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세탁소 <우리가 핀2 - 조각> 당시 촬영 사진

스웨덴 세탁소 <우리가 핀2 - 조각> 당시 촬영 사진 ⓒ 쇼파르엔터테인먼트

 
문을 연 지 벌써 9년이 지났다. 꾸준히 손님(이라 쓰고 팬이라 읽는다)을 맞이하며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펼쳐온 스웨덴세탁소(왕세윤, 최인영)의 최근 1년 동안엔 스스로에게도 기억에 남을만한 몇 가지 이벤트가 있었다. 하나는 같은 주제로 8개월에 걸쳐 연작 앨범을 낸 것, 다른 하난 생애 처음으로 에세이 집을 낸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오프라인 공연은 멈추다시피 했지만 스웨덴세탁소의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2020년 9월 <우리가 핀1–잔상>, 2021년 5월 <우리가 핀2–조각>을 발표했고, 올해 4월 <우리가 있던 시간>이라는 책을 발표한 이들을 지난 4일 서울 합정동 인근에서 만났다.

세탁소 주인장, 그리고 정직원이라 스스로를 부르는 두 사람. 최인영이 멜로디와 가사가 적힌 오선지를 왕세윤에게 들이밀면 거기에 악기를 입히고 편곡하는 둘만의 '작업 공정'이 이번 앨범들에도 적용됐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12곡 중 10곡을 예빛, 보라미유, 짙은, 위수 등 각자 개성이 다른 아티스트가 불렀다. 컬래버레이션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간 쉽게 말 못 했던 또 다른 사연도 있었다.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그리움
 
두 번째 미니앨범 <순간>을 발매하고 몇 주 뒤의 일이다. 일상도 컨디션도 모든 게 평소와 다름이 없었는데 리허설 중에 갑자기 목구멍에 뭐가 탁 걸린 것처럼, 공기의 압력이 내 소리를 막고 있는 것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중략) 발성 치료를 받고 레슨을 받고 약을 먹고 정신의학과 상담도 받았으며 심지어 동굴에서 오랜 시간 수련하셨다는 스님도 찾아갔지만 나는 나아지지 않았다.

(중략) 이 글이 내가 모든 걸 이겨내고 괜찮아진 이야기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나는 아직도 수없이 무너져내리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마다 아직 우리의 노래를 기다려주고 내 목소리를 아껴주는 이들이 있다고, 그러니 느린 걸음이라도 계속해서 걸어가자고 내게 말해주어야 한다.

- '목소리', 최인영, <우리가 있던 시간> 중 

이런 시간을 거쳐 나온 이번 연작 앨범에는 그간 한 단어나 완성된 문장이곤 했던 제목이 아닌 미완의 문장 혹은 수식어처럼 느껴지는 제목이 붙었다. 두 사람과 다양한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 그리고 앨범의 제목 이야기부터 나눴다.

"곡을 썼을 때 뭔가 표현하고 싶은 게 많은데 뜻대로 되지 않으니 다른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빌려서 하고 싶었다. '우리가 핀'이라는 제목은 집에 있으면서 생각했던 건데 모든 감정은 내 안에서 피어나는 거잖나. 그게 꽃처럼 피어난다고 생각해서 감정이 피어나는 내 마음의 정원을 상상했다. 약간 판타지 같은 건데 항상 그 정원 안에 있는 누군가를 상상했고, 1탄은 그게 후회든 어떤 소회든 가득 피어 있는 걸 상상했고, 2탄에선 그게 와장창 깨지는 이미지를 상상했다. 모든 감정이 피어난 내 정원을 노래로 만든 느낌이랄까(웃음)." (최인영)

"곡을 만들면서 잘 어울릴 것 같은 아티스트를 상상하며 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그 시너지가 큰 것 같다. 완성된 후 어떤 곡은 누구랑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제안한 것도 있다. 1탄은 우리와 친분이 있는 분들이라 직접 연락을 드렸고, 2탄에 참여하신 분들은 회사를 통해 연락을 드렸다. 처음 우리의 생각보다 더 좋아진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핀'이라는 게 감정이 피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뭔가를 펼치는 걸 수도 있다.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왕세윤)


'잔상'과 '조각'이라는 소제목엔 그리움이라는 감정 상태가 일종의 씨앗이 됐다. 최인영은 "같은 그리움이라도 1탄에 있는 곡들은 약간 공기처럼 주변에 늘 있는 느낌이 많았고, 두 번째에선 우리 생각엔 강렬한 게 있다고 생각했다"며 "(감정의) 뭉텅이들이 존재하는 느낌? 미묘한 차이지만 우리만의 생각이다"라며 웃어 보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스웨덴세탁소의 오프라인 공연 또한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떨어져 살던 두 사람이 함께 살기 시작한 무렵이기도 했다. 왕세윤은 "공연을 못하고 집에 오래 있으면서 책도 많이 보고 드라마, 영화도 많이 봤다"며 "시기상 무기력해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곡도 많이 쓰게 됐다"고 최근의 변화를 전했다.

"전 밖에 돌아다니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코로나19 이후에 외식을 한 다섯 번 했나? 근데 집에 있으면서 작업하는 시간도 많아졌고, 뿌뿌(스웨덴세탁소의 반려묘)와 있는 시간도 많아져서 행복했다.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왕세윤)
 
 스웨덴 세탁소 <우리가 핀2 - 조각> 당시 촬영 사진

"'우리가 핀'이라는 제목은 집에 있으면서 모든 감정이 내 안에서 피어나는 거잖나. 그게 꽃처럼 피어난다고 생각해서 감정이 피어나는 내 마음의 정원을 상상했다." ⓒ 쇼파르엔터테인먼트

 
스웨덴세탁소의 시절들

지난 1년을 거쳐 나온 책 또한 두 사람에겐 성찰의 결과물이었다. 평소 이들의 팬을 자처한 출판사 대표의 제안으로 시작된 기획이었다. 

"대표님 두 분이 대학생일 때 우리 노래를 되게 좋아했다더라. 가사가 좋았다고. 우리 노래에 대한 이야기나 우리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고 하셨다. 신생 출판사 대표님들이라 열정이 가득했다. 생각만 할 수 있는데 제안을 주셔서 그걸 덥석! 물었다." (최인영)

"덥석 했을 때 신나고 재밌었는데, 기대되고 그랬다." (왕세윤)

"우린 누가 안 시켜도 맨날 일기를 쓰던 사람들이라. 책으로 내도 좋겠다고 처음엔 생각했는데 글을 쓰는 사람들 정말 대단하시더라. 여러 번 포기하고 싶었다(웃음)."(최인영)


책 제목 <우리가 있던 시간>은 스웨덴세탁소가 발표한 싱글 앨범 제목과 같다. 본래 이들이 제안한 제목은 2012년 발매한 <시절>이었는데 출판사와 상의한 결과 지금의 제목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최인영은 "부모님 얘기도 담겨 있어서 엄마에게 몇 가지 예시를 보여드렸는데 '우리가 있던 시간'이 좀 더 히트곡이라고 하셔서 윤이에게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나온 <우리가 있던 시간>엔 두 사람이 각자 음악을 하게 된 계기부터 가족 이야기와 본인만의 고민들까지 꾹꾹 담겨 있다. 인터뷰나 방송을 통해 공개되지 않은 내밀한 고백들이다. 모두 스웨덴세탁소의 음악, 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을 느낄 수 있는 힌트들이다. 각자가 쓴 글은 자신들의 노래를 제목으로 삼기도 했고 특정 단어를 제목으로 삼기도 했다. 심지어 반려묘에 대해선 특별 코너를 만들 만큼 큰 애정을 쏟고 있기도 하다.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가 된 나에게, 내가 아이를 낳으면 완전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나의 세상이 넓어질 거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농담으로 '그럼 아기만 있으면 되지?' 하며 얼른 낳아온다고 가는 시늉을 하면 사색이 되곤 했다. (중략)

뿌뿌를 키우면서 내가 몰랐던 정의 내릴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알게 됐다. 저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털북숭이 친구는 차가운 도시에 사는 꽁꽁 언 나를 무방비하게 녹여버린다. 흔들리는 나뭇잎이,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뿌뿌를 떠올리게 하고, 알 수 없는 뭉클함에 눈물이 날 정도로. 뿌뿌가 아니었다면 그런 감정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 '뿌뿌', 왕세윤, <우리가 있던 시간> 중

"우리가 같은 노래를 같이 만들었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했을 수도 있잖나. 그런 게 재밌어서 글 제목으로 노래 제목을 두고 쓴 게 많았다. 하다 보니 다양한 얘기가 나왔다. 제가 쓴 걸 보여주면 윤이가 쓰려다가 못 쓴 게 있고, 윤이가 보여주면 제가 아예 다르게 쓴 게 있고. 예를 들어 우리 데뷔곡인 '해피 버스 데이 왈츠'를 보면 전 가사에 대해 썼는데, 윤이는 우리 첫 번째 싱글이라고 표현했더라." (최인영) 

"겹치는 게 많을 땐 일부러 피한 것도 있다. 인영이 글을 먼저 읽고 쓰면 막힐 때가 있더라 그래서 되도록 안 보려고 했다. 막상 책을 보면 여전히 수정하고 싶은 게 많다. 제 일기를 다른 사람이 본 느낌이라 너무 부끄러운데 한편으론 좀 더 사람들이 우릴 친근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웃음)." (왕세윤)
 
"진짜 열심히 하긴 했다. 책을 내놓고 지금까지 우리 모두 탈진해서 글을 못 쓰고 있다(웃음). 출판사 대표님은 무조건 다 싣자고 했지만, 우리 안에서 뺀 글도 많다. 노래만 쓰다가 글을 쓰니 이게 어떻게 읽힐지 걱정되기도 하더라. 되게 마음에 드는 챕터도 있고, 아무도 안 봤으면 하는 것도 있다! 사실 보컬로서 목이 안 좋다고 말하는 게 너무 싫었다. 공연할 때도 그말을 하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지더라. 글로써 그동안의 얘길 들려줄 수 있다는 게 조금 위안이 됐다. 내가 몰랐던 윤이 얘기도 알게 됐고." (최인영)

"사람들이 책을 사주신다고 하면 되게 좋은데 동시에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왕세윤)

 
 스웨덴 세탁소 <우리가 핀2-조각> 당시 촬영 사진

"코로나19 이후에 외식을 한 다섯 번 했나? 근데 집에 있으면서 작업하는 시간도 많아졌고, 뿌뿌(스웨덴세탁소의 반려묘)와 있는 시간도 많아져서 행복했다.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 쇼파르엔터테인먼트

 
꾸준히 소문나는 세탁소

대학교 동문으로 만나 시작한 음악의 길을 두고 두 사람 모두 후회하지 않는다고 힘 줘 말했다. 한류 붐, 아이돌 및 대중가요 중심으로 날로 확장된 한국 음악계의 흐름과 달리 작가주의 아티스트들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는 게 현실이다. 그 틈에서 스웨덴세탁소는 9년을 버텨왔고, 나름 단골손님도 생겼다.

"같이 작업하지 않으면 곡이 완성되지 않는다"던 왕세윤이나 "9년이나 같이 작업했는데도 여전히 재밌는 걸 보면 신기하다"고 말하는 최인영에게서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에게 '찰나의 수집가'라는 수식어를 조심스럽게 전했다. 이들이 만들어왔던 노래들 모두 쉽게 지나칠 법한 순간을 소중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항상 찰나를 잘 표현하는 걸 원하고 있다. 스무 살 때만 느끼고, 할 수 있는 생각이 있고 같은 생각을 했더라도 서른 살에 표현할 때 다를 수 있잖나. 시간이 갈 때마다 억지로가 아닌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싶다. 세윤이랑 같이! 그때의 우리가 어떻든 최선을 다할 테니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사람들의 우리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을 수 있다. 우리 방향성이 기대와 다를 수도 있고. 늘 모르겠지만! 9년이나 됐는데 스웨덴세탁소로도 하고, 다른 가수에게 곡도 주고 싶다는 게 그냥 좋다! '두 손 너에게' 같이 예전에 냈던 곡이 지금도 인기가 많다. 새로운 곡이 성적이 안 좋으면 뭔가 속상하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또 속상하진 않다. 실력 좋은 다른 밴드가 나오면 물론 관심이 분산될 수 있지만 그런 걸 받아들이면서 휘청거리지 않는 게 스스로 좀 대견하다!" (최인영)

"그때마다 할 수 있는 걸 그때마다 만들고 싶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옛날 우리 노래를 들으면 아쉬움도 있어서 고쳤으면 하는데 그때의 내가 만들어 놓은 걸 지금의 내가 듣는다고 생각하면 좀 위안이 되더라(웃음).

그간 새로운 세탁소들이 많이 생겼다(웃음). 우릴 찾는 단골 손님에 대한 건 계속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다. 더 많은 분들이 우리 음악을 찾아주면 좋지만 단골은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늘 있다. 최인영의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너무 좋아서 꾸준히 낼 건데 우리가 프로듀싱도 관심이 많다. 다른 아티스트들과 꾸준히 협업하고 싶다. 또 OST도 관심이 많다!" (왕세윤)


10주년을 맞이할 내년에 혹시 해보고 싶은 게 있는지 기습 질문을 던졌다. 한참을 생각하다 최인영이 "우리의 옛날 노래를 다른 분들이 불러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처음엔 앨범 하나 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벌써 9년이나 됐다"며 "너무 어리둥절한데 최인영의 아이디어에 적극 찬성한다"고 격한 공감을 드러냈다.

이들의 진지하면서도 천진난만한 모습에서 여전히 손님맞이를 즐겁게 하는 정감 있는 세탁소가 떠올랐다. 마침 최근 앨범에 다 담지 못한 노래를 묶어 새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무슨 생각해요?" 

이들의 책을 보면 노래하는 모습의 스웨덴세탁소와 또 다른 다양한 관심사가 있는 두 사람이 보인다. 왕세윤은 평소 CPR 등 응급처치를 배웠고 응급구조키트를 구비하고 있다고 하다. 최인영은 종교가 없다면서도 간절한 소원은 달에게 비는 습관이 있기도 하다. 최근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화두는 무엇인지 '번외 질문'을 던졌다. 

"평소엔 제가 답하는 게 느린데 이건 제가 먼저 대답할 수 있다! 길고양이 TNR(포획·중성화수술·재방사를 의미하는 Trap-Neuter–Return을 뜻함) 시스템이 너무 고민이다. 그리고 플라스틱 사용을 어떻게 하면 더 줄일 수 있을까. 이런 걸 생각하고 있다." (왕세윤)

"이런 질문에 전 항상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과 안전이라고 답했고, 늘 제 목소리를 어떻게 쓰지 생각했는데 최근에 <씨스피라시>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제가 회를 되게 좋아하고 연어를 되게 좋아했는데 그 다큐를 보고 물고기 먹기가 싫어지더라. 연어를 봐도 군침이 안 돌기 시작했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최인영) 

 
스웨덴세탁소 왕세윤 최인영 우리가 있던 시간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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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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