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주말드라마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MBN 주말드라마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 MBN

 
MBN 사극 <보쌈 - 운명을 훔치다>에서 전문 보쌈군인 바우(정일우 분)가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로 옹주(권유리 분)를 보쌈한 사건은 엄청난 후폭풍으로 이어졌다.
 
범행 당사자인 바우는 '생업'을 접은 채 옹주를 모시고, 또 자기 아들을 데리고 도망 다니기에 바쁜 처지가 됐다. 갑작스레 며느리의 행방불명을 접하게 된 조정 실세 이이첨(이재용 분)은 가문에 미칠 불똥을 피하고자 옹주의 죽음을 선포하고 장례식을 치러버렸다. 그런 뒤 자객들을 풀어 옹주와 바우를 추격했다. 옹주를 죽여 장례식을 정당화할 목적이었다.
 
보쌈에 더해 사망선고까지 받은 옹주는 시아버지의 칼날을 피해 여기저기 도주하는 신세가 됐다. 그런 중에도 그는 바우를 향한 미묘한 감정으로 인해 가슴 속 동요를 느끼게 됐다.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된다는 스톡홀름 증후군 같은 것으로는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그 어떤 감정이 옹주의 가슴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한편, 옹주가 죽지 않았음을 알게 된 광해군(김태우 분)은 한편으로는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를 활용하려 한다. 여권 실세인 이이첨의 약점을 찾아 그를 제압하고자 이 사건을 이용하려는 것이다. 바우의 보쌈이 당사자들의 운명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까지 훔치는 전혀 뜻밖의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서당 훈장이 보쌈을 당한 사연

옛날 사람들도 보쌈이 가져오는 후폭풍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을 포대에 씌워 납치한 뒤 다른 데로 데려가 살림을 차렸다는 식의 일반적인 스토리뿐 아니라, 보쌈으로 인해 빚어진 전혀 뜻밖의 결과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표출했다.
 
보쌈이 의외의 결과로 이어지는 일은 여성 보쌈보다는 남성 보쌈에서 더 많았던 듯하다. 서당 훈장이 보쌈을 당한 사건도 그런 예에 해당한다. 구전 설화들 속의 보쌈 사례를 분석한 민속학자 이영수의 논문 '보쌈 구전설화 연구'에서 그 훈장의 특이한 경험을 접할 수 있다.
 
2019년에 <비교민속학> 제69집에 수록된 이 논문에 의하면, 사건의 출발점은 '서당에 다니는 어린 아들과 함께 홀로 사는 여성'과 '처녀가 된 딸과 함께 홀로 사는 남성'이 이웃에 살게 된 일이다. 논문에 따르면, 이 남성은 이웃집 여성에게 마음을 품었다. 그런데 그것은 불순한 마음이었다. "이웃의 홀아비가 과부를 채가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논문은 말한다.
 
이웃집 남성이 자기를 보쌈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여성은 어린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훈장님을 집으로 모셔오게 한 것이다. 그는 집을 방문한 훈장에게 자기 옷을 건넸다. 여장을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이웃집 남성은 계획된 보쌈을 감행했다. 그랬으니, 자기 집에 들어온 포대에서 여장 남자가 나오는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깜짝 놀랄 만한 이 상황은 이웃집 남성의 머릿속에서 새로운 구상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자신이 결혼하려고 데려온 '여성'을 자기 딸의 남편으로 선택한 것이다. 남성의 아내가 될 뻔했던 훈장은 이로 인해 남성의 사위가 됐다. 한편, 엉뚱한 작전을 계획한 그 여성은 주변 남성들의 위협을 받지 않고 계속해서 홀로 살게 됐다. "과부는 수절하였다고 한다"고 위 논문은 말한다.
 
논문은 이 사례가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두고두고 전승된 배경과 관련해 "(그 여성의) 재가에 대한 인본적인 관심은 보이지 않고, 궁색하기 그지없는 훈장이 수절 과부로 인해 젊은 처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된 횡재를 남성 중심적인 선망이 담긴 시선으로 희화화하고 있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그런 남성 중심적인 선망의 시선이 이 설화의 생명력을 담보했다는 것이다.
 
보쌈 당한 뒤 훈련대장 사위가 된 남자
 
 MBN 주말드라마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MBN 주말드라마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 MBN

 
과거시험 보러 갔다가 지금의 서울 명동성당과 을지로입구역 근처 어디선가 불의의 납치를 당한 선비도 보쌈으로 인해 뜻밖의 일을 경험했다. 드라마 <보쌈>에 나오는 광해군의 최측근이었던 어우당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그 선비가 등장한다.
 
<어우야담>에 따르면 이 사건은 명나라에서 정덕(正德)이란 연호가 사용되기 전에 있었다. 연산군이 쿠데타를 당한 1506년이 정덕 1년이었으므로, 이 사건은 1506년 이전에 일어난 일이다.
 
시험 보러 갔다가 친구를 만난 선비는 통행금지 시각인 인정(人定, 10시 12분)을 지난 뒤에 숙소로 돌아갔다. 그가 납치를 당한 장소는 구리개로 불리는 곳이었다. 명동성당과 을지로입구역 근처가 바로 이곳이다.
 
네 명의 괴한은 그를 가죽 포대에 넣은 뒤 대여섯 번 돌려 묶었다. 그런 다음, 한참을 돌고 돌아가더니 어느 곳에선가 포대를 내려놓고 선비를 꺼내줬다. 선비의 눈에 비친 풍경은 상당히 낯선 것이었다. "담장은 높고 높으며 행랑이 주위를 둘렀다"고 <어우야담>은 말한다.
 
거기서 선비는 독신으로 보이는 주인 여성을 만나게 됐고, 새벽이 되자 다시 포대에 넣어져 원래의 피랍 장소에 놓이게 됐다. 이 사건은 그 뒤 선비의 학문 태도를 교란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어우야담>은 이렇게 말한다.
 
"선비는 경황이 없고 황망하여 어느 길로 어느 집에 들어가 어떤 사람과 묵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잊지 못했다. 이듬해에도 다시 전처럼 과거에 응시하러 경사(京師, 서울)에 가게 되자, 매일 밤 인정 때마다 구리개에 가서 일부러 어정어정 머뭇거려 봤지만 끝내 가죽 포대를 만나지 못했다."
 
이 선비는 운명이 아닌 마음이 훔쳐지는 선에서 그쳤지만, 유사 피해를 당한 청년의 상당수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시집갈 딸에게 상부살(喪夫煞, 과부가 될 팔자)이 있다는 점괘를 받은 부모들에게 걸리면 죽임을 피하기 힘들었다.
 
보쌈으로 데려온 청년을 자기 딸과 '1일 부부'로 만든 뒤에 죽임으로써 딸의 과부 팔자를 미연에 막자는 목적으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는 부모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을 만나면 다음날 아침까지 살아 있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당하고도 극적으로 살아남아 의외의 결과를 경험하는 청년들이 있었다. 자신을 납치한 집의 딸로부터 금괴를 받고 몰래 도망친 청년도 있고, 이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보쌈을 당한 뒤 훈련대장의 딸과 결혼한 청년도 있었다고 한다. 위 논문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이 중에서 '자료 23, 벼락부자 된 형제와 훈련대장 사위'의 경우에는 두 가지 형태의 총각보쌈 이야기가 구술되어 있다. 하나는 강원도에서 상경한 청년이 상부살을 막는다는 이유로 보쌈을 당하고 처녀가 준 금덩어리를 이용해 하인을 매수하여 죽을 고비를 넘기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과, 이 소식을 들은 사람이 자진해서 보쌈을 당하고 스스로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 훈련대장의 딸인 청상과부와 혼인하였다고 하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드라마 <보쌈>은 역사적 사실과 거의 무관하지만 상당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다. 바우의 보쌈이 당사자들뿐 아니라 국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쪽으로 의외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보쌈 사례들도 실제로 적지 않았다. 보쌈을 당해 엉뚱한 결혼까지 하게 된 훈장님, 명동성당 근처에서 보쌈당한 일로 인해 정신의 황망을 겪게 된 선비, 보쌈으로 인해 금괴를 챙기거나 훈련대장의 사위가 된 남자들의 이야기가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보쌈 운명을 훔치다 총각 보쌈 과부 보쌈 조선시대 인신매매 강제 결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