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 애틀랜타 대회를 끝으로 25년째 중단된 한국 남자농구의 올림픽 도전사는 이번에도 초라한 실패로 끝났다. 조상현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농구대표팀은 2일(이하 한국시각)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잘기리오 아레나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최종예선 A조 최종전서 리투아니아에 57-96으로 대패했다. 1일 베네수엘라전(80-94)전에 이어 2연패를 기록한 한국은 올림픽 본선을 향한 도전을 여기서 마무리했다.

리투아니아는 요나스 발렌슈나스(멤피스 그리즐리스), 도만티스 사보니스(인디애나 페이서스) 등 현역 NBA(미프로농구) 주전급 선수들을 보유한 강호였다. 한국은 2019년 인천에서 열린 4개국 초청 국제농구 대회에서 리투아니아와 맞붙어 29점차(57-86)로 패배하며 그 위력을 확인한 바 있고, 2년 뒤 올림픽 티켓이 걸린 진검승부였던 이번 대회에서는 격차가 더 벌어진 모습이었다.

라건아 혼자 고군분투한 경기였다. 라건아는 1쿼터에만 팀이 기록한 16점 중 14점을 혼자 올렸을 정도로 분전했다.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리투아니아의 빅맨들을 상대로 골밑에서 고군분투했고 공격에서는 적극적인 중거리슛을 활용하여 득점을 올렸다.

그러나 도와주는 선수가 없었다. 이현중과 문성곤 등의 3점슛이 간간이 터졌지만 전체적으로 가드진이 부진하여 볼이 잘 돌지 않았고 라건아에게 의존하거나 시간에 쫓겨 무리한 슛을 던져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 반복됐다. 리바운드를 장악당한 한국은 특기인 속공을 전혀 살리지 못했고 오히려 리투아니아의 두 번째 공격에 쉬운 실점을 잇달아 허용하며 점수차가 벌어졌다. 한국은 34-49, 15점차로 전반을 마쳤다.

후반에도 베네수엘라전 '기적의 3쿼터'같은 한국의 흐름은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리투아니아가 발렌슈나스와 사보니스를 앞세워 적극적인 골밑 공략에 나서며 수비가 크게 흔들렸다. 사실상 공수에서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진 라건아의 체력이 떨어졌고 그나마 득점을 올려주던 이현중마저 파울트러블에 걸리며 한국은 추격의 동력을 잃었다. 한국은 3쿼터에는 고작 9점을 추가할 동안 무려 27실점을 내줬다. 점수차는 33점(43-76)으로 벌어지며 승부는 사실상 결정됐다.

가비지타임이 된 4쿼터에는 조상현 감독이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했고, 여준석과 하윤기가 돌아가며 과감한 덩크를 터뜨린 장면은 작은 위안이 됐다. 한국은 39점차 대패로 최종예선 도전을 마무리지었다. 라건아가 26점 8리바운드로 분전했다.

리투아니아는 베네수엘라와 한국을 연파하고 2연승을 챙기며 A조 1위를 차지했다. 리투아니아는 B조 2위 폴란드와 4강 토너먼트 경기를 치르며 승리 시 슬로베니아와 베네수엘라 전 승자와 격돌한다. 최종 우승팀에게만 도쿄올림픽 본선티켓이 주어진다.

한국농구는 과연 무엇을 얻었나
 
남자농구, 베네수엘라 도쿄올림픽 예선 첫 승 도전 조상현 감독이 지휘하는 남자농구 대표팀이 7월 1일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열리는 도쿄올림픽 남자농구 최종 예선에 출전한다. 사진은 인터뷰하는 조상현 대표팀 감독.

조상현 남자농구 대표팀 감독 ⓒ 연합뉴스

 
이번 대회에서 한국농구가 과연 무엇을 얻었는지 냉철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올림픽 최종예선은 사실상 본선에 나서도 손색이 없는 각 대륙의 강호들이 운집하는 대회다. 아시아는 미주나 유럽에 비하여 농구변방 취급을 받고 있으며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더 이상 일류팀이라고 할 수 없다.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농구가 A조 3개국 중 최약체였다는 것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고, 현실적인 목표는 올림픽 본선티켓보다 1승 도전이었다.

한국은 그나마 베네수엘라를 1승 제물로 노렸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사실상 베네수엘라전에서 패한 순간에 한국의 올림픽 최종예선은 이미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리투아니아는 한국이 이변을 기대하기에는 너무도 강한 상대였다. 한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슬로베니아-캐나다), 2012년 런던올림픽(도미니카-러시아)에 이어 3번째로 도전한 최종예선에서 6연패를 당하며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올림픽은 FIBA 농구월드컵과 함께 국제농구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메이저대회로 꼽힌다. 그나마 농구월드컵은 한국 남자농구가 최근 2회 연속(2014,2019) 본선에 진출했고, 2019년 대회에서는 순위결정전에서 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를 꺾고 25년 만의 본선 1승이라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올림픽과의 거리는 여전히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전주원 감독이 이끄는 여자농구대표팀이 2008년 베이징대회 13년 만의 본선진출에 성공했지만, 남자농구는 올림픽 본선티켓이 걸린 농구월드컵과 최종예선에서의 연이은 부진으로 고개를 숙였다.

농구월드컵과 달리 올림픽 농구 본선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는 총 12개국에 불과하다. 현실적으로 아시아 지역에 배분한 티켓(개최국 일본 제외)은 1장 뿐인데, 한국은 아시아에서도 중국, 이란, 필리핀 등 막강한 팀들과 경쟁해야 한다. 꾸준히 올림픽 무대에 출전하며 메달까지 따낸 역사가 있는 축구나 야구같은 종목들과는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항상 국제무대에서 좌절할 때마다 '세계의 벽은 높았다'는 뻔한 레퍼토리만 반복하기 전에 정작 한국농구는 그 벽을 낮추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는지 과정을 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보다 좋은 전력을 갖춘 아시아 강호들도 세계무대에서는 '1승 타깃' 취급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세계농구와의 격차를 좁히기 위하여 확실한 플랜과 도전의식을 가지고 조금씩 거듭해왔다는 게 차이점이다 심지어 중국-일본-이란 등은 NBA에서 활약하는 선수들까지 여럿 배출하기도 했다.

제자리걸음 한국농구

반면 한국농구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협회의 열악한 지원과 무능한 운영 때문에 전임감독제는 아직도 불안정하고 대표팀은 장기적인 기획은 커녕 제대로 된 평가전이나 전지훈련도 없이 국제대회에 나서는 경우가 빈번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있었다고 하지만 이전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로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은 항상 부상 선수들로 인하여 최상의 전력으로 12인 최종 엔트리를 완성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다. 대표팀 운영에 대한 제대로 된 시스템도 없고, 국제농구의 흐름에 대한 정보나 외교적 역량도 없는데 막연히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선수들의 신체조건과 운동환경은 과거보다 확실히 좋아졌지만 오히려 기량은 예전만도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은퇴한 지 벌써 10~20년이 지난 허재, 이충희, 서장훈 같은 선수들이 없다는 한탄이 아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현역으로 건재할 때도 한국농구의 경쟁력은 세계와 거리가 멀었다. NBA에서 벤치멤버로 잠깐 활약하다가 돌아온 하승진(은퇴)과, 현재 NCAA(미국대학농구)에서 뛰고있는 이현중(데이비슨대) 정도를 제외하면 해외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도 없다. 이제는 귀화선수 라건아 외에는 아시아에서도 톱클래스로 인정받는다고 할 만한 선수를 찾기 힘들다.

팀 경쟁력은 어떤가. 조상현호 출범 이후 첫 도전무대였던 아시아컵 예선과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한국농구는 약체 태국-인도네시아에게만 압승했을 뿐, 필리핀(2패)-베네수엘라-리투아니아라는 강팀들에게는 전패를 당하며 무기력했다. 프로 정상급 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낙마하며 최상의 전력을 가동하지 못했고, 젊은 선수들 위주로 꾸려진 1.5군 정도의 전력이었다. 유망주 이현중 정도만이 차세대 에이스로서 확실한 가능성을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공수에서 여전히 라건아에 의존하는 경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조상현 감독만의 차별화된 전술적 색채나 비장의 경기플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 프로 주전급들로 구성된 대표선수들은 기본기-몸싸움-체력 모두 국제무대에서는 낙제점이었다. 조상현호가 패배한 경기들을 살펴보면 스크린이나 박스아웃 상황에서 상대 선수들에게 힘에서 밀려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공간을 쉽게 내주는 장면이 많았다. 2대2게임에 쉽게 외곽 오픈찬스를 내주고 무수한 공격리바운드를 허용한 이유다.

또한 가드진은 상대가 하프라인에서부터 작정하고 강력한 압박을 걸어올 경우 공격전개는 고사하고 안정적인 볼 간수조차 어려움을 겪으며 실책을 남발했다. 몸싸움에서 밀리는 데다 높이의 열세를 스피드와 활동량으로 메우려고 하다보니 경기후반에 상대보다 체력이 일찍 고갈되어 무너지는 패턴도 반복됐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약점들이 조상현호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10년 전-20년 전에도 지적되었던 부분들이라는 데 있다. 조직력-수비-3점슛-속공 등으로 요약되는 '한국식 농구'를 수십년째 고집해오고 있지만 세계농구와의 격차는 좁혀지기는커녕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을 단지 '노오~력하지 않는 선수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오히려 라건아나 이현중같이 국제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팀 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이라면, 이제는 한국식 농구의 한계에 대한 진지한 재검토와 성찰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현실에만 안주하고 변화하려고 발전하는 의지가 없다면 개인이든 조직이든 모두 도태된다. 베네수엘라-리투아니아에 패한 것도, 올림픽 본선진출에 실패한 것도, 결과 자체가 크게 놀랍거나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에는 분명히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건졌는가는 또다른 문제다. 거듭된 실패에서 경험과 교훈을 얻지못한다면 한국농구가 앞으로도 올림픽 본선무대를 밟을 수 있는 기회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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