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포스터.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포스터.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1960년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가 절정으로 치달았고 베트남 전쟁 또한 극에 달했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가 독립했다. 프랑스에서 68혁명이 일어났고,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다. 미국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큼지막한 일들에 미국이 연관되지 않은 경우를 찾기 힘든데, 미국 내부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인권운동, 히피운동, 여성해방운동 등이 진행되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유명인사들이 잇따라 암살당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로버트 F. 케네디 상원의원, 마틴 루터 킹 목사, 맬컴 엑스 등이 비명횡사했다. 그리고 또 한 명, 프레드 햄프턴은 FBI의 습격으로 침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1966년 결성된 흑표당의 일리노이주 지부장이었다. 

흑표당은 1960년대 당시 FBI 수장이었던 에드가 후버 국장에 의해 큰 위협으로 여겨졌는데, 그 중 가장 큰 표적이 된 인물이 프레드 햄프턴이었다. 그의 뛰어난 연설과 조직 능력 그리고 인민을 위하는 마음이 굉장한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블랙 메시아' 프레드 햄프턴(다니엘 칼루유야)과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작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FBI 정보원 '유다' 오닐(라케이스 스탠필드)의 이야기이다. 

FBI 정보원, 흑표당에 잠입하다

1968년 미국 시카고, FBI를 사칭해 차를 훔쳐 달아나가다 붙잡힌 윌리엄 오닐은 진짜 FBI 요원 미첼에게 제안을 받는다. 차량절도죄와 FBI사칭죄를 합쳐 7년 여를 감옥에서 썩을 건지, FBI 정보원이 되어 흑표당에 잡입해 일러노이주 지부장 프레드 햄프턴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건지 말이다. 그는 당연히 FBI 정보원 제안을 받아들인다. 

흑표당에 가입해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는 오닐, 한편 햄프턴은 일명 '무지개 연합'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선 여기저기 찾아다닌다. '인민이 곧 힘'이라는 기치하에, 당국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인종과 상관없이 연대하고자 한 것이다. 설득력 있고 힘 있는 연설까지 더해져 그의 구상은 금세 탄력을 받아 착착 진행되는 듯했지만, 그는 황당한 혐의로 감옥에 가고 만다.

흑표당 일리노이주 지부는 흔들리고 무너질 위기에 처하지만, 뜻밖에도 오닐의 주도로 햄프턴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거의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오닐은 햄프턴이 감옥에서 오래 있을 듯해 정보원 노릇을 그만하고 싶었지만, 후버 국장은 급진적이고 확실한 처방을 원했다. 햄프턴의 앞날은? 오닐은 앞날은? 흑표당의 앞날은?

유다의 이야기, 블랙 메시아로 향하는 시선

2021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여느때처럼 영화 장인들의 각축장이었는데, '남우조연상' 부분에서만큼은 거의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두 주인공이 이례적으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는데, 프레드 햄프턴 역의 대니얼 칼루야가 받을 게 확실시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영국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등 주요 영화제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 '대니얼 칼루야'가 아닌 '프레드 햄프턴'에게 주는 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블랙 메시아' 프레드 햄프턴의 이야기가 아닌 '유다' 윌리엄 오닐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에게서 시작해 그에게로 끝나는 영화이다. 이 작품에서 영화적 재미를 느끼게 하는 상당수가 윌리엄 오닐의 복잡다단하고 긴장 어린 심리 묘사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가슴은 영웅적인 프레드 햄프턴과 흑표당 그리고 인민을 향하지만, 머리는 그들을 따르지 못하고 목숨을 부지하는 데 골몰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말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하염없이 프레드 햄프턴으로 향한다.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가 향하고 있는 곳은 영화 속 윌리엄 오닐이 아니라 역사 속 프레드 햄프턴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주연인 윌리엄 오닐을 간악한 고뇌에 가득 찬 별볼일 없는 인물로 그릴수록, 사실상 조연인 프레드 햄프턴이 돋보인다. 실제 인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영화는 영화 밖으로 나가 여전히 흑인이 차별받는 현실과 맞닿는다. 프레드 햄프턴의 구상과 연설 등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와닿기에 이른다. 

함께하는 목소리

청중을 휘어잡는 프레드 햄프턴의 연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 "혁명가는 죽어도, 혁명은 죽지 않는다"이다. 자신의 미래를 예상하고 있었던 듯, 혁명가의 숙명을 인지하고 있었던 듯. 강렬하고 열성적인 연설에 청중은 환호하지만, 결말을 아는 이들에겐 숙연하게 다가온다. 영웅은 영웅으로 존재할 뿐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으니 말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윌리엄 오닐의 시선으로 엿볼 수 있다. 

영웅의 전기를 다루는 방식은 다양하다. 정통적인 방식이 영웅 본인의 이야기를 본인의 시선에서 온전히 그려내는 거라면, 체 게바라의 평범했던 시절 이야기를 담은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같은 작품도 있는가 하면, < 1987 >처럼 세상을 바꾸는 수많은 '소소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씨줄과 날줄 엮듯 촘촘히 나열해 보여 주기도 한다. 이 작품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은 영웅에 동화되어 지근거리에서 지켜 보는 스파이의 이야기로, 영웅 전기의 또 다른 방식을 제안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21세기 세계 최대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차별과 혐오의 작태, 그 끝없는 굴레가 이런 영화를 만들게 하고 내놓게 하고 관심 끌게 한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자문해 보는 것에서 그칠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날 때면 목소리를 내는 데 어떤 식으로든 함께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시위에 가담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사실을 올바르게 보고 주위에 알리는 것도 관련된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소비하는 것도 목소리를 내는 데 함께하는 것일 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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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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