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최고의 슈퍼스타에게도 천적은 있다. 심지어 그 천적이 개인도 아니고 팀이라면 더욱 거대한 산처럼 느껴진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에게는 독일이 바로 그런 존재다.

20일 오전(한국시간) 독일 뮌헨에 위치한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20 F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독일이 포르투갈을 4-2로 제압했다. 지난 1차전에서 프랑스에 패했던 독일은 포르투갈을 제물로 대회 첫승을 신고하며 조 2위(1승1패)로 올라섰다. 포르투갈과의 A매치 역대 전적에서도 11승 5무 3패의 압도적인 우위를 이어갔다.

반면 첫 경기에서 헝가리를 대파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던 포르투갈은 독일과 승점이 같지만 유로 대회의 승자승 우선 원칙에 따라 조 3위까지 밀려났다. 여기에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는 또다른 우승후보 프랑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있는 만큼 토너먼트 진출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호날두는 현재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며 국가대표팀에서도 맹활약을 펼쳤지만 유독 A매치에서 독일 대표팀만 만나면 힘을 쓰지 못하는 징크스가 있었다. 첫 만남이었던 2006년 독일 월드컵 3, 4위전 1-3 패배를 시작으로, 2008년 유로 2008에서는 2-3으로 패했다. 4년 뒤인 2012년 유로 2012에서 0-1 패,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0-4로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만 4번 만나 모두 패했다. 심지어 호날두는 독일전에서 4경기 동안 단 한 골도 넣지 못하며 유독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운이 따라주지 않은 측면도 있다. 독일은 역사적으로 항상 메이저대회 우승후보로 꼽히는 전통의 강팀이다. 특히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중반은 하필 독일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우승(2014 브라질월드컵)을 비롯하여 최고의 정점을 찍던 시기였다. 호날두도 당시 신체적으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지만 팀 자체의 전력차가 워낙 컸다. 수비수 페페의 퇴장으로 일찍 경기가 기울어진 2014년 월드컵처럼 호날두가 팀동료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일찌감치 고립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번 경기는 호날두가 독일 징크스를 깰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다. 디펜딩챔피언인 포르투갈은 호날두 원맨팀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전력이 급상승했다. 베르나르두 실바(맨체스터 시티), 디오고 조타(리버풀), 곤살로 게데스(발렌시아), 주앙 펠릭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즐비하다. 반면 독일은 세대교체 실패와 공격진 약화로 2018년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이후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었다. 독일은 1차전에서는 마츠 훔멜스의 자책골로 프랑스에 졸전 끝에 패배하여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독일은 호락호락하게 무너지지 않았다. 포르투갈은 전반 15분 호날두가 독일전 무득점 징크스를 마침내 깨는 선제골로 앞서 나갔으나 전반 35분과 30분 루벤 디아스와 게레로가 연달아 자책골을 기록하며 1-2로 역전당했다. 기세가 오른 독일은 후반 6분 카이 하베르츠, 후반 15분 로빈 고센스가 추가골을 터뜨리며 승기를 잡았다.

포르투갈은 후반 22분 조타가 호날두의 어시스트를 받아 1골을 만회하는 데 그쳤다. 대회 전부터 포르투갈의 최대 약점으로 거론되었던 노쇠한 수비력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경기였다. 이로써 포르투갈은 2000년 6월에 열렸던 유로 2000에서 당시 암흑기를 보내던 독일에 3-0으로 승리한 것을 마지막으로 무려 21년째 독일전 무승 징크스를 이어갔다.

독일전 5연패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호날두로서는 그나마 맹활약을 펼치며 독일에 약하다는 이미지를 떨쳐버린 것이 작은 위안이었다. 호날두는 이날 독일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유럽통계 전문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에서 선정한 양팀 출전선수 중 최다평점인 8.5점을 받았다.

허무하게 자책골을 내준 게레이로가 양 팀 최저인 5.6점이었고, 독일 선수 중에는 1골 1도움과 상대 자책골을 이끌어내며 승리의 주역이 된 로빈 고센스가 8.4점으로 최다점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세리에A 아탈란타에서 활약중인 고센스는 올시즌 이탈리아 리그 경기를 마치고 호날두에게 유니폼 교환을 신청했다가 단칼에 거절당하는 굴욕을 겪고 화제가 된 바 있어서, 이번에 제대로 복수한 셈이 됐다.

독일전 패배에도 불구하고 현대축구사의 득점기록을 새롭게 써내려가고 있는 호날두의 개인적인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독일전에서 1골을 추가한 호날두는 자신의 A매치 통산 107호골을 터뜨리며 역대 A매치 최다골의 주인공인 알리 다에이(이란)의 109골 기록에 2골 차이로 근접하여 또 다른 대기록에 한 발 다가섰다.

호날두는 이미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유로 본선 최다골 기록은 12골로 늘렸다. 이번 대회전까지 미셸 플라티니와 9골로 동률을 기록했던 호날두는 지난 헝가리전에서 2골을 추가하며 단독선두로 올라섰고, 골을 추가할 때마다 신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예선을 포함하면 43골인데 이 역시도 1위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두 메이저 대회인 월드컵과 대륙선수권(유로) 본선을 합산한 개인 최다득점 기록은 독일의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19골이다. 호날두는 유로 12골, 월드컵에서는 총 6골을 기록하며 18골로 클로제의 기록을 1골 차이로 추격하고 있다. 호날두의 나이를 감안할 때 국가대표 경력과 유로 출전은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 될 수 있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호날두의 득점행진이 계속될 수 있을지의 여부는 포르투갈이 얼마나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느냐에 달렸다. 하필 월드컵 우승국 프랑스와 독일, 지난 유로대회 우승국인 포르투갈이 한 조에 편성된 F조는 이번 대회 최대 '죽음의 조'로 꼽힌다. 독일이 포르투갈을 잡던 날, 같은 조의 우승후보 프랑스는 최약체로 꼽힌 헝가리와 2차전에서 예상을 깨고 1-1 무승부에 그치는 이변이 발생했다.

프랑스가 현재 승점 4점으로 선두에 올라있지만 최종전에서 포르투갈을 만나는 만큼 승패를 예측하기 힘들다. 두 팀은 바로 지난 유로 대회 결승전에서 만나 호날두의 부상 교체에도 불구하고 포르투갈이 프랑스를 꺾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호날두는 당시 거친 플레이로 자신에게 부상을 입혔던 프랑스에, 프랑스는 준우승의 아픔을 안겼던 포르투갈에 각각 갚아야할 빚이 있는 셈이다.

유로 2020은 6개 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치른 뒤 각 조 1, 2위 팀과 3위 팀 가운데 성적이 좋은 4개 팀(와일드 카드)이 16강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명불허전 죽음의 조에 걸맞은 명성대로 혼전 양상을 펼치고 있는 F조의 운명에 축구팬들의 시선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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