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주말드라마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MBN 주말드라마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 MBN

 
MBN 드라마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광해군(김태우 분)은 신하이자 사돈인 이이첨(이재용 분)을 향해 마음속으로 칼을 갈고 있다. 이이첨 아들에게 시집간 광해군의 옹주(권유리 분)가 보쌈을 당하자, 이이첨은 이런 사실을 숨기고자 옹주의 장례식을 치렀다. 그것도 모자라 옹주를 죽여 후환을 없애고자 자객들을 풀어 추격전까지 벌이고 있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없었던 일이지만, 드라마 속의 광해군은 어떻게든 되갚아 주고 싶어 한다. 그는 복수를 위해 은밀히 사람 하나를 선택한다. 무명의 소장파 관료인 김자점(양현민 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광해군은 최측근 상궁이자 정권 실세인 김개시(송선미 분)를 통해 김자점의 존재를 알게 됐다. 광해군 정권은 북인당이고 김자점은 서인당이지만, 광해군은 개의치 않는다. "꾀와 말주변이 좋습니다"라는 김개시의 추천을 신뢰할 뿐이다.
 
광해군은 비밀리에 김자점과 접촉한다. 한밤중에 대궐 으슥한 데서 그와 '접선'한다.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광해군은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활을 겨누며 말한다. 드라마 제5회가 30분쯤 경과했을 때 나오는 장면이다.
 
"과인이 맞추고 싶은 과녁이 있는데, 보다시피 화살이 없다. 어찌 해야 하겠느냐?"
 
김자점은 신속히 무릎을 꿇는다. "전하, 신을 화살로 써주소서. 신 김자점 미력하나마 사력을 다해 그 어떤 과녁이라도 저격할 수 있는 화살이 되겠사옵니다"라며 초면인 임금 앞에서 든든한 신하의 모습을 보여준다.
 
광해군이 맞추고 싶은 과녁이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맞추고 싶어 하는지를 김자점은 그 짧은 시간 내에 신속히 파악한다. 마치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 것처럼, 자기를 믿으라는 강한 확신까지 심어준다. 광해군은 흡족한 미소를 띠며 "내 너를 중히 쓸 것이다"라고 약속한다.
 
눈치 없는 신하들이 하는 행동
 
 MBN 주말드라마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MBN 주말드라마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 MBN

 
신하들은 군주 앞에서 가급적 자기 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임금 앞에서는 자신을 '김자점'보다는 '자점'으로 호칭하는 게 예의였다. 군주 앞에서 다른 신하를 언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군신간의 대화를 기록한 역사 기록물들에는 신하들의 성이 대체로 빠져 있다.
 
오늘날의 가문은 혈연집단의 의미밖에 없지만, 과거의 가문은 그에 더해 경제·정치·교육 공동체까지 겸했다. 그래서 가문의 타이틀인 '성'이 갖는 의미가 오늘날과 현저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성'은 개인이 속한 혈연·경제·정치·교육 공동체를 알려주는 표지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군주 앞에서 가급적 자기 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같은 문중의 어른 앞에서 자기 성을 언급하지 않듯이 군주 앞에서도 가급적이면 그렇게 했다. 이씨 왕실의 임금 앞에서 자기 가문의 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당신이 속한 집단과 내가 속한 집단은 서로 다르다'고 강조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반면, 군주 앞에서 성을 숨기고 이름만 드러내는 것은 자신이 군주에게 속했음을 강조하는 방법이 됐다. 나이든 신하가 어린 군주 앞에서 자기 성을 빼고 이름만 언급한 것은 귀엽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체감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자신이 왕실에 속한 일원인 것처럼 비쳐지게 하는 방법이었다.
 
드라마 속의 김자점처럼 이씨 임금에게 절대 충성을 맹세하면서 김씨 성을 드러내는 것은 눈치 없는 신하들이 하는 행동이었다. 드라마 속의 김개시는 그가 '말주변이 좋다'고 평가했지만, 조선시대 관념으로 보면 드라마 속의 김자점은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김자점은 비밀 왕명을 수행하는 면에서는 광해군을 흡족게 한다. 이이첨이 며느리를 묻은 곳이 길지가 아니라 흉지이므로 무덤을 파내서 딴 곳으로 이장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이 논리를 앞세워 어전회의에서 이이첨을 당황케 만든다. 이이첨이 만든 묘지에 옹주의 시신이 없음을 알고 있는 광해군은 김자점의 활약을 만족스럽게 지켜본다.
 
조선 후기의 간신배로 유명한 김자점은 오늘날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존재한다. 백범 김구의 자서전에도 그가 등장한다.
 
김구는 <백범일지> 첫 대목에서 "우리는 안동 김씨 경순왕의 자손이다"라는 말로 자기 집안을 소개한다. 그는 신라 마지막 임금의 후예로서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조선시대에도 공신 가문 혹은 관료 가문의 위상을 이어온 자기 집안이 하층민으로 몰락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의 방계 조상인 김자점이 역적으로 몰려서 멸문지화를 당하게 되자, 내게 11대조 되시는 어른이 처자를 끌고 서울을 도망하여 일시(적으로) 고양에 망명하였다. 하지만 그곳도 서울에서 가까워 안전하지 못하므로, 해주 부중(府中, 시내)에서 서쪽으로 80리 백운방의 텃골 팔봉산 양가봉 밑에 숨을 자리를 구하시게 되었다. 그곳 뒷개에 있는 선영에는 11대 조부모의 산소를 비롯하여 역대 선산이 계시고 할머님도 이 선영에 모셨다."
 
김자점과 관련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상 중 하나는 경기도 이천에 존재한다. 김자점은 지금의 경기도 이천시 백족산에 아버지 무덤을 조성했다. 그는 물이 없는 이곳을 명당으로 만들고자 묏자리 아래에 인공으로 보를 조성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이 이천 쌀의 명성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는 이야기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역사학자 이은식이 쓴 <지명이 품은 한국사> '네 번째 이야기 2편'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명당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만든 이 보는, 아래 이천 마을의 넓은 들을 가꾸는 농민들에게는 신나는 발견이 되었다. 농민들이 가물 때 보의 물을 살금살금 빼어 관개수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백족산 명혈의 영험이 든 보의 물을 농민들이 흩어 놓는 바람에 왕가의 외척이었던 김자점의 말로가 기구해졌다고 한다.
 
반면, 금반형(금쟁반 모양, 김자점 아버지 산소 지칭)의 영험이 깃든 물로 지은 이천의 벼는 사람을 훌륭하게 하는 자양이 된다는 말이 번졌다. 그리하여 이천에서 생산되는 쌀이 좋다는 말은 과학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풍수학적인 뜻 때문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자점으로 인해 농사짓기가 편해진 이천의 사람들은 이 보를 일컬어 자점보라 이름하기 시작했다."
 

인조시대에 주로 활약한 김자점
 
 MBN 주말드라마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MBN 주말드라마 <보쌈 - 운명을 훔치다>의 한 장면 ⓒ MBN

 
이렇게 오늘날까지 전해질 이야깃거리를 만든 김자점은 광해군 시대가 아닌 인조시대에 주로 활약했다. 2018년에 영화 <창궐>에서 배우 장동건이 연기한 김자준과 비슷한 인물인 김자점은 광해군 시대에는 제대로 활약할 기회가 없었다.
 
과거시험이 아닌 특채로 진출해 광해군 때 정6품 병조좌랑을 지낸 그는 이 정권의 정적 숙청 논리인 인목대비 폐모론에 동조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드라마 <보쌈>에 언급된 것처럼 그는 야당 격인 서인당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광해군 정권 후반기를 재야인사로 보내야 했다.
 
그가 두각을 보인 것은 광해군을 몰아내는 인조 쿠데타(인조반정)에 가담한 뒤였다. 쿠데타 뒤에 1등 공신이 된 그는 인조정권 때 절정의 권세를 누리다가 인조 다음인 효종 때 역모죄에 걸려 사형을 당했다.
 
김자점은 광해군 정권이나 효종 정권과는 궁합이 맞지 않았다. 그런 그가 드라마 <보쌈>에서는 광해군의 밀명을 수행하는 비밀 병기로 등장했다. 광해군과 궁합이 척척 맞는 인물로 등장한 것이다. 드라마 속의 김자점이 실제의 김자점과 얼마나 다르게 묘사될지 지켜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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