바비 찰튼과 앨런 시어러, 데이비드 베컴,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 마이클 오언, 웨인 루니 등 많은 슈퍼스타들을 배출한 축구강국이다. 여기에 유럽 4대 빅리그 중에서도 현 시점에서 가장 강한 리그로 꼽히는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가 열리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화려한 역사와 외형에 비해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이 국제무대에서 거둔 성과는 썩 대단하지 못하다.

자국에서 열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잉글랜드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까지 한 번도 4강 무대를 밟지 못했다. 1974년 서독월드컵과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그리고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는 지역예선에서 탈락해 아예 본선무대를 밟지도 못했다. 월드컵 연속 출전 기록으로만 보면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던 한국보다 못한 성적이다.

유로 대회에서도 힘을 쓰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잉글랜드는 지난 15번의 유로대회에서 9차례 본선에 진출해 31경기에서 10승 11무 10패 40득점 35실점이라는 평범하기 그지 없는 성적을 올렸다. 실제로 잉글랜드는 러시아, 체코, 그리스 등 현 시점에서 축구강국으로 분류하기 힘든 나라들, 그리고 현재는 무려 6개 나라로 나눠진 유고슬라비아도 한 번 이상씩 가본 결승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했다.

그렇게 가지고 있는 명성에 비해 메이저 국제대회에서 약한 면모를 보여온 잉글랜드는 지난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18년 만에 4강에 진출하며 다시금 축구종가의 자존심을 살리기 시작했다. 토트넘 핫스퍼에서 손흥민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이 6골로 득점왕을 차지했고 라힘 스털링(맨체스터시티FC) 역시 세계 최고의 윙포워드로 손색이 없는 활약을 펼쳤다.

잉글랜드는 월드컵 이후에도 제이든 산초, 루크 쇼(이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  부카요 사카(아스날 FC), 데클란 라이스(웨스트햄 유나이티드FC), 메이슨 마운트(첼시FC) 등 젊고 유능한 재능들이 합류했다. 여기에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2016년부터 5년 동안 대표팀을 이끌면서 오랜 시간 착실하게 조직력을 만들어왔다. 그렇게 현재의 잉글랜드 대표팀은 역대 잉글랜드의 어떤 대표팀에도 뒤지지 않는 탄탄한 전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사이스게이트 감독은 잉글랜드의 새 역사 쓸까

유로 2020에서 크로아티아, 체코, 스코틀랜드와 함께 D조에 속한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3경기에서 2승1무를 기록하며 조 1위로 무난하게 16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3경기 연속 무실점의 안정된 경기력을 뽐냈음에도 3경기에서 두 골 밖에 넣지 못했다는 이유로 일부 극성스런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주장이자 팀 내 최고스타 케인은 조별리그 공격포인트 0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게다가 잉글랜드의 16강 상대는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결승전 연장 4-2 승리 이후 무려 55년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2무 5패를 당했던 독일이었다. 잉글랜드로서는 자칫 2010년 남아공월드컵 16강 1-4 패배의 악몽이 떠오를 법도 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독일을 2-0으로 누르며 55년 만에 '독일 공포증'을 극복했다. 독일전 55년 만의 승리와 함께 조별리그에서 침묵했던 케인이 첫 골을 신고한 것도 매우 고무적이었다.

8강 상대는 16강에서 잉글랜드에게 껄끄러운 상대인 스웨덴을 2-1로 꺾고 8강에 진출한 우크라이나. 안드리 셰브첸코 감독이 이끄는 우크라이나는 내심 잉글랜드를 넘어 돌풍을 이어가겠다는 욕심을 부렸지만 우크라이나가 넘보기에 잉글랜드는 너무 강한 상대였다. 잉글랜드는 시종일관 우크라이나를 압도한 끝에 4-0이라는 큰 스코어 차이로 승리하며 자국에서 열린 1996년 대회 이후 25년 만에 유로대회 4강에 진출했다.

독일전을 통해 골 맛을 보기 시작한 케인이 결승골을 포함해 멀티골을 신고하며 골감각을 완전히 되찾았고 루크 쇼는 정확한 2개의 크로스 어시스트로 프리미어리그 최고 레프트백의 위용을 과시했다. 여기에 교체로 투입된 베테랑 조던 헨더슨(리버풀FC)도 감각적인 헤더골로 만31세의 나이에 A매치 데뷔골을 신고했고 5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을 만든 해리 매과이어(맨유)와 존 스톤스(맨시티)로 구성된 맨체스터 센터백 듀오의 활약도 여전했다.

잉글랜드는 오는 8일(한국시각)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덴마크와 결승진출을 놓고 격돌할 예정이다. 만약 잉글랜드가 덴마크를 꺾는다면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그 어떤 위대한 전설들도 이루지 못한 잉글랜드 역대 최초의 유로대회 결승진출을 이룰 수 있다. 물론 이번 대회 5경기에서 아직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잉글랜드의 최종목표는 결승진출이 아닌 유로2020의 가장 높은 곳에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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