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인이 된 모 대기업 회장이 썼던 책 제목처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며 또 그만큼 다양한 취미들이 존재하지만 영화만큼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골고루 사랑 받는 취미도 드물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2시간(물론 더 길거나 짧은 영화도 많지만) 동안 가상의 공간으로 들어가 새로운 삶을 간접 체험하는 기쁨은 영화만이 가진 매력이다. 아이맥스 화면이 있는 대형 극장이든 좁은 방구석이든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 빠져 들다 보면 모든 장면이나 내용이 마음에 쏙 들 수는 없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저 장면은 왜 저렇게 만들었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나오지 못하면 "나라면 이 장면을 저렇게 만들었을 텐데..."라는 가정으로 진화한다. 그런 질문들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은 영화에 더욱 빠져 들게 되고 급기야 직접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상상의 최종단계에 이른다. 

그 중에는 일찌감치 현장에 뛰어 드는 사람도 있고 대학에서 정식으로 영화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있으며 영화아카데미에서 영화공부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소년 토토는 어린 시절부터 동네 극장의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누며 영화의 매력과 감동을 몸소 배운 진정한 '시네마 키드'였다.
 
 개봉 당시 서울에서만 28만 관객을 모았던 <시네마천국>은 무려 3번에 걸쳐 재개봉된 명작이다.

개봉 당시 서울에서만 28만 관객을 모았던 <시네마천국>은 무려 3번에 걸쳐 재개봉된 명작이다. ⓒ (주)왓챠

 
이탈리아 기사 칭호를 받은 최초의 영화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어메리카>의 고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함께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 감독이다. 베니니 감독이 코미디에 기반을 두는 영화를 주로 만들고 레오네가 남성적인 서부극에 특화된 감독이라면 토르나토레 감독은 휴머니즘에 입각한 드라마 장르에서 강세를 보이는 인물이다.

1985년 <프로페서>를 통해 장편 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한 토르나토레 감독은 1988년 만32세의 젊은 나이에 일생일대의 역작 <시네마 천국>을 연출했다. 1940년대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극장을 운영하는 노년의 영사기사 알프레도와 어린 영화광 토토의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198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1990년 골든글러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시네마 천국>은 1991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각본상, 음악상 등 5개 부문을 휩쓸었다. 특히 알프레도 역의 고 필립 느와레가 남우주연상, 꼬마 토토 역의 살바토레 카스치오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국내에서는 1990년에 개봉해 서울에서만 27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고 1993년과 2013년, 그리고 작년까지 무려 3번에 걸쳐 재개봉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시네마 천국> 이후 <모두 잘 지내고 있다오>, <단순한 형식>,<스타 메이커> 등을 연출한 토르나토레 감독은 1998년 <피아니스트의 전설>을 선보였다. <시네마 천국>에 이어 위대한 영화음악가 엔니오 모네코네와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피아니스트의 전설>은 아름다운 이야기와 음악이 조화를 이룬 토르나토레 감독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1998년 영화감독 최초로 이탈리아 공화국 기사 칭호를 받았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2006년 미스터리 스릴러에 도전한 <언노운 우먼>으로 모스크바 영화제 감독상, 유럽영화상 관객상을 수상하며 또 한 번 능력을 인정받았다. 유럽에서는 어느덧 '거장' 반열에 오른 토르나토레 감독은 2016년 신작 <시크릿 레터>를 선보였다. <시크릿 레터>에는 중후한 매력을 자랑하는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와 < 007 퀸텀 오브 솔러스 >의 본드걸 올가 쿠릴렌코가 출연했다.

그 시절, 토토에겐 영화가 인생의 전부였다
 
 <시네마천국>은 전 세계 '시네마키즈'에게는 반드시 봐야 할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시네마천국>은 전 세계 '시네마키즈'에게는 반드시 봐야 할 교과서 같은 작품이다. ⓒ (주)왓챠

 
얼마 전 집에 놀라온 조카가 심심해 할까봐 와이파이만 잡히는 미개통 스마트폰을 대여(?)해 준 적이 있었다. 당시 조카가 스마트폰을 상당히 익숙하게 다루는 장면을 보며 놀란 나는 조카의 아버지(형)에게 조카가 이공계 쪽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하지만 형은 코웃음을 치며 요즘 애들은 전부 스마트폰을 저렇게 다룰 수 있다는 '요즘 어린이들'의 최신 근황을 전했다. 

하지만 1940년대 이탈리아 가난한 마을의 어린이들에게는 놀 거리가 많지 않았다. 토토(살바토레 카스치오 분)가 어린 나이부터 영화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생필품을 사야 할 돈으로 영화를 본 토토는 엄마에게 걸려 광장에서 크게 혼이 난다. 하지만 언제나 토토를 혼내던 영사기사 알프레도(고 필립 느와레 분)가 흑기사처럼 등장해 그를 위기에서 구해준다. 알프레도와 토토의 우정이 처음 시작되는 장면이다.

상영 시간이 끝나 극장에서 쫓겨난 마을 사람들을 위해 영사기를 밖으로 돌려 야외 상영을 해주는 장면도 무척 인상적이다. 그만큼 마을사람들에게 하나밖에 없는 극장과 그곳에서 틀어주는 영화는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야외 상영에 빠져 방심한 사이 영사기에 불이 붙고 알프레도는 시력을 잃게 된다. 그리고 알프레도를 제외하면 마을에서 유일하게 영사기를 다룰 줄 아는 토토가 알프레도의 뒤를 이어 영사기사 일을 맡게 된다.

<시네마천국>은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 토토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액자식 구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알프레도의 부고 소식에 30년 만에 고향을 찾은 중년의 토토는 철거예정인 극장 안에서 알프레도의 유품인 필름 한 롤을 발견해 로마로 가져온다. 그 필름 안에는 과거 심한 검열 때문에 삭제했던 편집 필름이 담겨 있었고 토토는 그 안에 담긴 자신의 어린 시절과 알프레도와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이 작품은 1940년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과거에만 볼 수 있던 극장의 다채로운 풍경들을 볼 수 있다. 좌석을 구하지 못해 계단에 앉거나 통로에 서서 영화를 보는 장면은 물론이고 상영관에서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이미 영화를 본 관객이 한 박자 일찍 큰 소리로 영화 대사를 이야기하며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요즘 같으면 극장에서 쫓겨 날 행동들이지만 당시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어느덧 40대 아재가 된 꼬마 토토
 
 천진한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 잡았던 꼬마토토 살바토레 카스치오는 1990년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천진한 매력으로 관객들을 사로 잡았던 꼬마토토 살바토레 카스치오는 1990년을 끝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 (주)왓챠

 
사실 유럽 영화는 국내에서 크게 인기를 얻지 못하는 편이라 <시네마 천국>에 출연하는 배우들도 국내 관객들에게 익숙한 인물들은 아니다. 하지만 알프레도를 연기했던 고 필립 느와레는 6.25 전쟁이 막 끝난 1955년부터 배우로 활동했던 프랑스의 국민배우다. 2006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150편 가까운 영화에 출연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 미국, 영국 등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느와레는 <시네마천국>외에도 1984년과 1990년 두 편에 걸쳐 제작된 <마이 뉴 파트너> 시리즈에 출연하기도 했다(한국영화 <투캅스> 개봉 당시 표절시비가 있었던 바로 그 영화다). 1994년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이 연출했던 <일 포스티노>를 기억하는 영화팬도 적지 않다. 2006년 11월 느와레의 장례식에는 프랑스의 도미니크 드 빙팽 총리도 참석해 대배우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

살바토레 카스치오는 만 10세도 채 되지 않는 어린 나이로 소년 토토 역을 야무지게 연기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천재배우로 떠올랐다(살바토레는 극중에서 토토의 본명이기도 하다). 특히 잘려진 필름 조각들을 보고 신기해 하거나 극장 건너편 담벼락에 영화가 상영되는 것을 보고 감격하는 연기는 아역배우 특유의 순수함이 없다면 표현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하지만 많은 할리우드의 아역배우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배우 생활을 이어가는 것과는 달리 살바토레는 토르나토레 감독의 차기작 <모두 잘 지내고 있다오>를 마지막으로 영화계를 떠났다. 다만 청년 토토를 연기했던 호주 출신 배우 마르코 레오나르디는 <시네마천국>으로 데뷔해 최근까지 꾸준히 배우로 활동했다. 레오나르디는 국내 관객들에게 익숙한 <황혼에서 새벽까지 3>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에도 출연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시네마천국 주세페 토르나토레 엔니오 모리코네 시네마 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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