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마르소의 머리 위로 헤드폰이 내려앉은 순간, 사랑은 시작됐습니다. 소녀의 눈앞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지요. 아등바등 사느라 자주 놓치게 되는 당신의 낭만을 위하여, 잠시 헤드폰을 써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현실보단 노래 속의 꿈들이 진실일지도 모르니까요. Dreams are my reality.[기자말]
 청하-콜드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커버 이미지

청하-콜드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커버 이미지 ⓒ 느을


20년 전의 노래가 지금도 널리 사랑 받는다면 그건 '명곡'이라 불릴 만하겠다. 지난 2001년 발매한 혼성그룹 샵(s#arp)의 4.5집 타이틀곡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을 그런 점에서 명곡이라 부르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이 곡을, 20년 후의 후배인 청하와 콜드(Colde)가 새롭게 재해석했다. 지난 8일 발표한 리메이크 버전의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은 원래 4명이서 부르던 원곡과 달리 마음을 일대일로 주고받는 듀엣곡으로 편곡됐다. 랩 파트 중 일부를 축소하고 보컬을 강조한 게 특징이다.

원곡을 뛰어넘는 리메이크는 드물다지만, 개인적으로 왠지 더 비애가 느껴지는 이번 듀엣곡 버전에 마음을 빼앗겼다. 청하와 콜드, 두 가수의 담백한 가창의 합도 참 좋다.

"울지 마 이미 지난 일이야/ 삶의 반직선 위의 점일 뿐이야/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야/ 어른이 되는 단지 과정일 뿐야/ Uh 단지 과정일 뿐야"

도입부의 이 랩 가사는 2000년대를 지나온 이라면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 때의 나는 '삶의 반칙선'인 줄 알았다. 반칙선이 뭐지? 하고 의문을 품긴 했지만 정확한 뜻을 사전에서 찾아볼 만큼 부지런하지 못했기에, 스포츠 경기에서 쓰이는 나만 모르는 용어인가보다 하며 줄곧 반칙선으로 불러 젖혔다. 그러다 이번 리메이크를 들으면서 '반직선'이란 자막이 눈에 띄었고 곧바로 스마트폰을 열었다.

* 반직선(half-line): 한 점에서 시작하여 한 방향으로만 무한히 곧게 뻗은 선.

반칙선이란 단어는 있지도 않았다. 직선이 양쪽으로 무한하게 뻗은 선이라면, 반직선은 출발점이 있고 한 방향으로 쭉 뻗은 선이니 이건 삶의 모양 그 자체 아닌가. 죽음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한 방향으로 흐르는 우리의 인생 말이다. 알고 들으니 '삶의 반직선 위의 점일 뿐'이라는 노랫말이 더 마음 쓸쓸하게 다가왔다.

"제발 이러지 말아요/ 끝이라는 얘기/ 나는 항상 시작인 걸요/ 그댈 사랑하는 마음/ 점점 커져가고 있는 날/ 잘 알잖아요"

랩이 지나고 가창 파트가 시작된다. 이별을 말하는 랩에 반박하며, 이별을 말하지 말라고 상대는 애원한다. 애절하고 여리여리한 가사가 아닐 수 없다. 이쯤되면 작사가가 궁금해진다.

이 곡을 작사한 원태연은 시인이기도 하다. 외모에서부터 섬세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남성의 모습을 상상한 나의 예상과 달리, 지난 9일 SBS 파워FM <두시탈출 컬투쇼>에 출연한 그를 보니 털털하고 유머러스하고 엉뚱해보였다. 반전이었다. 그리고, 그가 앞서 한 인터뷰에서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과 관련해 푼 이야기를 읽고 더욱 반전을 실감했다. 나는 정말이지 트렌치 코트의 깃을 한껏 세우고서 고독을 씹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왔는데.    

"(웃음)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원 작가는 안에 소녀가 있는데, 그걸 숨기려고 이렇게 상남자처럼 구는구나.'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작품 속에 쑥 들어갔다 나오는 순간이 있다. 들어갈 땐 좋은데, 나오면 '이걸 보내도 돼?'라는 생각이 들면서 얼굴이 빨개진다. 예를 들면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쓸 때도 '내가 미쳤구나' 싶었다. 마치 여고생이 된 듯 "제발 이러지 말아요. 끝이라는 얘기~"라고 노래하지 않나. 내 작품을 볼 때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걸 인정한다(웃음)." - 문화웹진 채널예스(2020.11.13) 
 
 청하

청하 ⓒ MNH엔터테인먼트


"네가 밟고 걷는 땅이 되고 싶던 난/ 잠시라도 네 입술 따뜻하게 데워준/ 커피가 되어주고 싶었던 난/ 아직도 널 울리고 있을 거야/ 아마도 난

사랑해 사랑하는 마음 말고 왜/ 이렇게도 너무/ 필요한 게 많은 건지 왜/ 지금 너를 만나지 않아도 널/ 울리고 있을 내가/ 나는 왜 이리도 싫은 건지"


요즘 노랫말들과 비교해보면 단연 2000년대 감성은 진지하고 진지했던 것 같다. 지금 들으면 더 낭만적이게 느껴지는 이유다. 후반부에 가면 "꿈에서라도 싫어요/ 떠나지 말아요/ 나는 죽을지도 몰라요"라는 대목이 이어지는데, 죽음까지는 오버가 아닌가, 지금의 정서로 보면 이런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꽤 문학적이고 낭만적인 가사가 아닐 수 없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러했듯, 사랑 때문에 사람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바쁜 현대인인 나는 그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산 것 같다.

"그래 어느 하늘 아래 안에/ 작은 내 사랑/ 이젠 나의 사랑 한단 말도/ 의미도 잠시/ 힘들었던 지나간/ 나의 넌 기리 위리/ 우리의 히리 위리/ 돌릴 수 없는 우리"

기리 위리? 히리 위리? 반칙선 미스터리는 풀었지만 이건 진짜 모르겠다. 아마도 추임새 같은 거겠지. 아무튼 기리 위리, 히리 위리의 포인트가 지금 들어도 세련되고 맛깔 난다. 그리고, 노랫말은 끝까지 슬프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어른이 되는 과정일 뿐이라고 이별을 위로했던 도입부의 화자는 또 다시 확인사살을 하지 않나. '돌릴 수 없는 우리'라고(그런데 또 사실은 사랑하고 있단다). 

"지나간 사랑으로 날/ 그대의 추억 속에서 살게 할 건가요/ 사랑은 계속 커져갈 텐데/ 이대로 나를 정말 보낼 건가요"

상대는 그러나 끝까지 매달린다. 자신의 사랑은 점점 커져 가는데 이대로 나를 정말 보낼 거냐며 이별을 받아들이지 끝내 못한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새드 엔딩이지 싶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가 더 애틋하다.
 
 콜드

콜드 ⓒ WA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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