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국정원의 댓글조작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를 두고 당시 일본에서 공작원으로 일했던 국정원 직원은 "댓글은 정치개입의 큰 줄기가 아니었다"며 당시 국정원이 주력한 핵심 공작은 따로 있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처음 실시되는 재외국민 투표를 막기 위해 여권 발급을 제한했다는 것.

충격적인 내용은 이뿐이 아니다. 여권 발급 제한 공작이 있은 후 한국으로 돌아온 국정원 직원은 2015년 이병기 국정원장이 임명된 후, 공개석상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했다. 이후 감사실로 호출된 그는 일명 '하얀 방'에서 부당한 감사를 받았다. 3일 만에 그 방에서 나올 수 있었지만 해리성 장애 진단을 받았고, 현재는 직권면직된 상태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제보자의 이런 주장에 어떤 입장일까. 국정원 측은 소청심사위원회 답변서를 통해, 정기 회계검사 위반으로 제보자를 조사한 사실을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말을 바꿔 제보자의 조사 거부로 감사가 진행되지 않았고, 관련문서도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 PD수첩 >이 공문을 보냈지만, 제보자가 조사를 거부해 조사하지 못했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또한 2012년 당시 대선개입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지난 1일 MBC < PD수첩 >은 '국정원과 하얀 방 고문 : 공작관들의 고백' 편을 통해 이 내용을 다뤘다. 국정원 전직 공작원의 증언으로 시작된 이날 방송엔 일본에서 재외국민 투표 개입 공작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와 함께 대선 후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공작원에게 일명 '하얀 방의 고문'이 가해졌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 PD수첩 > 이번 방송을 취재 연출한 장호기 PD를 지난 2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장 PD와 나눈 일문일답.
 
 <PD수첩> 예고편의 한 장면

예고편의 한 장면 ⓒ MBC

 
- 방송을 마친 소회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한 번도 얘기된 적이 없었던 내용이어서 저도 개인적으로 긴장을 많이 했고 걱정도 많이 했어요. 일단은 방송을 내보내고 나니까 홀가분해요. 근데 저희 방송 한편으로 끝난 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국정원 측 반응도 좀 봐야할 것 같아요."

- 국정원은 취재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국정원이 워낙 폐쇄적이고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조항도 있어서 취재가 상당히 어려웠어요. 제보자분들도 자신들이 발언한 내용에 대해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고 계세요."

- 국정원의 대선 개입 공작에 대한 건 제보를 받은 건가요?
"처음 제보내용을 받았을 때 믿기 어려웠어요. '정말 사실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일단은 제보자를 만나보자란 생각으로 나갔고, 제보자분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상당 부분 근거가 있더라고요. 거짓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해 제작에 들어간 거예요."

- 어디서부터 취재를 시작하셨나요.
"일단 대선개입 문제는 일본에서 일어난 일인데, 저희가 지금 일본을 갈 수 없잖아요? 초반엔 제보자가 국정원 직원이 맞는지에 대한 검증을 하고 그 이후 일본 지역에서 대선개입 공작 대상이 되셨던 분들과 접촉했어요. 동시에 한국에서는 하얀 방 조사 관련해서 정말 이게 사실인지, 그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에 집중했고요."

- 국정원이 (자료 등을) 공개 안 하니 검증하는 게 어려웠을 것 같아요.
"어려웠죠. 실제로 국정원 측에 정보를 요청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일이죠. 그래서 저희가 간접적인 증거들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제보자분도 원래 처음에는 한 분만 계셨는데 저희가 취재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또 한 분을 알게 됐어요. 두 분 정도 이상 알게 돼서 제작할 수 있게 됐던 거죠. 아무튼 대외활동을 하셨던 분들이기 때문에 그분들과 접점이 있는 분들 통해서 (사실을) 검증했고요. 일단 제보자분 같은 경우 국정원으로부터 표창장까지 받았을 정도로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인정받는 직원이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크게 의심하지 않았죠."

- 제보자 인터뷰할 때 어땠어요?
"인터뷰는 장시간에 걸쳐 여러 차례 나눠서 했어요. 제보자 분이 말씀하시는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저도 인터뷰하는 내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들었어요."

- 인터뷰하면서 가장 충격적인 건 뭐였어요?
"충격적인 게 굉장히 많았는데 일단은 하얀색으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는 그 공간에 대해서 묘사하실 때가 가장 충격적이었어요. 너무 묘사가 상세해서 듣고 있는데 마치 제가 그 공간에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실제로 (이야기 듣는데) 약간의 공황장애 증세가 와서 촬영을 중단하기도 했어요."

"'하얀 방'이 어떤 영향 미쳤을까 궁금했죠"
 
 MBC <PD수첩> '국정원과 하얀 방 고문 : 공작관들의 고백' 편.

MBC '국정원과 하얀 방 고문 : 공작관들의 고백' 편. ⓒ MBC

 
- 방송을 보면 미국 CIA '하얀 방의 고문'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요('하얀 방의 고문'은 미국이 알카에다 포로를 대상으로 자행한 것으로 이를 기록한 CIA 보고서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 기자 말). 
"영화라든지 예전에 CIA 보고서에서 본 적이 있어요. 하얀색 공간에서 굉장히 잔혹하게 사람을 심리적인 압박하는 것들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이 공간을 통해 기대되는 효과가 조금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요."

- 하얀 방 재현도 하셨는데.
"그 공간이 과연 (제보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궁금했죠. 시청자 입장에서 말로만 들어서는 정확히 느끼기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 방에서 사람이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는지 검증하기 위해서라도 (세트를) 지어야 했죠. 그리고 그 일이 사실이라면 제보자가 겪었을 고통이 어느 정도 되는지를 최대한 시각적으로 전달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 혹시 PD님도 그 자리에 앉아 보셨어요?
"세트 짓고 잠깐 앉아봤는데 일단 제가 앉았을 때는 책상이 너무 작았어요. 초등학교·중학교에서 쓸 법한 책상이라면 아무리 커도 성인 남자가 앉았을 때 굉장히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죠. 그리고 벽이 흰색으로 돼 있고, 좁다는 것 때문에 잠깐 앉아 있었는데도 숨이 막히더라고요. 산소도 좀 부족한 것 같고요."

- 제보 내용의 핵심은 2012년 대선에서 재외국민의 투표를 막기 위해 국정원이 여권 발급 제한 공작을 펼쳤다는 거잖아요. 이게 일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요?
"여권을 제한하는 방식의 공작이 다른 나라에서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파악이 안 됐어요. 다만 미국 지역에서 2010년 5월~8월 정도에 데이비슨 프로젝트라고 해서 국정원이 DJ 비자금 추적 관련된 공작을 펼쳤거든요. 확실한 건 그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의 지시 혹은 그가 만들어 놓은 분위기 하에 많은 국정원 해외 공작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다양한 공작을 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 그럼 국내에선 댓글을 조작하고 해외에선 여권 발급을 제한하는 방식 등으로 공작을 한 걸까요?
"사실 제보자 말 중에 '댓글 공작이 실개천 같은 거면 여권 제한은 태평양 같은 것'이라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왜냐하면 방송에서 나왔지만, 댓글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소소하지만 이런 식으로 여권을 제한함으로써 투표 참여를 못하게 하는 것은 굉장히 직접적인 개입이잖아요. 당시 댓글부대만으로도 세상이 떠들썩했는데 지금 밝혀진 사안은 그거보다 훨씬 큰 거거든요. 반인권적이고 반헌법적인 거죠. 진상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 재외국민 투표권 제한 문제가 9년이 지나서 밖으로 나온 거잖아요. 왜 그전에는 조용했을까요.
"아무래도 해외에서 일어난 일이고 또 너무 은밀한 공작이었죠. 대통령령으로 시행령 개정을 통해 (여건 발급을 제한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필요한데 이명박 정부는 여권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기자 말) 공작을 준비한 것이죠. 법적인 근거도 마련해 놓고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몰랐을 거예요. 알았다고 해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 취재했는데 방송에 못 담은 내용이 많다고 하셨는데, 소개해 주실 만한 게 있나요?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하는 방법 중 또 하나가 일본 내에서 여론을 조성하는 거였거든요. 저희가 상당 부분 취재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이 일본에서도 나름의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특정 후보를 비방하기 위해 움직였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방송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 취재하며 느낀 게 있다면.
"매번 중요한 제보자들을 만나지만 이번 편의 제보자 분들은 정말 말 그대로 목숨을 거셨거든요. 지금도 위협을 느끼고 계시고요. 진실을 밝히는 일은 왜 항상 이토록 어렵고 희생이 필요할까요. 이분들이 제보하신 내용도 너무 충격적이죠. 물론 국가정보기관으로서 보안 업무를 한 것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그 대상이 됐던 우리 재일동포들을 보면 독립운동하신 분들의 후손도 계시잖아요.

그런 분들을 단순히 잠재적인 진보주의자로 몰아서 강제 면담하고 과거 행적에 대해 일일이 조사하고 심지어 반성문 형태의 내용 증명서까지 요구했다는 것은 저는 정말 너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속상하기도 했고 믿고 싶지도 않았고요. 어쨌든 방송은 나갔으니까 저희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국정원이나 관련 국가 기관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답변해주면 좋겠어요. 문제가 있는 부분은 지금이라도 바로잡아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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