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루스는 날개를 얻어 드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그러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을 향한 호기심에 날아오르던 이카루스는, 뜨거운 태양에 다가간 댓가로 날개가 타버리며 바다로 추락하여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선을 넘어선 인간의 욕망이 파멸을 불러올수 있다는 교훈을 일깨우는 사례도 자주 인용된다.

농구선수 김민구의 농구인생은 이카루스와 닮았다. 짧지만 누구보다 찬란하고 화려했던 비상, 그리고 정점에 오르기 직전의 갑작스러운 추락, 그 원인이 바로 스스로의 교만으로 자초한 파멸이라는 점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안타까운 반면교사였다.

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의 김민구가 최근 은퇴를 선언했다. 올해 31세, 농구선수로서는 아직 한창 뛸만한 나이지만 김민구는 2021-22시즌 연봉협상 과정에서 팀 관계자에게 돌연 은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민구는 대학 시절부터 뛰어난 운동능력과 기술을 겸비한 장신 가드로 주목받았다. 동기 김종규-두경민과 함께 '경희대 빅3'으로 불리우며 중상위권팀이었던 경희대를 일약 대학농구 최강자로 이끌어 최전성기를 연 주역으로 꼽힌다.

특히 김민구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게 된 계기는 대학 재학 중 성인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한 2013년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선수권대회(현 아시아컵)였다. 김민구는 예상을 깨고 최종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데 이어 대회 기간 내내 팀의 '조커'로 맹활약을 펼치며 대학생 신분으로 '대회 베스트5'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당시 유재학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은 양동근, 김주성, 이승준, 조성민 등 프로 최고의 선수들이 모두 결집한 최정예 멤버였다. 심지어 김민구는 이 대회가 성인대표팀 태극마크를 달고 첫 출전한 국제대회였다. 대회 시작 전만 해도 주전이 아니라 조성민에 이은 슈팅가드 2옵션이었고 경기당 평균 출전 시간은 20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민구는 아시아선수권에서 9경기서 모두 출전하여 평균 12.7점(114득점)을 쏟아부으며 팀내 득점 1위이자 가장 많은 3점슛(25개, 성공률 37.9%)을 적중시키며 에이스로 활약했다. 또한 리바운드(평균 4.1개, 팀내 3위)와 어시스트(평균 2.7개, 팀내 2위)에서도 팀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전천후 플레이를 해냈다.

특히 김민구의 활약은 중요한 토너먼트에서 더 빛을 발했다. 필리핀과 준결승에서 3점슛 5개를 포함해 27점을 쏟아부었고, 농구월드컵 출전권이 걸려있던 대만과의 3.4위전에서도 3점슛 5개 포함 21득점을 기록하는 신들린 슛감각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유재학호는 김민구의 활약을 앞세워 대회를 3위로 마감하며 16년 만의 농구월드컵 본선행까지 거머쥐는 성과를 거뒀다. 그야말로 '깜짝 스타'의 탄생이었다.

양동근-허훈-김종규-서장훈-김주성-오세근 등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역대 스타들조차 국제무대에서는 데뷔하자마자 이 정도로 빼어난 활약을 펼친 경우는 드물다. 심지어 김민구는 당시만 해도 프로도 아닌 대학생 신분이었다. 1990년대 프로화 이후로는 대학과 프로의 수준 격차가 벌어지며 대학 최정상급 선수라도 프로에 오면 출전시간을 확보하기도 어려워진 게 현실이다. 김민구의 2013년은 '농구대잔치 시대' 이후 대학 선수가 A대표팀에서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준 마지막 사례로도 남아있다.

당시 김민구에게 열광한 농구팬들을 중심으로 '포스트 허재' '구비'라는 별명이 생겨났다. 허재는 설명이 필요없는 대한민국의 농구대통령으로 불린 인물이고, 구비는 당시 NBA 최고의 스타였던 고 코비 브라이언트와 김민구의 이름을 결합한 별명이다. 다른 선수도 아닌 허재와 코비가 비교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김민구에게 거는 기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김민구는 그해 열린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공교롭게도 허재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던 전주 KCC에 2순위(당시 1순위는 창원 LG 김종규)로 지명되는 묘한 인연을 맞으며 '농구대통령의 후계자'라는 타이틀로 언론과 팬들의 많은 스포트라이트까지 부여받았다. 김민구는 데뷔 첫해 2013-14시즌 절친 김종규에 밀려 신인왕은 놓쳤지만 46경기에 출전하여 평균 13.4점·5.1리바운드·4.6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남다른 재능을 증명했다. 요즘 같았으면 신인왕은 말할 것도 없고 MVP 후보로도 거론될만한 성적이었다.

하지만 김민구의 찬란한 비상은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2014년 여름 김민구는 음주운전사고를 저지르며 농구인생의 운명이 엇갈렸다. 심지어 당시 김민구는 농구월드컵과 인천 아시안게임 출전을 앞두고 대표팀에 차출되었다가 잠시 외박기간중 벌어진 사고였다.

이 사고로 김민구는 중상을 입었고 고관절과 신경을 크게 다치며 특유의 운동능력을 잃었다. 그를 향한 여론도 싸늘했다. 농구팬들은 촉망받던 라이징스타가 그것도 대표팀 차출기간동안 벌인 무절제한 행보에 큰 배신감을 느꼈다. 농구계와 소속팀 KCC 구단이 부상을 핑계로 김민구에게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을뿐 아니라, 그마저도 얼렁뚱땅 넘기려고 했던 것도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김민구는 약 1년여의 재활을 거쳐 2015-16시즌 코트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예전의 기량과 인기를 회복할 수는 없었다.

부상당시만 해도 조기 은퇴까지 예상되었던 것을 감안하면 김민구는 예상보다 프로무대에서 오래 버텼다. KCC에서 식스맨으로 선수생활을 이어가다가 2019-20시즌 사인&트레이드로 DB로 이적하여 경희대 동기인 김종규-두경민과 한 팀에서 재회하며 평균 7점·2.7리바운드·2.8어시스트로 활약하기도 했다.

2020-21시즌에는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현대모비스로 이적하여 대표팀에서 영광을 함께한 유재학 감독과 재회했다. 김민구는 KBL 역대 최고인 연봉 인상률 557.1%를 기록하면서 소소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시즌도 현대모비스에서 48경기나 출전하여 평균 19분 42초동안 6.3점 2.8리바운드 2.1어시스트로 식스맨으로는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정규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나이나 성적을 감안할 때 당연히 올 시즌에도 선수생활을 이어갈 것으로 보였지만 김민구는 돌연 이적 1년만에 은퇴를 선언했다. 음주운전 사고 이후 고질적인 무릎 상태가 김민구의 은퇴 결정을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규경기 통산 성적은 8년간 243경기 출전해 1496점 623리바운드 531어시스트 201스틸의 기록을 남겼다.

현재 MVP급 선수로 성장한 동기 김종규나 두경민보다도 잠재력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을 감안할 때, 김민구가 만일 사고를 안치고 순탄하게 선수생활을 이어갔다면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 상상해보곤 한다. 

김민구의 흥망성쇠가 남긴 교훈은 운동선수에게 자기관리의 중요성, 특히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데 있다. 음주운전으로 중상을 입고 선수생활까지 하락세로 접어들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셈이다. 

김민구는 지난 24일 SNS에서 은퇴를 공식발표하며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남겼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김민구의 생일이기도 했다. 김민구는 "아쉽지만 저의 21년 농구 인생은 여기서 막을 내려야 할 것 같다"며 "초등학교 3학년 10살부터 농구를 시작해서 31살까지 정말 쉴 틈 없이 달려왔고, 길지 않지만 파란만장한 농구선수 인생이었다"고 회상했다. 

김민구는 자신의 가장 뼈아픈 흑역사에 대해서도 피하지 않고 언급했다. 그는 "프로에 처음 오자마자 많은 팬분들께 엄청난 관심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과분한 사랑을 받다 보니 내 자신이 세상 최고인 것마냥 주위를 보지 못하고 오만하고, 거만하고, 이기적으로 살았다"며 "그런 절 하늘도 알았는지 제게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정신 차리라며 큰 배움을 얻게 해주었다"며 음주운전 사고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이어 "어린 나이에 큰 고통과 절망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제가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일이지만, 혹여 팬분들의 비난과 손가릭질을 쉽게 감당 못 할 것 같은 걱정이 앞서 너무 긴장해 식은 땀이 정말 많이 흘러 내렸다"며 "제 이름이 불리고 코트에 나가 인사를 하는 순간 걱정과 달리 큰 박수로 환호하며 반겨주셨던 팬분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저는 더 열심히 뛸 수 있었고, 그날 보내주신 팬분들의 큰 힘이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 같다"며 감사의 인사도 전했다.

김민구는 농구선수로서의 인생을 함께해 준 프로 구단 관계자들과 선후배 동기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새로운 출발을 약속했다. 김민구는 앞으로는 스킬 트레이너로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예정이다. 한 시대를 짧고 굵게 풍미했던 유망주가 이른 나이에 역사속으로 조용히 퇴장하는 모습은, 지켜보던 농구팬들에게도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