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파더 > 중

< 더 파더 > 중 ⓒ 판씨네마㈜


※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윤여정의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뜨거웠던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올해는 특이하게도 최우수 작품상 대신 남우주연상 시상이 마지막 순서였다. 지난 해 세상을 떠난 <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 >의 故 채드윅 보스먼이 유력한 수상자로 점쳐지던 상황이었다. 올해 시상식을 연출한 스티븐 소더버그 역시 채드윅 보스만의 수상을 예측했고, 아내인 시몬드 레드워드가 수상 소감을 하는 상황을 준비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측과 달랐다. 남우주연상 트로피는 < 더 파더 >에서 치매 노인을 연기한 앤서니 홉킨스에게 돌아갔다. 앤서니 홉킨스의 영상 소감조차 준비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시상식은 허무하게 마무리되었다.
 
시상식의 허무한 엔딩이 남긴 아쉬움과 별개로, 여든셋의 노장 앤서니 홉킨스는 (자신의 첫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작이었던) < 양들의 침묵 >(1992)의 한니발과 견줄만큼 절륜한 연기를 선보였다. < 더 파더 >를 연출한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각본을 쓰는 과정에서 앤서니 홉킨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에게 지속적인 러브 콜을 보냈다. 그 결과, 앤서니 홉킨스는 자신과 같은 생년월일(1937년 12월 31일)을 지닌 '앤서니'라는 인물을 연기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잎사귀가 지고 있다
 
 < 더 파더 >는 필연적인 관계의 역전을 그리고 있다.

< 더 파더 >는 필연적인 관계의 역전을 그리고 있다. ⓒ 판씨네마㈜


<더 파더>는 플로리안 젤러(Florian Zeller)가 쓴 프랑스 연극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플로리안 젤러는 자신이 쓴 이야기를 직접 영화화했다. <더 파더>는 치매 노인이 마주하는 '세계의 붕괴'를 다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처럼 시대를 호령했던 권력자조차도 말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치매를 '살아있는 죽음'이라 부른다.그러나 우리는 그 단계를 걷고 있는 이의 시점을 들여다 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치매 노인을 다룬 예술 작품은 많았으나, 대부분 그를 부양하는 가족의 시선에서 서술되었던 것이 대부분이다. 치매 노인은 주변부적인 존재처럼 타자화되거나, 무한한 사랑만을 기억하는 존재로 그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 더 파더 >는 치매 환자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김혜자 주연의 JTBC 드라마 < 눈이 부시게 >를 떠올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 앤서니는 런던의 아파트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노인이다. 그런데 그에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매일 아침마다 천지개벽을 반복한다. 반긴 적 없는 '데자뷔' 현상은 갈수록 심해진다. 왜 딸의 얼굴이 바뀌는지, 왜 낯선 남자가 우리 집 부엌에 있는지, 죽은 딸을 닮은 간병인은 몇 번째로 이 집에 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자신에게 많은 신경을 쏟는 보호자들에게는 '나를 장애인처럼 대하지 말라'며 으름장을 놓는다. 이 영화에서 시간은 결코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앤서니는 '손목 시계'를 자꾸만 찾으면서, 자신의 비선형적 기억을 붙든다. 관객이 느끼는 혼란은 곧 앤서니(앤서니 홉킨스)가 느끼는 혼란이다. 그가 겪던 혼란의 정체는 영화의 최후반부가 되어서야 밝혀진다.
 
기억의 파편이 혼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앤서니는 무엇이 진실인지 쉽게 알 수 없다. 그것은 중증 치매 환자가 겪는 아침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관객이 앤서니의 혼란을 함께 체험하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관조적인 카메라로 그의 붕괴를 지켜본다. 퇴행을 거듭하던 기억의 마지막은 가장 안온했던 추억 앞에서 발을 세운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어린 아이처럼 '엄마'를 찾고, 간호사의 품에 안겨 오열한다. 영화 후반, 간호사의 품에 안겨 "내 모든 잎사귀가 다 지는 것만 같아(I feel as if I'm losing all my leaves)."라고 울먹이는 모습에 관객 역시 무너질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이며, 필연적으로 작아지는 존재일 것이다. 앤서니 홉킨스는 그 운명을 걷는 모습을 충실히 연기했다. 필연적 소멸을 지켜보는 자식의 운명을 연기한 올리비아 콜맨의 존재감도 크다. 앤이 프랑스에 간다고 할 때, 앤서니는 '나를 버리는 것이냐'라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딸을 키우던 아버지의 입장이 아버지를 돌보는 딸의 모습으로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그 관계의 역전이 주는 씁쓸함은 이 영화에서 치매의 공포 못지않게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소멸의 공포를 헤아린다는 것
 
 < 더 파더 >의 앤서니 홉킨스

< 더 파더 >의 앤서니 홉킨스 ⓒ 판씨네마㈜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이 영화를 '스릴러'에 비유했다. 유령도, 범죄자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 영화는 웬만한 스릴러 영화 이상의 서스펜스를 만든다. 미세하게 바뀌어 있는 소품 등 인물의 혼란을 극대화하는 연출은 물론, 이탈리아 출신의 현대 음악가 루도비코 에이나오디(Ludovico Einaudi)의 음악 역시 집중도를 끌어 올린다.
 
이 영화는 인간 보편의 주제를 체험의 영역으로 전환한다. 치매는 누구나 목격할 수 있는 일이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플로리안 젤러 감독은 이 이야기를 쓰면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과거를 떠올렸고, 앤서니 홉킨스는 연기를 하는 동안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에게도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팔순을 넘긴 외할머니다. 그녀는 치매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TV 토론에 등장하는 정치인과 패널의 이름을 정확히 외우고, 고령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의 기억에 오류가 없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치매'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이 예전보다 기억이 흐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려한다. "워낙 기억력이 좋으신 분이니 걱정하지 마시라"라고 말씀드리긴 하지만, 나는 그녀가 가지고 있을 두려움을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현대인의 생애 주기가 길어지면서, '어떻게 늙는가'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노인 소외와 치매 문제가 갖는 무게 역시 커졌다. < 더 파더 >는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세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작품이다. 무력함과 공포감으로 점철된 영화는 최후반부 안소니를 다독이는 간호사의 모습에서 비로소 안도감을 준다. < 더 파더 >는 차가운 공포를 선사하지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완성된 이야기다. 관객들에게 필요한 미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살아있는 죽음'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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