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또 한 번 우리에게 '뷰티풀 게임'의 가치를 알려주었다. 이번에는 그 중심에 한국 국가대표 축구 팀 주장 '손흥민'이 우뚝 섰다. 그의 소속 팀 토트넘 홋스퍼에서 오랫동안 함께 뛰던 옛 동료 크리스티안 에릭센(덴마크 국가대표)이 EURO 2020 핀란드와의 게임 중에 심정지로 쓰러졌다가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일이 게임 내내 손흥민의 마음을 무겁게 했겠지만 그는 끝내 역전 결승골을 터뜨린 직후 자신을 상징하는 골 세리머니를 뒤로 미루고 에릭센을 위한 메시지를 손가락으로 표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축구 그 이상의 가치를 깨닫게 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고 있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이 13일 오후 3시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레바논과의 마지막 게임에서 2-1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12팀이 겨루는 최종 예선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후반전, '침대 축구' 뒤집기

게임 시작 후 12분만에 레바논의 골이 먼저 터졌다. K리그 2 안산 그리너스에서도 뛰었던 수니 사드가 한국 센터백 김영권을 등지고 돌아서면서 재치있는 왼발 슛을 성공시킨 것이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처럼 레바논의 침대 축구가 전반전 내내 모두를 괴롭혔다. 정말로 아파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레바논 선수들은 작은 충돌에도 쓰러지는 바람에 의료진이 들어와서 머문 시간이 점점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 게임을 통해 승점 1점이라도 얻게 되면 최종 예선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이에 한국 벤치에 있던 벤투 감독조차 발길질로 레바논의 '더티 풋볼'에 크게 화를 낼 정도로 알 마리 카미스(카타르) 주심은 의료진이 들어와 치료하는 시간을 비교적 충분히 확보해주었다. 세상 이치가 그렇듯 축구장이 늘 아름다울 수는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한 가장 현명한 대응 방법은 역시 진정한 축구 실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일이라는 점을 후반전에 우리 선수들이 보여주었다.

벤투 감독은 후반전을 시작하면서 이재성 대신 남태희를 들여보내 '손흥민-황의조'에 집중된 공격 부담을 분산시켰다. 그리고 조금 더 섬세하고 빠르게 공격을 풀어나갈 것을 주문했다. 전반전에 상대를 위협할만한 슛을 날리지 못한 황의조가 49분, 유연한 방향 전환 드리블 실력으로 오른발 감아차기를 날린 덕분에 코너킥 세트 피스 기회가 우리에게 찾아왔고 연거푸 얻어낸 또 하나의 코너킥 기회에서 송민규의 이마가 빛났다. 50분, 손흥민의 오른쪽 코너킥을 받아 송민규가 헤더 슛을 날렸는데 바로 앞에 있던 레바논 수비수 마헤르 사브라의 머리에 맞고 방향이 오른쪽으로 바뀌어 들어간 것이다.

비록 이 귀중한 동점골이 마헤르 사브라의 자책골로 기록됐지만 주장 손흥민은 송민규에게 달려와 그의 뛰어난 위치 선정을 칭찬했다. 또 송민규가 포항 스틸러스에서 보여주고 있는 특유의 온몸 비틀기 세리머니를 흉내내며 후배의 특별한 동작까지 꿰고 있는 주장의 품격을 확인할 수 있는 인상깊은 순간이었다. 

"stay strong, I love you 에릭센"

상대의 지저분한 침대 축구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우리 선수들은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흥민은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는 특별한 의식을 펼쳤다.

이제 남은 일은 직전까지 침대 축구를 펼치던 그들을 더 조급하게 만들기 위해 게임을 뒤집어버리는 것이었다. 여기서도 주장 손흥민의 드리블 실력이 빛났다. 64분에 레바논 한복판을 휘저으며 빠르게 공을 몰고 달려온 손흥민이 상대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빠져들어가는 교체 선수 남태희에게 정확한 키 패스를 열어주었고 여기서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남태희의 방향 전환 드리블을 막기 위해 몸을 날린 조안 오우마리가 핸드 볼 반칙을 저지른 것이다.

키커로 나선 손흥민은 오른발 인사이드 킥을 골문 오른쪽 구석으로 정확하게 차 넣었다. 그리고는 골문 옆 카메라 쪽으로 달려가며 손가락으로 23이라는 숫자를 표시했다. 토트넘 홋스퍼에서 함께 뛰던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등번호였다. 방송 카메라 대형 렌즈를 붙잡고는 에릭센 이름을 부르며 "stay strong, I love you"라는 구체적인 메시지까지 보냈다. 

때론 축구가 보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도 축구 본연의 섬세하고도 놀라운 플레이와 함께 이렇게 깊고 따뜻함을 담은 메시지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뷰티풀 게임'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주장 손흥민을 포함한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이 멋지게 보여준 셈이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결과
(6월 13일 오후 3시, 고양종합운동장) 

한국 2-1 레바논 [득점 : 마헤르 사브라(50분,자책골), 손흥민(65분,PK) / 수니 사드(12분)]

한국 선수들
FW : 손흥민, 황의조
AMF : 송민규(82분↔황희찬), 이재성(46분↔남태희), 권창훈(82분↔손준호)
DMF : 정우영
DF : 홍철, 김영권, 박지수(66분↔원두재), 김문환(62분↔이용)
GK : 김승규

H조 최종 순위표
한국 16점 5승 1무 22득점 1실점 +21 ☆ 최종 예선 진출!
레바논 10점 3승 1무 2패 11득점 8실점 +3
투르크메니스탄 9점 3승 3패 8득점 11실점 -3
스리랑카 0점 6패 2득점 23실점 -21

최종 예선 진출 팀 결정
한국, 시리아, 호주, 일본
C조 이라크는 현재 승점 17점으로 1위(2위는 15점의 이란), 마지막 1게임으로 최종 순위 결정됨
D조 사우디 아라비아는 현재 승점 17점으로 1위(2위는 15점의 우즈베키스탄), 마지막 1게임으로 최종 순위 결정됨
G조 베트남은 현재 승점 17점으로 1위(2위는 15점의 UAE), 마지막 1게임으로 최종 순위 결정됨
E조 1위 카타르는 월드컵 개최국이므로 최종 예선 불참(아시안컵 본선 진출권 확보)
각조 2위 중 상위 5팀이 최종 예선 진출

◇ 조별리그 현재 2위 팀 상황
A조 중국 16점 5승 1무 1패 27득점 2실점 +25
B조 요르단 14점 4승 2무 1패 13득점 2실점 +11
C조 이란 15점 5승 2패 33득점 4실점 +29
D조 우즈베키스탄 15점 5승 2패 18득점 6실점 +12
E조 오만 15점 5승 2패 13득점 6실점 +7
F조 키르기스스탄 10점 3승 1무 3패 18득점 7실점 +11
G조 아랍에미리트 15점 5승 2패 20득점 5실점 +15
H조 레바논 10점 3승 1무 2패 11득점 8실점 +3
(H조 북한의 중도 포기로 A~G조 최종 순위는 최하위 팀의 게임 결과를 임의로 빼 결정함)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