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이어가는 럭비 대표팀의 모습.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이어가는 럭비 대표팀의 모습. ⓒ 대한럭비협회 제공

 
23일부터 개막하는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는 단체 종목 중 가장 짜릿하게 출전권을 따낸 종목이라면 단연 '럭비'를 들 수 있겠다. 2019년 11월, 안방인 인천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펼쳐진 올림픽 예선 결승전에서 선수들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아시아에 단 한 장 배분된 티켓을 얻어냈기 때문이었다.

26일부터 28일까지,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올림픽 기간 이름은 도쿄 스타티움)에서 펼쳐지는 사흘 간의 시간은 그간 다른 스포츠에 가려져 있었던 '럭비'라는 종목을 알릴 수 있는 최고의 기회다. 올림픽이라는 일생일대의 순간을 선수들은 어떻게 맞이하고 있을까. 

도쿄 올림픽 럭비 국가대표팀의 한건규 선수, 장용흥 선수, 그리고 '캡틴' 박완용 선수와 서천오 국가대표팀 감독을 만났다. 선수촌에서 훈련을 이어가야 하는 선수들의 상황을 고려해 인터뷰는 온라인 영상통화로 진행되었다.

"연기 소식 듣고 선수촌 나설 때 허탈했죠"
 
2019년 11월, 아시아의 맹호 홍콩을 상대로 연장전 트라이를 이뤄내며 극적인 올림픽 출전을 이뤄낸 선수들은 해외 대회 출전, 진천선수촌 입촌 등을 이어가며 맹훈련을 이어갔다.
 
 지난 2019년 11월 인천에서 진행된 럭비 올림픽 지역예선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던 대한민국 선수단.

지난 2019년 11월 인천에서 진행된 럭비 올림픽 지역예선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던 대한민국 선수단. ⓒ 박장식

 
하지만 2020년 3월 LA 럭비 세븐스에 출전하고 돌아온 선수들을 맞이했던 소식은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된다는 발표였다. 선수들은 올림픽 준비를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선수촌에서 나와 자신들의 소속팀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한건규 선수는 그때를 "진천선수촌 정문을 나서는 순간 허탈하고 기운이 빠졌다. 정신적으로 무장을 해뒀던 상태였는데, 연기 발표가 갑작스럽게 나오고 선수촌에서도 나가니 그랬다"고 기억했다.

박완용 주장에게도 올림픽 연기는 마찬가지로 아쉬웠다. 특히 호사가들이 추가 연기나 취소 이야기를 할 때마다 선수들의 기분은 편치 않았다고. 선수촌에서 퇴촌한 선수들은 개인 훈련과 야외 달리기, 홈 트레이닝으로 훈련을 이어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렇다보니 코로나 19 확산세가 완화되었던 지난해 말 코리아 럭비 리그와 같은 공식 경기가 열렸음에도 부족한 훈련량 탓에 경기력이 좋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단다.

일본 리그에서 뛰고 있는 장용흥 선수도 코로나 19 이후 대비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장용흥 선수는 "2년 전에는 아예 리그가 하다가 중단되면서 취소되었다. 올해도 경기 중에 확진자가 나오면 경기가 취소되거나 하면서 어렵게 리그가 이어지고 있다"며, "대표팀에는 리그가 끝난 뒤 합류했다. 시즌 동안 부상을 조심하려 애썼고, 시즌 끝나고도 한국에서 훈련을 위해 몸상태를 올리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 한건규 선수는 "올해 올림픽이 열리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는 기회가 된 것 같다. 당장 나 역시 2020년에는 몸이 그리 좋지 않았는데, 연기로 1년의 시간이 주어지면서 오히려 몸을 만들고, 몸상태를 관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박완용 주장 역시 "선수들에게도 올림픽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천오 감독 역시 비슷한 의견이었다. 

"코로나19가 1년이라는 시간의 기반을 다지기에는 충분치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다른 팀들도 똑같이 1년이라는 시간을 거쳤고, 그러면서 우리 역시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당장 올림픽이 정상적으로 치러졌다면 탑 클래스 팀들과 한 번 평가전 없이 시합을 했겠지만, 이번에 LA 럭비 세븐스 대회에 참가하면서 경험도 쌓을 수 있었죠. 오히려 똑같이 1년을 쉬었기에 이미 완성된 강팀들에 비해 우리에게는 더욱 유리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서천오 감독)


"맞서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있네요"
 
 훈련하는 럭비 대표팀 선수들.

훈련하는 럭비 대표팀 선수들. ⓒ 대한럭비협회 제공

 
지난 1월, 대표팀 선수들은 기다리던 진천선수촌에 다시 입촌했다. 선수들에게는 기다렸던 순간이었다. 박완용 주장은 "선수촌 입촌 자체가 훈련에 매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수촌을 드나들기가 쉽지 않으니 답답한 부분도 있겠지만, 큰 무대에 선다는 자부심 하나로 입촌을 반겼다"고 말했다. 한건규 선수는 "훈련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코로나19 탓에 같은 팀 선수와도 보기가 어려웠는데, 함께 동고동락하는 선수들을 몇 개월만에 만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뻤다"며 웃었다.

서천오 감독의 올림픽 준비는 어땠을까. 서 감독은 "선수들이 종목이나 훈련에 대해 이해하는 정도가 높아졌다"며, "앞으로 대표팀 선수들 중에 지도자가 나올 수도 있고, 더욱 나은 문화를 만드는 선수가 충분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 감독은 "럭비는 무엇보다도 조직력과 체력이 중요하다. 선수들 혼자 잘 한다고 되는 스포츠가 아니다. 대표팀 스태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부분을 강화시켜주는 것이다. 우리도 럭비 강국에 비하면 늦었지만 스태프들을 중심으로 실전에서만큼은 다른 종목 못잖은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털어놨다.

선수들은 6월 말 올림픽 준비를 위한 마지막 담금질에 들어갔다. 여러 국가들이 출전하는 LA 럭비 세븐스 대회에 참가한 것.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해 실전 감각을 되살릴 수 있었던 선수들은 "올림픽에서 만날 선수들과 함께 시합에 뛰게 되어 기량을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고 LA 대회를 총평했다.

박완용 주장은 "감회가 새로웠다. 이번 대회를 통해 실전 감각을 높일 수 있었다"면서도, "1월부터 준비를 했지만 그 만큼 플레이가 나오지 않아 답답한 부분도 있었다. 성적 역시 그리 좋지는 못했다. 하지만 성적이 조금 아쉽다 하더라도 올림픽 본선에서 충분히 좋은 결과 내지 않을까 싶다"고 LA 럭비 세븐스를 돌아보았다.

한건규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번 대회로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았다. 부족한 부분에 대해 중점적으로 훈련하고 대비하면 나은 경기력을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장용흥 선수 역시 LA 럭비 세븐스에 첫 출전해서 얻은 것이 많았다며 웃었다.

"올림픽에서 마주칠 선수들과 함께 시합을 뛰니 더욱 신이 났어요. 직접 부딪혀보니 상대 선수들과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물론 성적은 아쉬웠습니다. 득점을 더 낼수도 있었고, 실점도 더 줄일 수 있었어요. 하지만 '팀 코리아'가 준비한 점을 테스트하니 득점으로, 좋은 작전으로 연결되는 것도 알았으니 다행입니다."(장용흥 선수)

"많은 인파 속에서 응원 받고 싶었는데..."
 
 대한민국 럭비 대표팀의 박완용 주장.

대한민국 럭비 대표팀의 박완용 주장. ⓒ 대한럭비형회 제공

 
선수들은 준비를 마치고 21일 도쿄로 출국한다. 하지만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많은 인파 속에서 응원받으며 대회를 치르는 평소의 올림픽과는 다른 풍경이 선수들 앞에 펼쳐진다. 도쿄 도 내 경기장의 무관중 방침에, 코로나 19로 인한 동선 제한까지 선수들을 힘들게 할 요소가 많다. 한건규 선수는 특히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꽉 찬 경기장에서 모두에게 응원받는 분위기를 느낄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무관중이 되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한건규 선수는 "원래는 지인들도 우리에게 응원을 오겠다고 이야기했고, 협회에서도 가족들이 응원하러 올 수 있도록 지원을 준비했다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은 관중석이 텅 비게 되었다. 다른 종목 선수들이 '올림픽 때의 기분'을 자주 이야기 해줬는데, 이번에는 느끼지 못할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나은 모습을 다짐했다. 장용흥 선수는 "올림픽에서 어떤 나라와 붙게 될 지 기대가 된다. 제대로 준비해 많은 국가들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박완용 주장도 "스태프 분들이 잘 준비해주시리라 믿는다. 우리 역시 몸 관리 잘 하고, 아쉬운 부분 잘 추스리면 좋은 성적 내지 않을까"라고 다짐했다.

서천오 감독은 준비 과정에서 최종 엔트리에 선발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다. 서 감독은 "최종 엔트리 13명까지 줄여가는 과정에서 낙마한 선수들에게 미안함이 크다"면서, "가는 선수들이 못 가는 선수들의 몫까지 해내고, 여기 있는 선수들은 물론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들 모두가 원 팀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한일전 꼭 맞붙고 싶어... 재밌는 종목으로 각인시켜 드리겠다"
 
 훈련하는 럭비 국가대표팀 선수들.

훈련하는 럭비 국가대표팀 선수들. ⓒ 대한럭비협회 제공

 
그렇다면 도쿄 올림픽에서, TV로 중계를 볼 국민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 한건규 선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럭비는 아직 '비인기 종목'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럭비가 무엇인지 묻는 분들도, 미식축구와 헷갈리는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이번 기회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면 '럭비가 이런 종목이구나'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올림픽을 통해 많은 분들이 럭비의 참맛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한건규 선수)

'한일전'이라는 무대가 성사되었을 때의 기대감도 있지 않을까. 한건규 선수는 "무조건 이길 것 같다. 이전에 있었던 대회에서도 한국이 많이 이기곤 했다. 우리도 일본과 했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일본과 한다고 해서 위축되지 않고, 한일전만큼은 무조건 이긴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장용흥 선수의 목표도 '한일전 승리'다. 그는 "올림픽 본선 무대에서 꼭 승리를 거두고 싶은데, 특히 일본과 만나 꼭 승리를 거두고 싶다. 럭비라는 종목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종목인지' 되묻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올림픽을 통해 우리 종목이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드러냈다. 서천오 감독도 도쿄 올림픽 목표를 '한국 럭비에 대해 좋은 시각을 남기는 것'이라 전했다. 이어 그는 "같은 조에 속한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팀이다. 톱 클래스이니만큼 준비도 철두철미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올림픽을 가까운 일본에서 하고, 일본 리그에서 뛰는 우리 선수들도 있으니 적응 면에서 어려움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올림픽 럭비란?
7인제 경기로 진행되는 럭비는 2016년 리우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지정되었다. 전반 7분, 휴식 후 후반 7분으로 진행되기에 경기 속도가 빠르고 박진감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 남자 대표팀은 26일 오전 10시 뉴질랜드와의 첫 경기를 시작으로 사흘간의 여정에 돌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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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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