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학살 다룬 영화 <쿠오바디스,아이다>(2020)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학살 다룬 영화 <쿠오바디스,아이다>(2020)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1990년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이하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군이 조직적으로 자행했던 보스니아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다룬 영화 <그르바비차>(2005)로 전세계 영화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던 야스밀라 즈바니치 감독이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2020)로 돌아왔다. 

실제 보스니아 내전 생존자인 즈바니치 감독이 꾸준히 전쟁 당시 세르비아군의 만행을 영화화하는 것은 보스니아 내전이 단순 민족, 지역 간의 갈등이 아닌 무슬림계인 보슈냐크인을 조직적으로 말살하기 위한 '인종 청소 프로젝트'였다는 점 때문이다. 이전부터 보스니아가 속해 있는 발칸 반도는 '유럽의 화학고'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크고 작은 분열과 갈등에 시달려왔다. 그나마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 성립 당시에는 잠잠하다 싶었던 지역·민족 간의 갈등이 분열 이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격화되어 전쟁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특히나 보스니아 내전이 남긴 상흔이 더욱 참담하게 느껴지는 건 얼마 전까지 친구이자 이웃으로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이 피해자들에게 총칼질을 해대고 성폭력을 가했다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 이후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가해자와 피해자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보여준 진실보다 더 끔찍하고 참혹했던 현실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본 보스니아 내전의 참혹성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학살 다룬 영화 <쿠오바디스,아이다>(2020)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학살 다룬 영화 <쿠오바디스,아이다>(2020)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즈바나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한 <그르바비차>의 주인공 에스마(미르야나 카라노비치 분)는 보스니아 내전 당시 집단 성폭력 피해를 입었고, 그 과정에서 태어난 딸 사라(루나 미조빅 분)를 홀로 키우며 살아간다.

자신의 아버지가 전쟁에서 전사한 '전쟁영웅'인 것으로 믿고 있던 사라와 이와 정반대되는 진실을 숨기고 싶었던 에스마. 하지만 딸의 출생 비밀을 끝까지 감추려고 했던 에스마의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이 모든 사실을 알게된 사라는 잠시 혼돈에 빠지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그렇듯이 전쟁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로서 굳건히 살아가고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후 2020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 되었던 <쿠오바디스, 아이다>에서는 집단 학살 위기 속 남편과 두 아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UN군 통역관 아이다(야스나 두리치치 분)가 전면에 등장한다. 그 누구보다 UN군을 믿었지만, UN군을 포함한 국제사회 어느 누구도 자기 가족과 보스니아 사람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아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남편과 아이들을 살리고자 한다. 과연 아이다는 절체절명 위기 속에서 무사히 남편과 아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그르바비차>의 에스마가 그랬듯이, 가족을 지키기 위한 아이다의 노력도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개인의 노력과 능력만으로는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비극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인간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도 절망과 무력감을 동시에 안긴다. 

그러나 보기 힘든 장면이라고 외면할 수 없는 건 실제 이보다 더 끔찍한 일을 겪었던 희생자와 피해자들이 다수 존재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어떻게든 삶의 의지를 이어나가는 생존자들이 살아있는 현실에서 그들이 겪었던 사건의 일부를 극화한 장면을 가지고 절망을 운운하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전쟁과 학살의 아픔을 딛고 그럼에도 살아낸다는 것. 바로 이 지점이 즈바니치 감독의 영화가 여타 제노사이드(인종, 이념 등의 대립을 이유로 특정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여 절멸시키려는 행위)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과의 결정적 차이점이다.  

당시 세르비아계 민병대가 스레브레니차 주민들에게 가했던 폭력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극도로 절제하는 영화는 대신 UN군이 주둔하는 난민 보호소로 어렵게 대피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 부지를 장담할 수 없었던 스레브레니차 주민들을 보여준다. 눈앞에 벌어지는 대규모 학살 앞에서도 정치적 이해타산에 따라 뒷짐만 지었던 UN군의 유명무실함,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남편과 아들들을 살리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다를 통해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학살 다룬 영화 <쿠오바디스,아이다>(2020)

1995년 스레브레니차 학살 다룬 영화 <쿠오바디스,아이다>(2020)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이렇듯 영화는 전쟁 학살의 스펙터클을 최소화하면서 수많은 보스니아인들에게 강한 트라우마로 작용한 그 날의 비극을 드라마틱하게 재현한다. 더 나아가 내전이 끝난 후 예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온 아이다의 삶을 보여주며 학살 이후 너무나도 달라진 스레브레니차 풍경에 주목하고자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제노사이드를 온 몸으로 경험한 생존자로서 살아남아 스레브레니차를 끝까지 기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외면했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 사건이기에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다룬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는 현재 극장가에 절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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