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서울 SK 나이츠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깜짝 사령탑 교체를 선택했다. 2011년부터 약 10년 가까이 팀을 이끌어왔던 문경은 감독이 기술자문으로 물러나고 전희철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됐다.

2020-21시즌을 앞두고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었던 SK는 24승 30패로 8위에 그치며 6강진출조차 실패했다. 국내 선수들의 연이은 줄부상과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이 뼈아팠다. SK 구단은 명문 구단으로의 재도약과 팀컬러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을 두루 고려하여 전희철 카드를 뽑으며 '안정 속의 변화'를 선택했다.

문 전 감독은 SK에서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남겼다. 그는 현역 시절 한국농구의 간판 슈터계보를 잇는 명슈터 출신으로 SK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한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이기도 하다. 2011년 감독대행 시절을 포함하여 SK 구단 역사상 최장수 감독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허재-김승기 감독과 더불어 프로무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을 경험해본 '스타플레이어 출신 감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도 꼽힌다.

문경은 감독의 가장 큰 공로는 SK를 리그를 대표하는 인기팀으로 재건했다는데 있다. 문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까지만 해도 SK는 화려한 선수들과 투자에 비하여 조직력과 성적은 저조한 '모래알 군단'으로 악명이 높았다. 김태환-신선우-김진 등 리그를 대표하던 베테랑 감독들도 잇달아 실패를 거듭하는 '감독들의 무덤'으로 꼽히기도 했다. 문 감독이 SK에서 지도자로 데뷔할 때만해도 많은 이들이 성공 가능성에 반신반의한 이유다.

하지만 문 감독은 SK를 10년간 4번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으며, 2012-13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첫 정규리그 1위, 2017-18시즌에는 구단 역사상 2번째이자 18년만의 챔프전 우승을 달성하는 등 빛나는 업적을 세웠다. 또한 풍부한 포워드진과 속공, 3-2 드롭존 등으로 대표되는 SK만의 공격농구 스타일을 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경은 감독은 리그를 대표하는 덕장으로도 유명했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이미지가 강한 KBL 감독들과 달리, 문 감독은 본인이 스타 출신임에도 자존심과 개성이 강한 스타 선수들을 아우르며 동기부여를 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선형-애런 헤인즈-최준용-김민수 등 저마다 장단점이 뚜렷하던 선수들의 능력이 SK에서 유독 극대화될 수 있었던 것은, 선수의 개성을 존중하고 플레이에 최대한의 자율과 신뢰를 주는 문경은 감독의 뚝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SK에서 선수생활 말년을 보냈던 전태풍도 "KBL에도 이런 감독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며 문 감독을 극찬한바 있다.

아쉬운 부분은 외국인 선수의 활용도에 따른 성적의 기복이었다. 문 감독에게는 지도자 인생 내내 '문애런'이라는 다소 달갑지 않은 별명이 따라다녔다. 외국인 선수 애런 헤인즈에 대한 그의 의존도가 유독 높다는 것을 빗댄 표현이다. 헤인즈는 KBL 역사상 외국인 선수 역대 득점 1위에 오를만큼 큰 족적을 남긴 선수였고 그중에서도 SK에서 가장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문 감독이 헤인즈를 그만큼 잘 활용했다는 이야기도 된다.

다만 SK가 아닌 다른 팀에서도 우승까지 차지하는 등 꾸준한 활약을 보여준 헤인즈에 비하여, 정작 문경은 감독은 헤인즈가 없을 때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단적으로 문 감독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4번의 시즌에는 모두 헤인즈가 있었던 반면 헤인즈가 없었던 시즌에는 플레이오프에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는 징크스를 남겼다. 물론 우승을 차지했던 2017-18시즌에는 헤인즈가 부상으로 플레이오프에 참여하지 못했고, 2019-20시즌은 코로나19로 플레이오프가 아예 무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문경은 감독이 헤인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증명하지 못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덕장이라는 타이틀에 대해서도 명암이 엇갈린다. 좋게 말하면 선수들에게 자율권을 주는 감독이지만, 반대로 보면 선수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지난 2020-21시즌이 대표적이었다. 노쇠한 헤인즈와 결별한 대신 자밀 워니와 닉 미네라스라는 나름 KBL에서 검증된 외국인선수 진용을 구축했음에도 성적은 오히려 추락하며 전술적인 역량에서 의문부호를 남겼다. 워니의 공개적인 항명과 최준용의 SNS 논란 등이 속출하며 사령탑으로서 팀 기강을 잡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SK 구단이 고심 끝에 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전희철 신임 감독은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전 감독은 문경은 감독과 지난 10년 동안 SK에서 함께 코칭스태프로 호흡을 맞춰왔다. 두 사람 모두 '농구대잔치 세대'의 주역으로 동시대를 풍미한 스타 출신이지만 현역 시절에는 각각 고려대-연세대를 대표하는 간판 선수로서 경쟁하는 관계에 더 가까웠다. 보통 학연과 인맥으로 이어져있는 경우가 많은 농구계에서 라이벌팀 출신의 인물들이 코칭스태프로 짝을 이뤄 한 팀에서 10년이나 별다른 문제 없이 장수하며 감독직까지 평화롭게 승계하는 훈훈한 모양새는 이례적이다.

전희철 감독은 '준비된 지도자'로도 꼽힌다. 10년 전 문경은 감독이 신선우 전 감독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물려받았을 때의 과정과 비슷하다. 다만 전 감독은 문 감독에 비하여 지도자 수업을 받은 기간이 훨씬 길었다. SK에서 선수생활 후반기를 보내고 은퇴한 이후 전력분석원-운영팀장-2군 감독-수석코치까지 좀더 다양한 역할과 경험을 거쳐 마침내 감독의 자리까지 올랐다.

전 감독은 73년생으로 40대 후반이다. 현재 KBL을 대표하는 감독들이 대부분 40대 초반에 첫 지휘봉을 잡았고, 전 감독보다 후배 농구인들이 코치를 거쳐 벌써 프로 감독에 오른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감독 데뷔가 늦은 편에 가깝고 지도자 경험이나 연륜면에서는 이미 감독급이나 다름없었다.

재미 있는 부분은 '농구대잔치 스타' 출신 감독들의 엇갈린 성적표다. 흔히 90년대 농대 세대를 대표하는 대학 '빅3'로 연세대-중앙대-고려대가 꼽힌다. 이중 중앙대는 허재(전 KCC)-김영만(전 DB)-김승기(안양 KGC 인삼공사), 연세대도 문경은과 이상민(삼성), 조상현(국가대표팀) 감독처럼 성인무대에서 나름 굵직한 이력을 남긴 감독들을 잇달아 배출한 바 있다.

하지만 고려대 출신 스타 감독들의 행보는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했다. 전희철 감독보다 2년 후배인 현주엽(창원 LG)-신기성(전 여자농구 안산 신한은행) 등이 먼저 프로 감독으로 데뷔했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남기지 못하며 야인이 됐다. 전 감독과 동기인 김병철 코치는 고양 오리온에서 은퇴한 이후로 2013년부터 계속 코치로만 머물고 있다. 전희철 감독이 고려대 출신 스타 감독의 징크스를 깰 수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전 감독의 당면한 과제는 역시 흐트러진 팀 기강을 바로잡는 데 있다. 또 몸값에 비하여 기량이 떨어지고 있는 베테랑 선수들을 세대교체하는 문제도 감독의 냉철한 판단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오랫동안 문경은 감독을 보좌한 탓에 자칫 '문경은 시즌2'가 되지 않겠냐는 우려도 없지 않지만, 코치와 감독으로서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 오랫동안 전창진 감독을 코치로서 보좌해왔던 김승기 감독이 인삼공사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이 좋은 예다.

전희철 감독은 선수시절까지만해도 다혈질이고 터프한 이미지가 강했다. 선수단을 장악하는 방식도 문 감독과는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희철 감독이 문경은 감독과 동고동락하며 배운 장점들을 계승해 나가면서도 자신만의 색깔로 어떻게 차별화에 성공할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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