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방송된 KBS <대화의 희열3>의 한 장면

10일 방송된 KBS <대화의 희열3>의 한 장면 ⓒ KBS

 
한국축구의 레전드 차범근과 박지성이 토크쇼에 동반으로 출연하는 희귀한 장면이 성사됐다. 지난 10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대화의 희열> 시즌3에는 박지성이 게스트로 등장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박지성이 한 시대의 레전드로 자리매김하기 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펼쳐졌다.

MC 유희열은 박지성과 비행기에서 우연히 첫 만남을 가졌던 순간을 회상하며 남다른 팬심을 드러냈다. 박지성은 최근의 근황에 대하여 "영국에서 축구행정 공부를 하면서 한국에서는 전북 현대의 어드바이저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지성은 다수의 유명 축구인들처럼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스승인 거스 히딩크와 알렉스 퍼거슨의 사례를 예로 들며 "내가 저들만큼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지도자는 선수의 100%를 끌어내야하는 직업이다. 당근과 채찍이 모두 필요한데 나는 채찍질을 잘 못한다"고 고백했다.

이어 "축구로 받은 사랑을 보답할 길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다. 좋은 선수는 좋은 코치가 길러낸다고 하는데, 정작 좋은 코치는 어떻게 길러낼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답에 이르렀다"며 자신이 축구행정가의 길을 선택한 계기를 설명했다.

박지성이 남긴 수많은 업적

박지성은 은퇴한 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축구에 수많은 업적을 남긴 전설로 기억되고 있으며, 특히 최초와 관련된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한국인 최초 프리미어리거, 최초의 챔피언스리그-클럽월드컵 우승 등이 대표적이다.

박지성이 축구와 인연을 맺게된 계기는 우연에 가까웠다. 원래 야구부에 가입하려했던 박지성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되며 마침 새롭게 창단하던 축구부를 선택했다. 그의 부친은 본격적으로 운동선수의 길을 걷는 것을 반대했으나, 박지성이 단식까지 하며 고집을 부리자 결국 승낙했다.

그가 어릴 때부터 일찍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아니었다. 체격조건이 유난히 왜소했던 박지성은 "축구는 체격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선생님의 조언이 큰 힘이 되었다고 밝혔다. 박지성은 '기술이 뛰어나면 체격의 열세를 커버할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서 기술훈련에 좀더 공을 들였으며 리프트를 한번에 3천개까지도 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박지성은 당시 축구 유소년 유망주들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상으로 꼽히는 '차범근 축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차범근 축구대상 수상자들이 모두 국가대표가 됐다고 소개하면서도 "저는 대상은 아니고 장려상"이라고 고백하여 웃음을 자아냈다. MC들이 "차범근 감독이 박지성에게 상을 준 것을 기억할까"라고 궁금해하자 "너무 많은 상을 주셨는데 대상도 아니고 장려상을 기억하실지"라며 셀프 디스에 가까운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는 10대 시절만 해도 연령대별 대표팀에 뽑힌 적이 한 번도 없었고, 프로진출과 대학 진학조차 연이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우여곡절 끝에 명지대 재학 시절 당시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시드니올림픽 축구대표팀에 발탁되어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을 맞이했다. 심지어 그때 박지성은 소속팀에서 주전이 아닌 후순위 멤버였다.

박지성은 올림픽팀과의 평가전에서 왼쪽 윙백으로 출전하여 골까지 넣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며 그는 "형들이 비켜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돌파하며 가다보니 어느새 골대가 눈앞에 있었다"고 회상했다. 박지성은 이후 바로 올림픽대표팀에 발탁됐다. 대표팀 경력은 고사하고 무명의 선수에 불과했던 박지성으로서는 일생일대의 파격이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박지성의 발탁은 당시로서는 무성한 뒷소문을 낳았다. 소속팀과 대표팀 감독들끼리 '바둑을 두다 뽑았다'는 해괴망측한 루머까지 나왔다. 박지성은 청탁설에 대하여 "대가성 발탁이었다면 4년 뒤에도 올림픽에 갈 기회가 있는 내가 아닌 선배들을 뽑았을 것"이라며 루머를 반박했다.



박지성의 첫 프로팀은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였다. 그는 입단 제의를 했던 J리그의 강호 시미즈 S펄스와 당시 최하위 교토 중 정식계약을 보장한 교토를 선택했다. 입단 이후 반년만에 소속팀이 2부리그로 강등당했지만 이듬해 박지성은 주전 선수로 자리잡으며 팀의 1부리그 승격과 일왕배(FA컵)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일왕배 결승전을 앞두고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행이 확정된 데다, 소속팀과 계약기간이 만료됐음에도 기꺼이 결승전에 출전하여 골까지 기록하며 우승의 주역이 됐다. 이 우승은 지금까지 교토의 마지막 우승으로 남아있다. 당시 교토 구단주(이나모리 가즈오)는 외국인 선수였던 박지성에게 "어딜가든 응원하겠지만 언제든 돌아와달라, 부상으로 뛸 수 없더라도 우리는 당신을 기다릴 것"이라는 최고의 헌사를 남겼다. 박지성은 당시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회상하며 "여기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인정받고 가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박지성의 축구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2002 한일월드컵 이야기도 나왔다. 박지성은 월드컵 최종엔트리 경쟁 과정에서도 자격 논란을 겪었다. 그는 당시 언론이 전망했던 "1순위(엔트리탈락 후보)가 저였다"고 담담하게 밝혔다. 하지만 정작 그때 박지성은 "나는 (최종엔트리) 될 것 같은데"라며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고백했다. 최종엔트리가 발표되고 나서 박지성의 이름이 포함되자 "그것봐, 너희가 틀렸잖아"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평소 항상 겸손하던 박지성이 드물게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강하게 드러낸 순간이었다.

박지성은 월드컵 16강을 확정지은 포르투갈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자신의 월드컵 데뷔골이자 한국축구의 역사적인 순간을 장식했다. 그는 당시 이영표의 크로스에 이어 자신의 슈팅으로 마무리된 득점 상황이, 사전에 포르투갈의 수비를 분석하여 공을 어디로 보내고 어떻게 침투할지 철저하게 약속된 플레이였다고 고백했다.

포르투갈전에 어쩌면 출전하지 못 할 뻔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언급됐다. 박지성은 앞서 조별리그 2차전이었던 미국전 때 발목부상으로 교체됐었고 포르투갈전도 경기 직전까지 출장여부가 불투명했다. 박지성은 보안을 위하여 인천월드경기장에서 소수의 스태프들과 함께 극비로 몸상태를 점검하는가하면,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다며 "사실 그 상황에서 누가 못 뛴다고 하겠냐"고 솔직하게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을 반년 앞두고 2002년 초에 벌어진 북중미 골드컵에서도 발목부상으로 한동안 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며 슬럼프를 겪던 박지성에게 "너는 정신적으로 훌륭한 선수니까 노력하면 유럽에서도 뛸 수 있는 선수가 될 것"이라며 격려했다. 박지성은 그때의 일화를 떠올리며 "처음으로 유럽의 꿈을 갖게해준 히딩크 감독의 격려가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회상했다.

박지성은 2002 월드컵 이후 PSV 아인트호벤에 입단하여 유럽진출의 꿈을 이뤘다. 하지만 시작부터 순탄하지는 않았다. 새로운 리그에서 낯선 언어와 문화에 대한 적응, 설상가상 무릎부상까지 겹치며 박지성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는 교체출전 당시 아인트호벤 홈팬들이 상대팀이 아닌 자신에게 야유를 하는 것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심지어 팀주장인 판 보멀은 인터뷰에서 "한국 선수를 왜 데리고 왔냐"며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박지성에게는 너무나 큰 상처가 되었던 순간들이었다.

당시 그는 히딩크 감독과 다시 면담을 가졌다. 당시 박지성은 J리그로부터 다시 이적제안을 받았던 상황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선택의 너의 몫이다. 하지만 나는 너를 보내고 싶지 않다"며 여전한 신뢰를 드러냈다. 박지성은 "내 본 모습이 이게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여기서 더 도전해보겠다'고 대답했다"며 심기일전했던 일화를 전했다.

박지성은 슬럼프를 벗어나려고 팀훈련시 작은 패스에도 '잘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기 위하여 노력했다. 결국 박지성은 네덜란드 진출 이후 약 1년만인 2004년 UEFA컵에서 치러진 페루자(이탈리아전)를 기점으로 슬럼프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한때 비난을 퍼붓던 네덜란드 팬들도 어느샌가 박지성을 위한 응원가(위송빠레)를 제작해 부르기도 했다. 

박지성은 20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당시 세계적인 강호였던 AC밀란을 상대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마침 그 경기를 지켜본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어 맨유의 러브콜을 받게 됐다.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과 첫 통화를 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영어를 못하는 나를 위해서 퍼거슨 감독이 대단히 천천히 말을 해줬다. 네가 맨유에 와줬으면 좋겠다. 라이언 긱스의 뒤를 이을 선수가 필요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셨다"고 회상했다.

박지성은 "최고 레벨의 팀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내 인생에 다시 돌아올까 생각했다"며 맨유에서의 도전을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고백했다. 당시만 해도 유럽 명문구단에서 아시아 선수를 영입하는 것을 마케팅용이라고 치부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상황에서 박지성은 "그런 편견을 내가 지워야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실패하면 그것이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릴 수 있었으니까"라고 결연하게 의지를 다졌던 순간을 회상했다.

방송말미에는 한국축구의 또다른 전설인 차범근 감독이 깜짝 등장했다. 축구팬들 사이에서 세계 최정상의 무대에서 활약하며 한국축구의 역사를 빛낸 세 명의 레전드 차범근-박지성-손흥민을 비교하는 '차·박·손 대전'이 언급됐다. MC들은 누리꾼들의 어록을 인용하여 '차범근은 대한민국을 알렸고, 해버지(박지성)은 대한민국 축구선수를 알렸고, 손흥민은 대한민국 선수의 능력을 알렸다'고 소개했다.

차범근과 박지성은 모두 후배들을 배려하며 자신을 낮췄다. 차범근은 아내와의 대화를 인용하며 "차범근과 박지성을 합해도 손흥민을 못 따라간다고 하더라.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박지성은 "아직까지는 차범근 감독님이 1위"라는 의견을 밝히고 자신을 3위에 놓았다. "손흥민은 아직 선수생활이 남아있기에 1위가 될 수도 있고 2위가 될 수도 있다. 저는 손흥민이 1위가 되기를 바란다"고 고백했다. 차범근은 "손흥민이 이루고 있는 업적은 나와 박지성이 못 따라간다. 그리고 박지성이 월드컵에서 이룬 업적(4강신화)은 아무도 못 따라간다. 나는 타이틀이 없어서 마지막 순위다"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방송이 끝날 무렵에는 최근 세상을 떠난 고 유상철 감독을 애도하는 메시지가 자막으로 올라왔다. 다음주 방송될 2부에선 박지성과 차범근이 유럽무대에서 선수생활을 보내며 겪었던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 나눌 것으로 보인다. 

한 시대를 풍미한 축구 레전드들의 등장, 그리고 그들의 입으로 직접 전해듣는 대한민국 축구역사의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들은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와 공감대를 자아냈다. 그동안 젊은 세대들에게는 차범근의 현역시절 위상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부족했고, 박지성은 대중매체 노출이 많지 않았던 탓에 그의 축구와 인생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적이 많지 않았다. 두 축구 전설의 동반 출연이 주는 의미가 더 남다른 이유다.

한편으로 안타까운 것은 하필 박지성의 방송출연 시점과 더불어, 유상철 감독의 안타까운 별세와 박지성의 조문 불참 논란 등이 제기되며 원치 않은 잡음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박지성의 아내 김민지 전 아나운서가 일부 누리꾼들의 악플에 분노를 표시하는가하면, <대화의 희열>이 방송된 이후 게시판에도 여전히 박지성을 비난하는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모두가 한국축구를 위하여 헌신했고 존중받아 마땅한 레전드들이다. 일부 누리꾼들이 부추기는 편협한 시각으로 레전드들에게 또다른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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