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이번에도 벤투호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바뀐 것이 있다면 오직 하나, 상대팀이 약해졌다는 것 뿐이었다. 단 한 경기만 놓고봤을때는 내용과 결과 모두 흠잡을데가 없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날의 대승이 벤투호에게 득이 될지 될지는 신중한 분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은 5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7라운드 경기에서 투르크메니스탄에게 5-0으로 대승을 거뒀다. 황의조(2골)를 비롯하여 남태희, 김영권, 권창훈이 골맛을 봤다. 북한의 예선 도중 불참 선언으로 인해 북한전 결과가 모두 무효 처리되면서 한국에서 2차예선 나머지 경기를 모두 치르게 된 H조에서는 한국이 투르크전 승리로 3승1무 승점 10점을 기록하며 단독 선두를 지켰다.

투르크전 대승의 소득은 분명하다. 지난 3월 한일전 참패 이후 처음 치러진 A매치였던 투르크전에서 손쉬운 승리를 거두면서 침체된 팀분위기와 여론을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예선 홈 3연전 첫 경기 단추를 잘 끼우면서 다득점으로 득실차에도 여유를 갖고 조 1위 수성에 청신호를 밝혔다. 여러 선수들이 골맛을 보면서 컨디션도 끌어올렸다. 대표팀은 오는 9일 스리랑카 경기를 잡으면 마지막 레바논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최종예선에 1위로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보다 몇 수 아래인 투르크전 승리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칫 눈앞의 현실을 착각하게 만드는 실수일 수도 있다. 투르크전은 한국이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한일전과는 달리 이번의 벤투호는 유럽파 선수들까지 전원 가세한 최상의 전력을 구축했고 홈경기였다. 벤투호는 2019년 투르크 원정에서도 2-0으로 승리한바 있다.

오히려 투르크전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은 벤투 감독이 지금까지의 팀운영 기조에서 변화를 주지않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이다. 이날 투르크전 라인업을 보면 최전방에 황의조와 손흥민을 내세우고 2선에 이재성, 남태희, 권창훈, 수비형 미드필더에 정우영을 배치했으며 수비진에는 김문환, 김민재, 김영권, 홍철, 골키퍼로는 김승규가 출전한 4-1-3-2 포메이션에 가까웠다. 벤투호 출범 이후 꾸준히 중용되어온 주전급 선수들이 이번에도 큰 변동 없이 선발로 나선 모습이었다.

손흥민이나 황의조, 이재성, 김민재같은 선수들이 부동의 주전으로 기용되는 것은 당연해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소속팀에서 부상-부진 등으로 기회를 많이 잡지 못하거나 활약이 저조했던 선수들까지도 벤투호에서는 '묻지마 주전'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권창훈-김영권-홍철-김문환 등이 대표적이다. '중동파' 남태희와 정우영은 동일 포지션에 다른 우수한 K리거들이 등장해도 우선순위로 중용되고 있다. 벤투 감독이 강조하는 점유율 위주의 '빌드업 축구'도 변함이 없었다. 안정된 틀과 연속성을 강조하는 벤투 감독의 보수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물론 투르크전만 놓고보면 최상의 결과가 나오지않았냐고 반박할수 있다. 다득점-무실점으로 완승했고 김영권-남태희는 직접 골까지 넣었다. 그러나 투르크전은 벤투호의 종착지가 아니라 좁게는 최종예선, 넓게는 월드컵이라는 더 큰 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다. 4년전 슈틸리케호는 2차예선까지만 해도 무실점-전승행진이라는 지금의 벤투호보다 훨씬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지만, 경쟁팀들의 수준이 높아진 최종예선에 접어들자마자 밑천을 드러내며 결국 성적부진으로 경질된 바 있다.

이날 벤투호 대승의 원동력은 빌드업 축구보다는 오히려 강력한 전방 압박이었다. 투르크는 이날 라인을 깊숙이 내리고 공격수 한 명을 빼고 모두 수비로 내려와 간격을 좁히는 버스 수비로 맞섰다. 양팀의 전력차를 인정하고 실점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을 썼지만 오히려 2019년 홈에서 내용상 한국을 상당히 괴롭혔을 때와 비교하면 수비의 적극성이나 투지가 떨어졌다.

벤투호의 빌드업이 수월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애초에 투르크가 중원싸움에 대한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라인이 높게 올라가니 자연히 최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이 가능해졌고, 한국 선수들은 투르크의 공을 차단하여 빠른 역습으로 기회를 노리는 장면이 이어졌다. 손흥민이나 이재성은 공을 잡으면 무리하지 않고 수비를 끌어들여서 아군이 침투할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데 주력했다. 세밀한 부분 전술보다는 선수들의 개인능력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찬스의 비중이 더 높았다.

벤투 감독이 올림픽팀과 선수 차출 갈등까지 불사하면서 발탁을 고집했던 선수들 중 원두재만 후반 교체멤버로 그라운드를 밟는데 그쳤다. 29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첫 발탁된 이기제도 후반에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주전들의 체력안배를 제외하면 '플랜B'에 대한 전술적 변화나 실험의 의미는 크게 보이지 않았다.

주장인 손흥민은 이날 팀이 올린 5골중 3골에 간접적으로 관여하며 우수한 활약을 보였지만 이번에도 득점을 올리는데는 실패했다. 손흥민은 최근 A매치 6연속 무득점을 비롯하여 벤투호 출범 이후 20경기에서 3골에 그치고 있다. 소속팀에서 골잡이 역할로 활용되는 것과 달리, 벤투호에서는 플레이메이커로서 경기 전반에 관여해야하는 부담이 더 크다. 손흥민은 이날 몇 차례나 투르크의 거친 파울성 수비에 시달리며 아찔한 장면을 연출했지만 벤투 감독은 점수차가 벌어진 후반에도 손흥민을 끝내 풀타임으로 뛰게했다.

그런데 만일 이날 상대가 투르크가 아니라 일본이나 그와 비슷한 수준의 강팀이었다면? 홈이 아니라 원정이었다면? 2차예선이 아니라 최종예선이었더라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장담할수 있을까. 1경기 결과에 일비일희할 것이 아니라면, 벤투호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벤투호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아직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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