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MBN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 MBN

 
MBN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 속의 광해군(김태우 분)은 국정을 운영하는 군주의 모습보다는 옹주(권유리 분)에게 생긴 불상사에 대처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훨씬 많이 보여준다. 집권당인 북인당의 지도자이자 옹주의 시아버지인 이이첨(이재용 분)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실제 역사와 관계없이 이 드라마는 '광해군과 이이첨이 최고권력을 놓고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는 허구의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반적인 국정 운영보다는 옹주 문제를 둘러싸고 전개된다. 보쌈을 당해 실종된 옹주와 그를 보쌈한 김대석(바우, 정일우 분)을 둘러싸고 광해군과 이이첨이 갈등하는 장면을 주로 묘사한다.
 
국정 문제보다는 사적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다 보니, 이 드라마에서는 광해군의 개인적 특성이 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개혁군주 광해군의 정치적 특성보다는, 인간 광해군의 개인적 기질이 더 많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드라마에 나타나는 그런 특성 중 하나는 신경질적이고 광적인 모습이다. 지난 12일 13회 방송에서도 그 같은 장면이 나왔다.
 
광해군이 이이첨을 견제할 목적으로 주인공 김대석을 무과시험에 내보내자, 이이첨은 이를 방해하고자 다른 응시생을 시켜 김대석을 쏘도록 했다. 실수로 조총을 잘못 다루는 척하면서 김대석을 쏘도록 한 것이다.
 
광해군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고 야당인 서인당 소속의 김자점(양현민 분)을 통해 김대석에게 방탄조끼를 입혔다. 덕분에 김대석은 가슴에 총을 맞고도 맞지 않은 것처럼 금방 일어났다. 이 일이 있은 뒤 이이첨과 북인당 정권은 살인미수범인 그 응시생을 과실범으로 처리하고 곤장형을 부과한 뒤 방면했다.
 
실수로 총을 잘못 다뤄서 생긴 사건이라 범인을 풀어줬다는 보고를 받은 광해군은 "과인이 직접 문초할 테니 지금 가서 당장 그 자를 잡아오시오"라며 짜증을 냈다. 이이첨과 신하들은 "아니 되옵니다!"라며 "명확한 물증도 없이 사감으로 일을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말로써 광해군을 제지했다.
 
말문이 막힌 광해군은 몸을 비틀어대며 짜증 섞인 말투로 "그대들은 도대체 누구의 신하란 말인가?"라며 괴성을 지른다. "다들 물러들 가시오!"라며 악을 쓰던 광해군은 내금위장(서범식 분)을 급히 불러 "머리가 깨질 것 같구나. 어서 약을 다오!"라고 애원한다. 어전을 나온 이이첨은 "전하의 광증이 점점 심해진다 하니 조선의 앞날이 걱정이오"라고 말한다.
 
 MBN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MBN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 MBN

 
이런 장면이 이따금 나오기는 하지만, 드라마 속의 광해군이 이 같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장난기 있어 보이는 미소를 띨 때도 있고, 상당한 인내심을 보여줄 때도 있다.
 
옹주가 보쌈 당했다는 사실을 임금에게 알리지 않고 마음대로 옹주 장례식을 치른 뒤 실제로 옹주를 죽이려 하는 이이첨의 행동을, 광해군은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그러면서 이이첨의 죄를 입증할 물증을 차분하게 추적하는 한편, 이이첨을 무너트리고자 김대석과 김자점에게 힘을 실어준다. 신하들 앞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는 모습과 정반대인, 집요하고 참을성 있는 모습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적인 공간에서 발현된 광해군의 실제 성격은 건강 상태를 통해 어느 정도 추론할 수 있다. 그의 성격을 보여줄 만한 질병으로는 화증(火症, 화를 잘 내는 증세), 울열증(속 답답함), 안질 등이 있다.
 
음력으로 광해군 2년 4월 23일자(양력 1610년 6월 14일자) <광해군일기>에 따르면, 만 35세인 광해군은 '오성과 한음'의 한음 이덕형과 나눈 대화에서 어려서부터 열이 많아 화증과 울열증을 앓았다고 털어놨다. 또 광해군 10년 윤4월 22일자(1618년 6월 14일자) <광해군일기>에 따르면, 43세인 광해군은 내의원 의료진과의 대화에서 오랫동안 안질을 앓았는데도 효과적인 처방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화증·울열증·안질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체내의 열이다. 몸 안에 열이 많으면 화증이나 울열증이 생길 뿐 아니라 눈에까지 영향을 미쳐 안질을 초래할 수도 있다. 광해군의 몸 안에서 소통이 잘 이뤄지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건강에 더해, 콤플렉스 역시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선조에게 적장자가 없고 후궁 자녀인 서얼들만 있었던 시절에, 광해군은 가장 유능한 왕자인 데다가 신하들의 지지를 받았는데도 아버지로부터 세자 책봉을 받지 못했다.
 
책봉을 꺼리던 선조는 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17세의 광해군을 서둘러 세자로 책봉하고 전쟁 지휘를 맡겼다. 그 일이 있은 뒤에는 명나라가 광해군에게 제동을 걸었다. 친형인 임해군이 있는데도 광해군을 책봉할 필요가 있느냐며 거듭거듭 승인을 거부했다.
 
광해군은 1592년에 조선 국내법에 의해 세자가 됐지만 명나라의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명나라와의 관계에서는 조선의 세자임을 주장할 수 없었다. 국제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놓였던 것이다.
   
 MBN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MBN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 MBN

  
이렇게 된 것은 그가 어머니 김공빈(공빈 김씨)과 아버지 선조 사이의 장남이 아닌 차남이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전에는 첩의 자식, 후궁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아버지의 배척을 받다가, 임진왜란 발발 이후에는 차남이라는 이유로 명나라의 배척까지 받게 된 것이다.
 
광해군이 31세 때인 1606년, 인목대비(당시 22세)와 선조(54세) 사이에서 영창대군이라는 적장자가 출생했다. 그 전까지 광해군은 적장자 형제가 없는 상태에서 서얼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
 
그런데 영창대군이 출생한 뒤로는 적장자 형제가 눈앞에 있는 상태에서 동일한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 갓 태어난 영창대군은 광해군이 아무리 노력해도 평생 도달할 수 없는 지위를 단번에 확보했다. 눈앞에 이런 동생이 출현했으니, 광해군의 콤플렉스는 한층 더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영창대군의 존재는 광해군의 약점을 생생히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였다.
 
이렇게 30이 넘어서까지 서얼이라는 이유로, 차남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은 광해군은 33세에 왕이 된 뒤로 콤플렉스의 원인들을 폭력적으로 제거했다. 신하들의 적극적 건의에 의한 것이기는 했지만, 최종적으로 재가한 것은 어디까지나 광해군 자신이었다.
 
임금이 된 이듬해인 1609년에는 친형인 임해군이 죽고, 1614년에는 영창대군이 죽었다.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인 김제남은 외손자가 죽기 1년 전에 사형을 받았다. 1618년에는 영창대군을 낳은 인목대비가 서궁(덕수궁)에 유폐됐다. 그리고 광해군의 어머니라는 법적 지위를 상실했다.
 
자신에게 차별의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파탄 냈다는 것은 광해군의 콤플렉스 극복 방식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만약 그가 긍정적 방법으로 내면의 콤플렉스를 극복한 인격적 완성자였다면, 신하들이 아무리 적극적으로 건의한다 해도 좀더 다른 대응 양식을 보여줬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몸 안의 열이 관리되지 않아 화증·울열증·안질을 평생 앓았다는 점, 콤플렉스의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끝내버렸다는 점 등은, 사생활 공간에서 나타나는 광해군의 성격이 그리 원만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보쌈>의 광해군은 이따금 히스테리한 면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장난기 있는 미소를 띠기도 하고 개인적 원한에 대해 참을성과 인내심을 보이기도 한다.

실제의 광해군은 세자 시절에는 복수를 자제한 데 반해 즉위 후에는 자제하지 않았다. 드라마 속의 광해군은 충분한 힘이 있는데도 호흡을 조절하면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보쌈> 속 광해군은 무엇보다 콤플렉스로 인한 번민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실제의 광해군보다 <보쌈>의 광해군이 좀더 편한 성격의 보유자라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훌륭한 군주'와 '성격 좋은 군주'가 반드시 등치하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업적을 내는 사람들 중에는 성격이 원만하지 못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광해군의 성격이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그가 훌륭한 군주가 아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회적 차별 구조에 대한 통제되지 않는 저항심이 그의 개혁정책에 밑바탕이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광해군은 훌륭한 군주이지만 성격은 원만하지 못한 군주였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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