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와 벨기에가 유럽축구선수권대회 '유로2020' 8강에 진출했다. 28일(한국시각) 유럽 각지에서 열린 16강전에서 체코는 네덜란드를 2-0으로, 벨기에는 포르투갈을 1-0으로 각각 제압했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은 결국 토너먼트 첫 판에서 패해 짐을 싸야 했다. 

체코의 8강진출은 덴마크와 함께 이번 대회 최고의 이변이다. 한때 동유럽의 강호로 월드컵 준우승 2회, 유로 우승 1회(1976년)를 기록했던 호시절도 있었지만, 2000년대 후반 이후로 하락세를 타며 유럽의 중위권팀으로 전락했다.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40위로 한국(39위)보다도 낮았다.

체코는 이번 유로2020에서 잉글랜드. 크로아티아, 스코틀랜드와 D조에 편성되었다. 체코는 1승1무1패(승점 4)로 3위에 머물렀으나 와일드카드를 통해 16강에 합류했다. 유로 본선은 총 6개조의 각 조 1~2위, 그리고 각 조 3위 중 성적이 좋은 상위 4팀이 진출하는 방식이다.

16강에서 만나게 된 상대는 '오렌지군단' 네덜란드였다. C조의 네덜란드는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북마케도니아 등을 모두 제압하고 파죽의 3연승으로 조 1위를 차지했다. 멤피스 데파이, 조르지오 베이날둠, 마테이스 데 리흐트 등 쟁쟁한 스타플레이어들을 보유한 네덜란드의 전력은 체코보다 크게 앞선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경기는 뜻밖의 변수에 휩쓸리며 요동쳤다. 네덜란드는 수비수 데 리흐트의 실수와 퇴장이 치명타였다. 후반 10분 데 리흐트가 체코 스트라이커 파트릭 쉬크를 막아서다 핸드볼 파울을 범했다. 처음 주심은 옐로카드를 빼들었다가 VAR 가동 후 레드카드로 색깔을 바꿨다. 평범하게 볼을 처리할 수 있었던 상황이기에 데 리흐트의 판단 착오가 더욱 뼈아팠다. 졸지에 수적 열세에 몰리게 된 네덜란드는 체코의 거센 공세에 급격하게 흔들렸다. 체코는 후반 24분 홀레스의 헤딩 선제골을 기록했고, 후반 35분 쉬크의 쐐기골까지 터지며 2대0 완승을 거뒀다.

네덜란드로서는 유로 2008의 데자뷰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네덜란드는 마르코 판 바스턴 감독이 이끌던 2008년 유로 대회 조별리그에서 이탈리아(3-0), 프랑스(4-1), 루마니아(2-0)과 함께 '죽음의 조'에 포함되고도 파죽의 3연승으로 조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하지만 토너먼트 첫 판이던 8강(당시는 본선 16개국 체제)에서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러시아에 졸전 끝에 1-3으로 완패하며 탈락했다. 무려 13년만에 복귀한 유로 2020 16강 무대, 조별리그 완승-토너먼트 첫판에서 '언더독'에게 밀려 허무한 탈락이라는 패턴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반복됐다.

차이가 있다면 2008년에는 지금보다 네덜란드의 전력이나 위상이 더 화려했고, 2021년에는 조별리그에서 약체팀들을 만나는 대진운 덕분에 네덜란드의 실제 전력이나 위기관리 능력이 과대평가되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축구는 지난 유로 2016-2018 러시아월드컵에 잇달아 본선진출에 실패하는 굴욕을 당했고, 모처럼 명예회복을 노렸던 유로2020에서도 조기탈락하며 반복된 '메이저대회 울렁증'을 벗어나지 못했다.

체코는 8강에서 또다른 돌풍의 팀인 덴마크를 상대하게 되어 4강진출까지도 노려볼 수 있게 됐다. 체코가 유로에서 4강에 오른 것은 지난 2004년 대회가 마지막이었다.

체코는 월드컵에서는 2006 독일 대회를 끝으로 더 이상 본선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지만, 유로에서만큼은 1996년 대회 이후 7회 연속 본선에 개근하며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8년주기로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는 징크스도 있다. 체코는 2000년-2008년-2016년에는 본선에 오르고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으나, 1996년 준우승-2004년 4강-2012년 8강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다시 한번 8강에 오르며 한 대회를 건너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전통이 이번대회에도 이어졌다.

지난 대회 우승팀 포르투갈도 벨기에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일찍 짐을 쌌다. 결과적으로 '죽음의 조'의 또다른 피해자가 됐다. 포르투갈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프랑스, 독일, 헝가리와 함께 이번 대회 최대 죽음의 조로 꼽힌 F조에 편성되어 1승1무1패로 3위에 그쳤다. 와일드카드로 16강 티켓을 따내는데 성공했지만, 하필이면 토너먼트 첫 판부터 피파랭킹 1위이자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는 '황금세대' 벨기에를 만나는 불운한 대진운이 이어졌다.

포르투갈은 지난 대회에서도 조3위로 와일드카드로 생존했음에도 토너먼트에서 우승까지 차지하는 반전을 연출한 바 있다. 선수구성 상으로 보면 간판스타 호날두 의존도가 높았던 4년전에 비하여 전력은 더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두 번의 기적은 없었다.

벨기에전에서 포르투갈에게도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포르투갈은 이날 슈팅수에서 오히려 23-6으로 벨기에를 오히려 압도했다. 벨기에의 에이스인 케빈 데 브라위너와 에당 아자르가 경기중 연이어 부상으로 교체되는 변수도 있었다. 16강 진출팀중 베스트11의 연령대가 가장 높은 벨기에는 체력적으로도 약점이 있는 팀이었다.

하지만 벨기에는 전반 43분 토르강 아자르가 박스 안으로 파고 든 뒤에 묵직한 중거리 슈팅으로 포르투갈 골망을 뒤흔들었다. 바로 이 장면이 경기에서 벨기에가 만들어낸 유일한 유효슈팅이었다.

반면 포르투갈은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도 차려놓은 밥상을 떠먹지 못했다. 대회 초반부터 우려를 자아냈던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의 괴상한 전술과 잘못된 선수조합이 오히려 포르투갈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억제기로 작용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디오고 조타, 베르나르두 실바로 이어지는 포르투갈의 공격 삼각편대는 마지막 경기에서도 엇박자를 드러냈다. 교체멤버로 투입된 브루노 페르난데스와 주앙 펠릭스, 안드레 실바 등도 경기흐름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

이름값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자충수였다. 포르투갈의 에이스 호날두는 조별리그 전 경기에서 5골을 기록하며 역대 유로 본선 최다골(14골) 단독 선수, A매치 역대 최다골(109골, 이란 알리 다에이) 타이 기록을 수립했지만 득점의 절반 이상인 3골이 PK였다. 호날두는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PK와 세트피스 등을 전담하고 있는데 벨기에와의 16강전에서는 이게 독이 됐다. 포르투갈은 무수한 세트피스 찬스를 얻었지만 수많은 기회를 독점한 호날두의 킥 적중률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효과적인 플레이로 이어지지 못했다.

나이를 감안할 때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유로 대회 본선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호날두는 팀의 패배가 확정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장 완장을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한 시대의 축구 역사를 새롭게 쓴 호날두였지만 마지막 퇴장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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