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보수정권에 할 말 많습니다. 11년째 얘기했습니다. 보수정권 때 국가유공자 몇 명 됐는지 아십니까? 6명입니다, 6명. 지금 문(재인) 정권 때 유공자 더 많이 됐습니다. (최원일 전) 함장님이 전역 당일 날 명예 진급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해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기자들 부른 것도 되게 불편합니다. 또 (천안함을) 이용하려고 밖에 생각 안 들어요. 농성 37일차 동안 국민의힘에서 아무도 안 오셨잖아요. 보수정권 반성하셔야 합니다. 왜, 이때까지 보수정권에서 해 준 게 없으니까."


지난 11일 국민의힘 천안함 유족·생존자 초청 행사에 참석한 전준영 천안함 생존자전우회장의 일침이다. "천안함(유족‧생존자들이) 국민의힘 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라며 조곤조곤 말을 이어가던 전 회장의 모습을 지켜보던 최원일 전 함장은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았다.

실제 문재인 정권 4년 간 국가유공자가 된 천안함 희생자는 7명. 최 전 함장 역시 지난 2월 전역하며 중령에서 대령으로 명예 진급됐다. 그런 그가 MBC <PD수첩> 카메라 앞에 섰다. 15일 방송된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 편을 통해서였다. 이날 방송에서 중요 문건을 최초 공개한 최 전 함장 또한 정치인들에게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MBC <PD 수첩>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 편.

MBC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 편. ⓒ MBC

 
"제가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천안함을 제발 정치에는 이용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보수 때 일어난 사건 아니냐며 외면하고,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진보를 힐난하기 위한 대상으로 '너희는 안 믿지 않느냐' 이렇게 이용을 하고, 이 반복이 11년간 계속되고 있거든요."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PD수첩>은 한국사회와 보수‧진보 정권 모두에게 '계륵' 같은 비극인 천안함 침몰 사건을 두 번째로 다루면서 최대한 생존자들의 증언에 천착하는 동시에 이를 검증하고 있었다.

우선 각종 음모론이 횡행하고 논란이 분분한 침몰 원인에 대해선 최 전 함장을 비롯한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라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맞고 침몰했다는 정부 조사 결과"를 신뢰하는 듯했다. 그럼에도 규명해야 할 책임은 남는다. 침몰 시각인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이후 11년이 넘도록 (전체 104명 중 46명이 희생되고) 살아남은 58명의 생존자와 유족들의 고통을 더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묵살

최초 보고내용 중 "좌초, 폭발음, 침몰 중, 구조바람"이란 내용이 포함됐다. 이때 쓴 '좌초'라는 표현이 천안함 좌초설의 빌미가 됐다고 한다. 하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최 전 함장과 장교 및 대원들은 당시에도 입을 모아 "해상 사고가 아닌 외부에 의한 공격"이나 "북한 어뢰 공격"을 가장 먼저 생각했고, 실제 보고도 그렇게 이뤄졌다. 좌초라는 단어 또한 침몰 조난과 같은 용어였을 뿐 최초 상황이 정확히 인지돼 사용한 용어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비극은 이후 어이없는 상황의 연쇄로 더 짙어졌다. 애초 천안함의 경계 실패만을 문제 삼은 것부터 어불성설이었다. 천안함 침몰로부터 넉 달 전 발생한 이른바 대청해전 이후 대청도와 백령도 해역에 긴장이 고조됐다. 북한군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북한군이 최고 수위 보복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천안함 침몰 사건 직전에도 북한 잠수정의 이상 징후가 보인다는 첩보가 이미 군 내부에 감지됐고, 사건 당일에도 북한 잠수정이 모습을 감춘 미식별 상태가 포착됐다는 것. 북 잠수정 활동에 대한 정보가 존재했음에도 군의 경계 소홀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최 전 함장은 천안함 사고 뒤 열린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에서 김종태 전 기무사령관(예비역 육군 중장)이 언급한 주요사항을 정리한 문건을 최초로 공개하기도 했다.
 
- 천안함 사건 발생 전 사전 징후를 인지하여 국방부/합참에 보고하였으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
- 사전징후라는 것이 무엇인가 문의(윤연)하자 수중 침투 관련 징후였다고 답변했음.
- 침투징후를 예하부대에 전파하지도 않았고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았음.
- 합참의장에게 조치를 취해주도록 여러 번 요구했으나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음.
- 예하 부대인 함대는 상급부대로부터 사전 징후가 전파되지 않아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었음.

정리하자면, 사건 직전 김종태 기무사령관은 김태영 국방부장관(및 합창 의장)을 직접 만나 북한군의 이상 징후를 보고했지만 결과적으로 묵살 당했고, 그 결과가 바로 천안함 침몰이었다는 것.
 
 MBC <PD수첩>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 편.

MBC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 편. ⓒ MBC

 
다시 말하자면, 충분히 막을 수 있거나 진상을 일찍 규명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 이하 군 당국의 대응 소홀로 발생한 것이 천안함 사건일 수 있다는 얘기였다. 2010년 10월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당시 김태영 장관 또한 "적의 잠수함의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저희 나름대로 판단은 있었지만 그걸 오늘날같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저희 불찰"이라며 잘못을 일부 시인한 바 있다.

오판

"이게 비밀이어서 공개하기도 힘든 부분들이에요. (대응) 매뉴얼은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하시면 돼요. 우리 아들이 맞고 오면 고소를 하거나 아니면 가서 따지거나 아니면 아들 같은 경우 친구들 데려와서 다시 보복 공격하겠죠. 그런 식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복 공격이) 안 이뤄졌죠."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

어이없는 상황은 사건 직후 계속됐다. 부하들이 적의 확실한 도발이라 판단하고 다급하게 보고를 했다. 그럼에도 우리 군은 묵살하기 바빴고 안일하게 대응했다. 대잠수함 작전 능력을 갖춘 'LYNX헬기'와 '해상초계기'가 사고 해역에 도착한 시각은 사고가 난지 무려 2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사건 당일) 21시 43분 해군작전사령부는 합동참모본부에 천안함 선체 파손으로 침수 중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어뢰공격 보고는 누락됐습니다. 이 시각 이상의 합참의장은 대전에서 술을 마신 후 KTX 열차를 타고 상경 중이어서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합참은 다음 날 01시 36분에야 군사대비태세 강화지시를 하달했습니다." (전종환 아나운서)
 
 MBC <PD수첩>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 편.

MBC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 편. ⓒ MBC

 
그렇게 어뢰 공격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됐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1차 '서해에서 초계함 침수', 2분 뒤 2차 보고에는 '천안함, 파공으로 침몰 중'이란 내용으로 보고됐다. 사건 발생 2시간 후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안보 장관회의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군 소행으로 예단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애초 어뢰 공격 자체를 배제했으니 대응 공격이 이뤄질 리 만무했다.

그런 정부의 기조는 당시 사고현장에 도착했던 속초함의 대응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건 직후이던 오후 10시 55분 속초함 레이더에 고속으로 북상하는 정체불명 물체가 잡혔다. 5분 동안 135발을 포격했지만 속초함이 쫓던 표적은 NNL 위 북한 해역으로 사라졌다.

속초함 함장 및 간부들은 상부에 보고하기 전 놓친 표적의 정체를 놓고 회의를 열었다. 그런 속도를 낼 수 있는 해상표적은 반잠수함밖에 없다는 데 의견이 모였고 상부에도 그렇게 보고했다. 하지만 상급부대인 22전투전대 전대장은 "새떼 아니냐?"고 되물었고, 결국 상부로부터 압박을 느낀 속초함은 최종적으로 '새떼로 판단됨'이란 문자 보고를 전달했다.

'새떼 침몰설'은 그렇게 완성됐다. 역시 같은 해 10월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해군2함대 사령관은 그런 보고를 받은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2함대 전대장(대령) 또한 <PD수첩> 제작진의 취재에 "별로 관심 없습니다"라며 일절 응하지 않았다. 해군에서 레이더를 관측하는 '전탐사'로 13년을 근무한 전직 해군은 새떼 침몰설을 이렇게 일축했다.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 레이더를 십여년간 20년, 30년 본 사람들이 그걸 식별을 못한다? (옷 벗고) 제대해야죠."

그리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배 만들어봐 아는데... 북 개입 증거 없어", "높은 파도에 배가 올라갔다 떨어지는 과정서 쉽게 부러질 수 있다"며 북한 어뢰공격 발언을 금기시하는 듯한 말을 이어갔고, 세때 침몰설도 그런 용도로 활용됐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의 어이없는 활약(?)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천안함 생존자들이 "보수정권 반성하셔야 합니다"라고 했던 이유가 다분했다.

금기의 세월
 
 MBC <PD수첩>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 편.

MBC '천안함 생존자의 증언' 편. ⓒ MBC

 
"북한 어뢰공격 발언은 금기시 됐습니다. 국방부장관이 국방에서 어뢰 관련 발언을 하자 청와대에 쪽지가 전달됩니다. VIP, 즉 이명박 대통령이 장관의 답변이 어뢰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외교안보수석을 통해 주의를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전종환 아나운서)


김성환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은 MBC 취재에 "기억이 안 난다"고 답했다. 김성찬 당시 해군참모총장 역시 국정감사에 출석해 어뢰피격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일축한 뒤 "함장이 보고한 게 아니고 거기 작전관인가, 포술장이 뭔가 맞은 것 같다고 이야기한 것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

반면 최 전 함장은 "어뢰에 의한 피격"을 분명히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반전이 일어났다. 그해 5월 15일, 사고해역에서 수색작업을 하던 쌍끌이 어선 대평호가 어뢰의 추진 동력 장치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다.

"추진체를 발견한 지 닷새 뒤인 5월 20일 군은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채 군은 서둘러서 추진체 어뢰 설계도까지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설계도는 다른 어뢰의 설계도로 드러나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나흘 뒤인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은 대북 규제조치를 발표했습니다. 6.2 지방선거를 약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여당은 천안함 조사 결과를 거론하며 안보를 내세워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전종환 아나운서)

이후 천안함은 전가의 보도처럼 정치에 활용됐다. 그러는 사이 갖가지 의혹들이 제기됐다. <PD수첩>은 암초에 의한 좌초설, 한미연합훈련 중 미군 어뢰 타격설, 이스라엘 잠수함 충돌설 등은 생존자 증언 등을 근거로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생존자들은 패잔병 취급을 받았고, 천안함 사건 당시 작전을 지휘한 군 수뇌부의 징계 대상 간부 9명 중 4명이 징계가 취소됐다. 징계를 받은 5명도 감경되거나 이후 승진했다.

"이건 작전실패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현장 지휘관의 문제라고 호도한 거잖아요. 군의 대표 수장들이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국민들은 믿죠. 국민들이 그렇게 보게 된 건 그렇게 유도를 한 거잖아요. 내 별이 떨어지는데 내 어깨 위에 달려 있는 별이 떨어지는데 병 몇 명, 영관급 한두 명 정리하면 우리가 지켜지는데, 너무 쉽잖아요." (이정국 천안함 유가족 1차 대표)

"제가 생각하기에 해군 내에서 저희는 패잔병이에요. 저희는 그냥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북한 어뢰 맞은 패잔병이에요. 대원들을 반 가까이 죽여 놓고 살아 돌아온 패잔병 밖에 안 되는... 저희랑 같이 있으면 안 좋은 일 생긴다고 같이 있지 말라고 장교한테 그 소리를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김정원 당시 하사)


<PD수첩>이 천안함 사건을 다룬 것은 사건 직후와 이번이다.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라는 듯, 방송 직후 '아직 의혹이 채 다 규명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스라엘 잠수함 충돌설 등 여타 의혹에 대한 검증 자체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최 전 함장을 비롯해 생존자들의 목소리가 정치적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리라.

방송은 그간 왜 천안함 생존자 전우회장이 "이때까지 보수정권에서 해 준 게 없다"며 억울해 했는지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었다. 생존자들이 증언한 천안함 침몰 전후 군과 이명박 정부의 대응이 딱 그랬다. 방송 직후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정부 당국의 대응이 세월호 참사와 언뜻 비슷하다는 반응이 나왔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아울러 최 전 함장이 왜 이제야 증언에 나설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성실하고도 진심어린 답변이기도 했다. 분명한 건 제작진의 결론대로 "온갖 억측과 음모론 속에서 가장 고통 받고 있는 건 아마도 천안함 생존자와 유가족일 것"이란 사실일 터. 이날 <PD수첩>이 그 음모론을 전부 검증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럼에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거대한 오해를 풀기엔, 그리고 논의를 다시 시작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PD수첩 천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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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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