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30일 창원축구센터. 경남 FC와의 시즌 마지막 게임을 끝내고 많은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 앞에서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있는 유상철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

2019년 11월 30일 창원축구센터. 경남 FC와의 시즌 마지막 게임을 끝내고 많은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 앞에서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있는 유상철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 ⓒ 심재철

 
"나를 위해 뛰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팬들을 위해 승리해달라."

2021년 6월 7일 저녁 암과 싸우다가 세상을 떠난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유상철 전 감독은 2019년 11월 24일 당시 상주 상무와의 홈 게임을 앞두고 인유 선수들에게 이 말을 남겼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유 감독의 이러한 뜻이 통한 듯 인천 유나이티드 FC 선수들은 결코 쉽지 않은 그 게임을 2-0으로 이겨냈다.

답답하던 인천 유나이티드의 공격 흐름을 바꿔놓은 것은 유상철 감독의 교체 사인이었다. 67분에 김호남 대신 들어온 왼발잡이 미드필더 문창진이 단 9분 만에 스테판 무고사의 도움을 받아 멋진 왼발 첫 골을 뽑아냈고, 그동안 골이 없어서 안타까워하던 케힌데도 교체로 들어온 지 11분 만에 곽해성의 도움을 받아 위력적인 발리슛을 꽂아넣어 2-0 완승을 거뒀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이 귀중한 승리 덕분에 2019 K리그 파이널 라운드 B그룹에서 극적으로 10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고, 그 다음 주인 11월 30일 경남 창원축구센터에서 열린 2019 K리그1 최종 라운드 경남 FC와의 어웨이 게임을 비기며 또 하나의 1부리그 생존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인천 유나이티드의 수많은 '파랑 검정' 열성 팬들은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든 16대의 대형 버스에 나눠 타고 창원축구센터에 들어가 어웨이 팀 응원석을 발 디딜 틈 없이 채워주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뜨거운 팬들은 또 하나의 각본 없는 드라마를 끝내며 유상철 감독 앞에 정성스럽게 쓴 손글씨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 펼침막을 들어보였다. 

그로부터 얼마 전에 췌장암 판정을 받고 병마와 싸우기 시작한 유상철 감독에게 팀을 1부리그에 남게 해 주었다는 감사의 뜻과 아울러 절대로 암과의 싸움을 포기하지 말아달라는 소원을 담은 말이었다.
 
 2019 K리그1 시즌 마지막 게임을 끝내고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는 유상철 감독(2019년 11월 30일, 창원축구센터)

2019 K리그1 시즌 마지막 게임을 끝내고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고 있는 유상철 감독(2019년 11월 30일, 창원축구센터) ⓒ 심재철

 
그리고 유상철 감독은 다음 시즌부터 공식적인 직함을 내려놓고 병마와 싸웠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항암 치료가 몸과 마음을 모두 지치게 했지만 인유 팬들과 맺은 약속 덕분에 힘을 낼 수 있었다. 

유상철 감독이 선수 시절 활약했던 일본 J리그 요코하마 F. 마리노스 팬들도 '할 수 있다. 유상철형!!' 격문을 내걸고 그의 쾌유를 진심으로 빌었으며 포항 스틸러스 팬들은 최근 열린 2021 K리그1 홈 게임에서도 유상철 감독의 쾌유를 비는 격문을 내걸기도 했다.

그는 정말로 기적의 발걸음을 걸어왔다. 췌장암 4기 정도의 진단을 받고도 놀라운 회복력을 자랑하며 2020년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홈&어웨이 게임 관중석은 물론 인천 유나이티드의 훈련지까지 직접 찾아와 누구보다 깊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었다. 그의 발걸음이 2021 시즌에도 이어지지 못하고 6월 7일 눈을 감고 말았지만 여기까지만으로도 인유 팬들과 맺은 또 하나의 약속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유상철 감독은 2019년 5월 1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인천 유나이티드를 맡아서 1승 3무 7패의 초라한 성적표로 꼴찌에 머물러 있던 성적을 뒤집어내며 2019 시즌 최종 성적 7승 13무 18패(10위)를 이루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2019년 6월 8일 홍주종합운동장(충남 홍성) 전지 훈련 현장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과 어울려 훈련을 지휘하는 유상철 감독(가운데 흰 모자)

2019년 6월 8일 홍주종합운동장(충남 홍성) 전지 훈련 현장에서 인천 유나이티드 선수들과 어울려 훈련을 지휘하는 유상철 감독(가운데 흰 모자) ⓒ 심재철

 
그는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한 뒤 한 달도 안 된 그 때, 짧은 휴식기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2019년 6월 초 충남 홍성에 전지 훈련 일정을 마련했다. 감독이라는 직책을 떠나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장면들이 그곳에서 여러가지로 눈에 띄었다. 

흰 모자를 뒤로 돌려 쓰고 팀 조끼를 입은 채 선수들과 어울려 부분 전술 훈련을 직접 지휘하는 순간마다 진정성이 담긴 조언과 미소가 그의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장시간의 훈련 일정이 끝난 뒤에도 멀리까지 찾아온 인유 가족 팬들에게 다가가 고마움을 표하는 것도 모자라 그 가족 중 축구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은 어린이 팬과 어울려 리프팅 연습이 왜 필요하며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가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순간들은 정말로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유상철이라는 아름답고 멋진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사람이 예상보다 일찍 우리 곁을 떠났지만, 2019년 6월 8일 바로 그 날 홍성 전지훈련 일정이 끝나고 축구 기본기를 가르쳐준 그 어린이가 인천 유나이티드 FC 산하 12세 이하 유스 팀 미드필더 등번호 46번 자리에 정말로 '황인서' 이름을 올렸다는 것을 기억하고 멀리서나마 응원해 줄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 곁을 떠난 유상철 전 감독과 인유 팬들이 맺은 약속은 앞으로 이런 스토리들로 더 이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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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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