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진행된 2018-2019 영국 프리미어 리그 토트넘 홋스퍼 FC와 번리FC의 경기에서 토트넘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득점한 후 기뻐하고 있다.

에릭센 ⓒ EPA/연합뉴스

 
손흥민의 전 팀동료이자 덴마크 국가대표 축구선수인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경기중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칫 큰 사고으로 이어질수 있었던 위험한 사고였지만 모두의 노력과 기도가 모아져서 불행중 다행으로 더 큰 비극을 막을수 있었다.

에릭센이 속한 덴마크는 13일(한국 시간)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20 B조 핀란드와 조별리그 1라운드를 치렀다. 0-0이던 진행되던 전반 42분 왼쪽 터치라인에서 스로인을 이어받는 에릭센이 돌연 앞으로 쓰러졌다. 외부와의 어떤 충돌과 없었던 갑작스러운 상황이었다. 심상치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주심과 양팀 선수들이 바로 에릭센 곁으로 모여들었고 다급하게 의료진을 호출했다.

의료진은 그라운드에서 에릭센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고, 시간이 무려 10여분이나 흘렀다. 심각한 분위기에 양팀 벤치와 관중석도 모두 침묵에 빠졌다. 외부인의 출입은 원래 금지되었지만 심상치않은 상황에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에릭센의 아내가 경기장까지 내려와 남편 곁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 모든 축구팬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됐다

초조하고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선수들의 동료의식과 휴머니즘이 빛을 발했다. 덴마크 대표팀 선수들은 어느샌가 일제히 쓰러진 에릭센 주위에 모여 원을 그리며 둘러섰다. 에릭센의 위중한 모습을 카메라와 관중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게 하려는 배려였다. 몇몇 선수들은 에릭센이 응급처지를 받는 모습을 차마 보지못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덴마크의 주장인 시몬 키예르는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보여줬다. 키예르는 덴마크 미트윌란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뒤 릴, 세비야 등을 거쳐 현재는 AC밀란에서 뛰고 있다. 2009년부터 덴마크 축구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A매치 100경기 이상을 소화한 덴마크의 베테랑 수비수다.

에릭센이 의식을 잃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가서 혀가 말려들어 기도를 막지 않았는지 확인하며 의료진이 도달하기전에 1차 응급처치를 한 것도, 선수들에게 관중과 카메라에 쓰러진 에릭센의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둘러싸라고 지시한 것도 모두 키예르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또한 에릭센의 아내가 충격에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 쪽으로 내려오자 키예르가 곧바로 다가가 패닉에 빠진 그녀를 진정시키고 위로하기도 했다.

상대팀인 핀란드 선수들과 관중들도 삼삼오오 에릭센을 위하여 모두가 한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에릭센은 한참후 의식을 되찾으며 들것에 실려 나갔다. 장내 아나운서가 에릭센이 의식을 회복했다고 밝히자 관중석에서는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에릭센이 진행요원들에 의하여 경기장 밖으로 옮겨질때까지 관중들은 에릭센의 이름을 연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약 90여 분 넘게 지연됐다가 재개된 경기에서는 핀란드가 요헬 포흐얀팔로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했다. 이 골은 핀란드가 처음으로 유로 본선 무대에서 득점을 터뜨리는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포흐얀팔로를 비롯한 핀란드 선수들은 에릭센과 덴마크를 배려하여 골세리머니를 자제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매너를 지켰다.

에릭센의 소식이 알려진 이후 전세계 축구계에서도 그의 쾌유를 비는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로멜루 루카루(벨기에)는 인터 밀란 동료인 에릭센을 위한 골 세리머니를 펼쳤다. 덴마크-핀란드전 직후에 열린 벨기에와 러시아의 경기에서 루카루는 골을 넣고 카메라 바로 앞까지 달려가 카메라 렌즈 앞에서 입모양을 또박또박하게 보여주며 "크리스, 사랑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과거 토트넘에서 에릭센을 지휘했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과 최근까지 인터밀란에서 함께했던 안토니오 콘테 감독 등 은사들도 개인 SNS를 통해 에릭센의 쾌유를 빌었다.포르투갈의 주장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개인 SNS에 에릭센과 함께 A매치에서 상대했던 사진을 올리며 "우리 모두 진정으로 에릭센과 그의 가족을 응원한다. 그라운드에서 에릭센과 함께 뛰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강하게 버티길"이라며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에릭센은 덴마크 축구가 배출한 세계적인 선수다.킥과 패스에서 뛰어난 능력을 과시하며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다. 네덜란드 아약스 유스와 1군을 거쳐 프로에 데뷔했고 2013년 여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훗스퍼로 팀을 옮기며 7시즌간이나 활약하면서 토트넘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015년부터 합류한 손흥민과 동갑내기 팀동료로 오랫동안 함께 손발을 맞추며 2019년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 등 눈부신 순간들을 만들어냈다. 2020년부터는 이탈리아 인터밀란으로 이적하며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고 본인도 고대하던 프로무대 첫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덴마크 대표팀에서에서도 이미 센츄리클럽(100경기 출전)에 가입했고 주장까지 역임했을만큼 최고의 스타로 인정받고 있다.

다행스럽게 유럽축구연맹(UEFA)과 덴마크 축구협회는 공식발표를 통하여 에릭센이 의식을 회복했으며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마터면 불행한 비극으로 이어질수 있었던 위기를 모두의 응원과 노력이 모아져서 함께 극복해낸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한편으로 에릭센의 사고는 유로2020의 안전한 진행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축구선수들이 경기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사고는 종종 벌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2011년 5월 신영록(당시 제주 유나이티드) 신영록이 대구FC와의 홈경기 도중 부정맥에 의한 급성 심장마비로 그라운드에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한 일이 있으나, 주변 동료들과 의료진의 신속한 응급조치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후로 응급조치의 중요성을 깨달은 축구계에서 응급상황 시 대처사항, 의료진 구성 등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신영록은 목숨을 건졌지만 안타깝게도 더 이상 선수생활을 이어가지는 못했다. 2012년 볼턴 원더러스 시절 심장마비로 쓰러져 무려 78분간이나 사망 상태에 놓였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한 파브리스 무암바도 은퇴 수순을 밟아야했다. 손흥민과 동갑인 아직 29세로 축구선수로서는 한창 나이인 에릭센의 커리어에 이번 사고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축구팬들은 안타까운 심경으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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