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에서 하늘 역을 맡은 배우 이홍내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에서 하늘 역을 맡은 배우 이홍내 ⓒ 엣나인필름

 

올해 초 종영한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서 악귀의 숙주로 활약한 덕에 이홍내는 '잠시' 유명세를 맛봤다고 한다. 그간 상업영화와 드라마 단역과 조연을 오가며 차근차근 작품을 쌓아가던 그에게 길이 열린 걸까. 김조광수 감독의 신작 <메이드 인 루프탑>에서 그는 처음으로 장편영화 주연을 맡아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갔다.

짧은 머리에 큰 키, 연기를 정식으로 배워본 적은 없다지만 2014년 배우로 데뷔하기까지 그는 "그저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각종 오디션을 봤고, 틈틈이 연기 독학하면서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이어왔다. 최근의 그에게 다가온 이런 기회는 일종의 보상일 수도 있다. "그냥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이홍내는 온라인으로 진행된 화상인터뷰에서 그렇게 운을 뗐다.

감독 만나게 해달라 애원한 사연

<메이드 인 루프탑>에서 그가 연기한 인물은 20대 취준생이자 30대 남자친구를 둔 하늘이다. 굳이 분류하면 퀴어영화로 말할 수 있지만, 영화에선 성 정체성에 고민하고 좌절하는 모습보단 사랑에 아파하고 꿈을 찾아 헤매는 청춘의 모습이 더욱 강하게 표현돼있다. 이홍내는 "동성애자라는 표현 자체가 조심스럽다"며 작품에 임했던 과정을 설명했다.

"촬영 전까지 감독님에게 의지하면서 진정성 있게 캐릭터에 접근하려 노력했다. 남자와 남자의 사랑이기에 밖에서 보면 좀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있지만 같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함부로 혹은 허투루 장난스럽게 연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동성애도 담겨 있지만 취업 문제와 가족 문제 등 이 영화엔 시대를 관통하는 문제가 담겨 있다고 본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감독님은 하늘이라는 친구가 늘 투정하고 현실에 비관적이지만 귀여움이 느껴지는 인물이라고 하셨는데, 저 또한 하늘이가 밉게 안 나오길 원했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며 촬영했다. 평소 날카롭고 거친 캐릭터를 연기할 때가 많아서 다른 표현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번에 그 갈증이 좀 해소된 것 같다."


사실 이번 영화에 참여하게 된 과정이 좀 특별하다. 그간 모든 작품을 오디션을 통해 접했던 그는 소속사 대표가 갖고 있는 <메이드 인 루프탑> 대본을 보여달라 부탁했고, 급기야 감독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그만큼 간절함이 컸던 걸까.

"하늘이라는 역할을 정말 해보고 싶더라. 도전해보고 싶어서 부탁드렸던 것 같다. 작품을 하든 못하게 되든 제가 느낀 하늘이를 어떻게든 감독님께 말씀드리고 싶었다. 기회를 주셔서 꽤 긴 시간 얘기했다. 제가 느낀 하늘이, 그리고 제가 살아온 이야기들을 했다. 며칠 뒤 감독님이 전화를 주셔서 하늘이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그렇게 하늘이를 만나게 됐다.

하늘이가 사랑하는 방식, 태도에 제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저 역시 배우가 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고, 영화에 나온 대로 옥탑방에 살고 있는 친구네 얹혀살기도 했다. 촬영하면서 출연 배우들과 대본 리딩을 많이 했다. 같이 만나서 밥도 먹고, 감독님이 맛있는 걸 사주시기도 했다. 우리끼리 정말 수다를 많이 떨었는데 영화를 위해 정말 중요한 시간이었더라. 그런 우리들 모습이 영화에 잘 담겨 있다."


"돈 벌면 족족 극장, 연기 책에 썼다"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의 한 장면.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의 한 장면. ⓒ 레인보우팩토리

 
첫 주연이라는 사실에 정작 그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다른 아르바이트나 일을 안 하고 연기만 할 수 있는 환경이 정말 행복하다는 걸 느낀다"며 "연기를 못하는 순간이 와도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며 강한 열정을 드러냈다.

"단역, 조연할 때도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했다. 대사 한 줄을 놓고 며칠을 고민하기도 했고, 딱히 대본에 설명이 없어도 그 캐릭터의 과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주연을 맡는다고 특별한 감정이 들진 않는다. 즐겁게 촬영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실 전 운이 좋은 아이라고 생각한다. 친한 선배, 후배들 중 배우의 꿈을 가지고 사는 분들이 많은데 다들 엄청 최선을 다하고 있다. 우리끼리 똘돌 뭉쳐있는데 누군가 쳐져 있으면 에너지를 주려고 한다." 

돈을 벌면 족족 영화를 보거나 연기 관련 책을 보는 데 썼고,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런 걸 보완하기 위해 애썼다고 했다. 이홍내는 "아마 지금까지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을 꼽으라면 그것일 것 같다"며 말을 이었다.

"연극영화과를 전공하지 않았고, 연기 학원도 다닌 적이 없기에 기본기가 제 단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점에 있는 연기서적은 거의 다 본 것 같다. 연기를 배우고 싶어서 대학로 극단 연출님을 찾아가서 워크숍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친구를 만나면 늘 영화 이야기를 했고, 배우가 될 거라고 말하곤 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저 연기할 사람인데 수입이 마땅치 않아서 일하고 있다'고 당당히 말하고 다녔다.

부경대학교 앞에서 타코야키를 팔다가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서울로 왔다. 처음엔 모델 에이전시 소속이었는데 많은 분들이 제가 모델로 데뷔한 줄 아신다. 바로 잡자면 군대가기 전까지 2년 남짓 기간인데 제대로 모델 일을 하진 않았다. 사진 촬영을 해본 적은 있지만 전 되게 촌스럽고 까무잡잡한 사람이었다. 모델로는 실패한 거지. 패션모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배우들에게 실례인 것 같아서 제가 모델 출신이라는 말은 조심스럽다."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에서 하늘 역을 맡은 배우 이홍내.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에서 하늘 역을 맡은 배우 이홍내. ⓒ 엣나인필름

 
이홍내는 최근 출연료를 가지고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린 일이 가장 행복하고 뿌듯한 일이라 꼽았다. "연기만으로 내 생활이 가능할까,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10년은 한 것 같은데 불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번에 용돈을 드릴 수 있었다"며 그는 "이런 때일수록 더 겸손하고 잘해야 한다고 어머니께서 강조하고 계신다"며 웃어 보였다.

<메이드 인 루프탑> 이후 그는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즐겨 보고 있다. 그동안 너무 제게만 집중하고 살았던 것 같다"며 그는 이후의 포부를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밝혔다.

"스스로 생각이 많아진 것 같다. 연기하면서 굉장히 행복하고 설레고 가슴이 뜀을 느끼면서도 부담도 생겼다. 평생 연기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만 생각하던 아이였는데 이젠 제가 잘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 어떡하면 그 인물을 더 잘 표현하고 다가갈 수 있을까, 어떻게 접근할까 이런 고민에 빠져있다. 지금 더 배우고 성장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해왔던 노력보다 몇 배는 더 해야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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