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자신의 책 <총균쇠>에서 이제는 세상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생물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 생물들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인간'에 있다. 마치 메뚜기떼가 휩쓸고 지나간 곳에 작물이 초토화되듯이 인간이 활동영역을 넓힌 곳에서 토착 생물들은 사라져갔다.
그래서일까. 남아메리카 대륙 육지에서 1000km떨어진, 용암퇴적물로 뒤덮인 갈라파고스 제도에는 대륙에서 멸종된 동물들이 그 고유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섬에 드나들면서 이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평화로운 삶도 보장할 수 없게 됐다. 최근 EBS <다큐프라임>은 '진화와 공존의 섬 갈라파고스' 3편을 통해 이런 상황을 조명했다.
1832년 에콰도르가 영유권을 선포한 갈라파고스 제도는 가장 큰 이사벨라 섬을 비롯한 20여 개의 섬과 100여 개의 암초로 이루어져 있다. 갈라파고스 방울새, 바다 이구아나 등 대부분의 파충류와 텃새들 역시 갈라파고스 고유종들이다. 동일한 선조가 있다 하더라도 갈라파고스 환경에 따라 진화했다. 이런 인류 고유의 자연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갈라파고스 제도의 97%가 국립 공원으로 지정됐다.
관광지가 되어가는 갈라파고스
하지만 갈라파고스가 그 고유한 인류 문화 유산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본토에서 1000km나 떨어져 있지만 이제 갈라파고스에는 사람이 사는 곳에 있는 대부분의 것이 다 있다.
도로가 뚫리고 섬과 섬 사이를 비행기가 날아 다니며 배가 떠다닌다. 그리고 그 도로를 질주하는 자전거는 이 섬의 최고참 갈라파고스 코끼리 거북이의 천적이 됐다. 한 해 수천 마리가 로드킬로 희생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이주민이 꾸준히 늘어 주민들의 수만 2만5000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관광업과 숙박업에 종사한다. 섬마다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한 시설을 경쟁적으로 짓는 중이다. 용암지대의 돌가루는 고급 건축 자재로 돌변했고 채취작업은 국립공원 안에서 이루어진다. 바닷물이 고여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던 투명한 색의 염전은 마을의 폐수가 스며들어 붉게 변했다.
갈라파고스 제도를 찾는 관광객 수는 한 해 22만 명. 하지만 현재 갈라파고스 제도가 지탱할 수 있는 사람 수는 1만2000명이다. 하물며 매년 관광객 수가 7%씩 증가하는 중이다. 섬이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의 20배가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고 이로 인해 갈라파고스 제도의 자연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 선착장에 내리면 제일 먼저 마주치는 건 바다이구나아, 바다사자 등인데 사람들이 다가와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천적이 없는 환경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이들은 사람이 자신을 해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늦은 시간, 거리의 소음을 피해 벤치에서 잠을 청한 바다사자가 도시의 빛 공해에 몸을 뒤척인다. 절벽으로 둘러싸인 섬은 바다사자에게 적합한 안식처가 아니다. 그나마 평지 해변이 서식할 수 있는 환경과 가까운데, 그곳을 사람들이 점령한 것이다. 그러나 함께 살아갈밖에.
그러나 공존의 대가는 때론 참혹하다. 아기 바다사자들이 쓰레기를 장난감 삼아 노는 곳은 폐수가 흘러든 하천이다. 올가미와 낚싯줄에 걸려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지난 5년 사이 사고 등의 이유로 바다사자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바다사자와 함께 눈에 많이 띄는 것이 바다이구아나들이다. 이들도 먹을 것을 찾아 마을로 향한다. 굳이 힘들게 먹이를 구할 필요 없이 마을의 쓰레기더미를 뒤지면 쉽게 먹이를 구할 수 있다.
용암바위와 대조적인 색깔로 눈에 띄는 붉은 게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갈라파고스 바다의 거친 파도가 그들에게 시련을 줬지만, 이젠 사람들의 발길을 피해 눈치껏 먹이를 구하는 것이 그들의 숙명이 됐다.
자연의 힘을 잃어가는 갈라파고스
생활환경이 달라진 건 동물들만이 아니다. 갈라파고스에서 살게 된 사람들, 그리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섬 밖의 식생들이 유입됐다. 갈라파고스 집집마다, 혹은 거리에서 쉽게 마주치는 오렌지 역시 외부 작물이다. 이런 식으로 유입된 외부 식물이 800여 종을 넘었다. 문제는 함께 들어온 기생파리, 개미 등이다. 이들은 섬을 관리하는 국립공원의 가장 큰 골칫거리다.
외래종은 천적이 없는 땅에서 공격적으로 번식했고 그들과 함께 갖은 감염원도 번식 중이다. 구더기에 감염된 어린 새의 치사율이 100%라는 것에서 보듯이 고유의 환경에서 천적이 없이 살아온 갈라파고스 생물들은 감염에 무방비하다.
잉카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천연두는 그저 역사 속 이야기가 아니다. 자연의 힘을 잃어가는 갈라파고스, 다양한 생물의 천국이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