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소통을 기대했지만 결국 이번에도 바뀐 것은 전혀 없었다. 한국축구의 성공과 발전을 위해 데려온 외국인 감독이 오히려 끊임없이 논란과 갈등만 초래하고 있는 현실,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축구협회의 무능한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성인 축구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이 지난 24일 나란히 소집명단을 발표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A팀은 다음달 열리는 카타르월드컵 2차 지역예선을,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은 7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열리는 평가전을 대비한 명단이다.

이번 명단의 최대 화두는 A팀과 올림픽팀간의 선수 조율 문제였다. 양팀은 원하는 주요 선수 자원이 일정 부분 겹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경우에는 상위 대표팀인 A팀의 선발우선권을 가급적 존중하는 게 원칙은 맞다. 하지만 올림픽대표팀은 가장 중요한 세계대회인 도쿄올림픽 본선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고 이번 6월 소집은 최종명단 발표를 앞두고 '완전체' 정예멤버들을 모두 소집하여 선수와 전술 점검을 단행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물론 A팀도 카타르월드컵이라는 중요한 목표를 바라보고 있지만 현재는 2차예선이고, 북한의 대회 불참 선언으로 잔여 경기는 한 수아래의 약체들을 모두 홈에서 상대하는 유리한 상황이었다. 와일드카드 3장을 제외하면 연령제한이 적용되는 올림픽대표팀과 달리, A팀은 원하는 선수들은 얼마든지 뽑을 수 있어서 선수층의 선택지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한국축구에 있어서 올림픽은 월드컵 못지 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대회이고, 김학범호는 이번 대회에서 2012년 런던대회(동메달)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의 성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축구계와 팬들의 여론도 이번만큼은 벤투 감독이 올림픽대표팀을 배려하여 양보해야 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명단이 공개되자 결국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벤투 감독은 올림픽팀의 핵심자원으로 꼽히는 원두재-이동경-송민규 등을 다시 A팀에 호출했다. 원두재와 이동경은 지난해 벤투 감독의 눈에 띄어 올림픽 대표팀에서 국가대표팀으로 나란히 월반한 선수들이다. 지난해 10월에 열린 올림픽 대표팀과의 두 차례 스페셜매치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면서 대표팀의 핵심자원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 송민규도 올림픽대표팀에 먼저 뽑혔지만 이번에 성인대표팀의 첫 부름을 받았다.

물론 A팀에서 올림픽팀으로 내려온 선수들도 있다. 이승우, 이강인, 정우영, 백승호, 이동준 등은 김학범호에 합류했다. 하지만 내실을 살펴보면 벤투 감독의 '배려'와는 거리가 멀다. 이승우나 백승호는 어차피 벤투 감독 체제에서는 거의 중용되지 못하던 선수였다. 이강인은 비교적 꾸준히 발탁되었으나 그의 주포지션인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는 벤투 감독도 직접 인정했듯이 남태희-권창훈-이동경- 이재성 등 우선순위로 기용될 선수들이 차고 넘친다.

지난 한일전의 경우 손흥민-황희찬-김민재 등 해외파 정예멤버들이 합류하지 못하면서 올림픽팀 자원들을 데려다가 빈 자리를 메워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벤투 감독이 원하는 멤버들을 모두 소집할 수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결국 올림픽팀을 위하여 양보한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벤투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관련된 사람들과 다 논의했다"며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김학범 감독은 "문화 차이를 느꼈다. 유럽에서는 올림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축구가 부러웠다"며 뚜렷한 온도차를 드러냈다. 결국 축구협회의 중재가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만 확인한 꼴이 됐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히 몇몇 선수들의 차출문제를 둘러싼 기싸움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축구협회가 굳이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온 것은, 단지 A팀의 단기간 성적만이 아니라 한국축구가 중장기적으로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선진축구의 경험과 시스템적인 노하우도 전수해 달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벤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지난 3년간 과연 한국축구에 이전에 비하여 얼마나 변화하고 향상되었는지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지난 한일전 패배로 벤투 감독을 향한 여론이 악화된 것은, 단지 평가전 1경기의 의미를 넘어 벤투호에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문제점과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에 가깝다. 정몽규 축구협회장까지 나서서 팬들 앞에서 사죄를 할 동안 벤투 감독은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나선 이번 소집명단 발표 때도 벤투 감독의 인식과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한일전 패배는 내 책임"이라고 마지못해 잘못을 인정한 것 같지만 "한 경기 결과로 전체가 좌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불만도 동시에 내비쳤다.

축구협회가 지나칠 정도로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아쉽다. 더 큰 대가를 치르기 전에 벤투 감독에 대한 냉정한 중간평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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