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 앤더슨 실바(46·브라질)가 대형사고를 쳤다. 20일(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 할리스코 스타디움서 있었던 복싱 경기에서 세자르 차베스 주니어(35‧멕시코)를 판정으로 제압해 버렸다. 최종 판정은 2대 1이었지만 사실상 3대 0이 맞다는 의견이 많을 정도로 압도적 승리였다. 격투 팬들 사이에서는 "역시 '투신(鬪神)'이다"라는 극찬까지 쏟아져 나오고 있는 분위기다.

이번 승리는 실바의 격투 커리어에도 상당한 의미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MMA 은퇴를 선언했던 실바는 전형적인 종합격투기 선수다. 스트라이커 유형으로 한 시대를 풍미하기는 했지만 그의 타격은 레슬러, 주짓떼로 등 그래플러까지 감안해서 완성된 스킬이다. 두 주먹만 쓰는 복싱과는 여러모로 다를 수밖에 없다. 

단순히 평균 정도 되는 복서라해도 버거웠을 상황에서 이번에 꺾은 상대는 복싱계에서도 거물급으로 평가받는 선수였다. 차베스 주니어는 '신이 빚은 복서'로 불리던 레전드 훌리오 세자르 차베스의 아들이다. 아버지만큼 엄청난 명성을 날리지는 않았지만 WBC(세계복싱평의회) 미들급 챔피언 출신의 강자다.

통산 59승(34KO) 5패의 성적을 거두고 있었으며 지난해 11월 제이슨 민다를 4라운드 닥터 스톱 TKO로 제압하며 성공적 복귀를 알리기도 했다. 각종 배팅사이트 등에서 차베스 주니어의 무난한 승리를 점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경기 전까지만 해도 실바의 승리보다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졌다. 단순히 다른 영역에 도전해서 강자와 경기하는 것을 떠나, 나이 역시 실바가 훨씬 많았던지라 눈 씻고 찾아봐도 유리한 구석이 없어 보였다.

실바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UFC 미들급 챔피언 자리를 지키며 10차 방어, 16연승을 기록했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후 노쇠화가 몰려오며 9경기 1승(7패 1무효)에 그쳤다. 그런 상황에서 익숙하지도 않은 복싱 경기에 나섰던지라 승리를 예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뼈속까지 타격가였던 노장은 새로운 무대에서도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앤더슨 실바는 UFC 미들급 역사상 최고의 챔피언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늦은 나이의 복싱 도전은 분명 커다란 모험이었다.

앤더슨 실바는 UFC 미들급 역사상 최고의 챔피언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늦은 나이의 복싱 도전은 분명 커다란 모험이었다. ⓒ UFC 아시아 제공

 
아직 죽지 않은 투신, 복싱계를 놀라게 하다
 
1라운드에서 잠깐의 탐색전을 마친 실바는 2라운드부터 서서히 기어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성큼성큼 압박해 들어오는 차베스 주니어에게 반 박자 빠르게 공격을 내며 타이밍을 끊어먹는 것을 비롯 경쾌한 스탭과 움직임으로 좋은 펀치 각도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렇게되자 당황스러워진 것은 차베스 주니어였다.

링 중앙을 선점하고 전진해 들어가는 쪽은 자신이었지만 코너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리듬을 타는 실바에게 계속해서 유효타를 허용했다. 안면과 복부를 노리고 스트레이트성 공격이 계속되자 안면 가드를 바싹 올리며 경계를 했지만 연이은 어퍼컷이 가드 빈곳을 뚫고 들어와 차베스 주니어를 괴롭혔다. 접근전에서는 묵직한 바디블로우가 복부와 옆구리를 노렸다.

어느새 경기 주도권은 실바 쪽으로 넘어왔고 차베스 주니어는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자신감을 완전히 찾은 실바는 노가드 스타일은 물론 스스로 뒷걸음질 쳐 코너로 간 후 차베스 주니어에게 들어오라고 도발했다. 둘 다 UFC 시절 자주 쓰던 실바의 비전절기였다.

예외도 있겠지만 복싱에서 코너를 등지게 되면 불리한 포지션에 처한 것임은 분명하다. 실바는 스스로 자꾸 코너를 선택하며 강력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차베스 주니어의 펀치를 지척에서 흘리듯이 피하며 짧게 카운터를 노리는 모습에서는 전성기 시절이 떠올랐다. 상황이 그쯤되자 차베스 주니어는 실바가 코너 구석에 갇혀있어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복싱 무대에서는 자신을 괴롭혀왔던 테이크다운이 없어서였을까. 5라운드부터는 차베스 주니어를 바싹 압박해 코너로 모는 등 인파이팅도 과감하게 시도하는 실바였다. 어깨를 맞댄 채 근거리에서 과감하게 치고받았다. 카운터 장인 실바가 인파이터로 빙의하는 순간으로 종합무대에서도 좀처럼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잽으로 견제하다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서 단발성 훅과 어퍼컷을 시도하는 것은 물론 안면, 바디로 이어지는 콤비네이션 공격도 자연스러웠다. 복싱 초보가 아닌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복서 같았다.

중반 이후 마음이 다급해진 차베스 주니어는 어지간한 잔매를 각오하면서 전진기어를 세게 밟았다. 그럼에도 경기는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스탭에서 실바에게 밀렸던지라 좀처럼 움직임을 잡아내지 못했고 근거리에서는 유연한 '위빙(weaving)-더킹(ducking)'에 막혀 헛손질만 일삼을 뿐이었다. 가드를 바싹 올리고 전진해도 기다리고 있던 실바의 어퍼컷에 계속해서 정타를 내줬다.

차베스는 마지막 라운드에서 필사적으로 인파이팅을 시도했지만 노련한 실바는 끝까지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다. 결국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실바는 별다른 큰 위기 한번 없이 복싱 거물을 판정승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실바의 압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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