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브레이킹 바운더리>(Breaking Boundaries)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될 것 같다. 2020년부터 2030년까지 국제사회가 기후변화(지구온난화)를 멈추지 못하면, 지구는 명실공히 인간의 '적(foe)'이 되어 인간을 아주 매섭게 공포스럽게 공격할 것이다.

<브레이킹 바운더리>는 인간이 발 딛고 사는 튼튼한 땅(지구)이 인간을 완전히 적대시하는 끔찍한 상황이 오기 전에 인간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간곡히 촉구한다. 데이비드 애튼버러(David Attenborough) 할아버지가 내레이션을 맡았고, 스웨덴의 과학자 요한 록스트룀(Johan Rockström)이 비중 있게 출연해 지구의 운명을 과학적으로 풀이해준다. 상영시간은 1시간 14분이다.
 
아니, 그런데 가만 보니, 지구가 인간을 적대시하는 현상은 이미 시작된 것 같기도 하다. 땅의 흔들림(지진)과 구멍 뚫림(싱크홀), 때아닌 폭설과 폭우, 산불과 가뭄의 반복, 해충의 폭력적 출현, 인수공통 전염병의 창궐(에볼라, 메르스, 코로나19 등) 같은 일들이 언제부턴가 자주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지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몇 년 전부터 이구동성으로, 그리고 목소리 높여 경고한다.

"지금처럼 살면 안 된다!"
 
 다큐멘터리 <브레이킹 바운더리>에서 요한 록스트룀의 티핑 포인트(임계점) 설명 장면.

다큐멘터리 <브레이킹 바운더리>에서 요한 록스트룀의 티핑 포인트(임계점) 설명 장면. ⓒ 넷플릭스

 
티핑 포인트를 생각하자
 
지금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면, 그럼 어떻게 살라는 말일까? <브레이킹 바운더리>에 등장한 과학자들은 두 가지 삶의 방식을 제안한다. 첫째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생각하며 살라는 것이다.

티핑 포인트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임계점이다. 티핑 포인트는 '완만한'이 '급격한'으로 변질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완만한'일 때는 그나마 조절할 수 있지만, '급격한'으로 넘어가면 완전히 통제불능이 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와 폐해가 아직까지는 다소 완만해 보인다. 인류가 현재상태 티핑 포인트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긴 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아직 그걸 넘어선 건 아니기 때문이다. 수정하거나 개선할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긴 하나) 있기는 한 것이다.
 
<브레이킹 바운더리>는, 요한 록스트룀을 필두로 하는 여러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지구의 건강 운용 시스템 아홉 가지 범주를 열거해준다. 이 아홉 범주에 각각 위험 한계선(boundary)이라 할 만한 것이 있다. 인류가 만일 그걸 다 넘어서면 어떻게 될까? 그땐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돌이킬 수 없으리라는 것이 <브레이킹 바운더리>의 핵심 메시지다.
 
2021년 현재 인류는 아홉 범주마다 빠르든 느리든 위험 한계선에 이미 들어서있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결심을 하고서, 이 아홉 범주 모두에서 더 가지 말고 일단 멈추자는 게, 영화의 간곡한 제안이다. 아홉 범주에서 인류가 모두 위험 한계선을 넘어버리면, 그래서 티핑 포인트를 넘어가버리면 지구는 통제불능상태가 되고, 인류는 아마 절멸될 것이라고 영화는 설명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브레이킹 바운더리'인 이유다.  
 
이 영화에서, 지구 시스템을 유지하는 아홉 범주 중 제일 먼저 거론되는 것이 '빙하의 몰락'이다. 빙하는 태양열을 반사하는 거울 역할을 해서 지구의 온도를 조절해왔다. 그런데, 영구빙하와 영구빙설이 녹아내리면 지구에서 태양열을 반사하는 거울이 없어지는 셈이다. 그러면 지구의 온도는 더 올라갈 것이다. 지구의 온도가 더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영구빙하와 영구빙설은 더 많이 녹는다. 온도가 올라가면 빙하는 녹고, 빙하가 녹으면 온도는 더 올라간다. 악순환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악순환의 첫단추는 이미 풀려버렸다.
 
벌써 많은 얼음이 녹아 이미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 바닷물이 많아지니 해수면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 바닷가 도시는 지금 바닷물 옆에 아슬아슬 떠있다. 해수면이 더 높아지면 거기 사는 사람들은 거기를 떠나야 할 것이다. 아마 몇 년 뒤면 상상을 초월하는 인류 대이동이 일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재 내전 때문에 목숨 걸고 탈출한 난민이 국경을 넘어 들어올 때마다 많은 나라의 국민들은 바짝 긴장하며 이들을 쫓아내고 싶어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로 인해 난민이 된 사람들에게 '어서 오세요, 우리가 돌봐줄게요'라고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지구 시스템의 아홉 범주 중 또 다른 하나인 원시림에서도 인간은 위험 한계선에 이미 들어섰다. 어느 때부턴가 대량으로 소를 키워야 하니 대량의 콩이 필요해졌다. 대규모 콩밭을 조성하기 위해 날마다 원시림을 밀어냈더니, 원시림에 살던 동물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원시림이 흡수해주던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으로 들어가 지구온난화를 가속화시켰다.
 
영화는 아홉 개의 범주마다 인류가 위험 한계선을 향해, 혹은 위험 한계선을 이미 밟고 넘어서서 저벅저벅 걷는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 보여준다. 각 범주마다 속도는 조금씩 다르긴 한데, 제일 많이 위험한 범주에서는 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있는데도 인류의 발걸음 속도와 강도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정말 공포스러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인류는 위험 한계선(바운더리, baoundaries)을 향해 쉬지 않고 계속 걸어간다. (스크린샷)

인류는 위험 한계선(바운더리, baoundaries)을 향해 쉬지 않고 계속 걸어간다. (스크린샷) ⓒ 넷플릭스

 
공포 전달자가 되자  
 
그렇다. <브레이킹 바운더리>는 1시간 14분 동안 공포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어지간한 공포영화 저리가라다. 요한 록스트룀은 자신과 같은 의견을 지닌 과학자들이 입을 모아 30년 전부터 공포를 역설해왔는데도 듣지 않는 사람들한테 이젠 화가 난다고 말한다. 더 늦기 전에 공포를 실감하고,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한다. 지구가 인류의 아군이기를 포기하고, 삶의 터전이길 중단하면, 그때는 돌이키고 싶어도 돌이킬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게 과학자들의 의견이다. 과학자들은 인류가 변화해야 할 방향은 오직 하나라는 점을 지적한다.
 
"지금은 무슨 일을 하든 지구 중심으로 해야 한다."
 
한편 요한 록스트룀은 인류의 생존이 걸려있는 만큼 지구온난화 문제는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다룰 의제라고 주장한다. 물론 핵 문제도 다루어야 하고, 각국의 안보 상황도 중요하지만, 지구인과 지구가 전쟁하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려면 국제사회가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대응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사실 지구 어느 한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그곳에만 묶어둘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젠 지구를 부분으로 잘라서 자국 중심으로 이해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커다란 집으로 이해해야 한다.
 
<브레이킹 바운더리>는 오랜 세월 동안 지구 시스템을 안정시켜온 아홉 범주 모두에서 인류가 위험 한계선 주변을 얼쩡거리고 있음을 과학자들의 연구와 관찰 결과들을 제시하며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위험 한계선에 아직 들어서지 않아 보이는 범주도 물론 있다(아홉 중에서 둘). 그러나 그 범주들에 관한 한 아직 연구가 느려서 제대로 파악이 안 된 탓일 수 있으니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게 <브레이킹 바운더리>의 입장이다. 아홉 범주 모두에서 인류는 불건강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돌아서는 사람도 하나 없고, 멈춰선 사람도 하나 없다.
 
<브레이킹 바운더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티핑 포인트와 공포를 번갈아 강조한다. 귀에 못이 박히듯 두 단어를 듣는 동안, 저절로 공포심이 솟아오른다. 그래서 어쩌면 이 영화를 보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보기 힘들다고 외면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불에 타고 있는 내 집이 보기 힘들다고 내 눈을 가리면 집이 더는 불에 타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아직 조금 불타고 있을 때 물을 끼얹든 흙을 끼얹든 조치를 위해야 한다. 집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얼른 두 팔 걷고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공포를 느껴야 한다. 등교거부를 해가며 그레타 툰베리가 우리들에게 알린 것도 사실은 '공포를 느껴달라'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레타 툰베리의 말. (스크린샷)

그레타 툰베리의 말. (스크린샷) ⓒ 넷플릭스

 
"제가 매일 느끼는 공포를 느끼시길 바랍니다."
 
공포를 제대로 느끼면 인간은, 잠시 멈춰서서 이대로 앞으로 걸어가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할 수 있다. 방향설정을 다시 해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인간은 생각할 줄 아는 동물 아니던가. 아무튼 인류가 공포를 느끼면 우선은 우뚝 멈출 것이다. 바로 그것, 멈출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희망일 것 같다. 이 영화를 보면서 제대로 공포를 느끼고 겁을 먹어서, '우선 멈춤'을 실행하고, 그 다음에 자기가 느낀 공포를 주변에 전달해야겠다 결심하는 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영화 <브레이킹 바운더리> 포스터.

영화 <브레이킹 바운더리> 포스터. ⓒ 넷플릭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독교환경교육연대 살림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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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Arendt의 행위이론과 시민 정치(커뮤니케이션북스, 2020)] 출간작가 | ‘문학공간’ 등단 에세이스트 | ‘기억과 치유의 글쓰기(Writing Memories for Healing)’ 강사 | She calls herself as a ‘public intellectual(지식소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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