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세상을 위험으로부터 구해내는 영웅들을 좋아한다. 특히 코믹북과 영화의 발달로 미국인들의 히어로 사랑은 유별나다. 실제로 역대 북미 박스오피스 톱10에 히어로 영화는 무려 5편(2위 <어벤져스:엔드게임>, 4위<블랙펜서>, 5위<어벤져스:인피니티워>, 8위<어벤저스>, 10위<인크레더블2>)이나 포함돼 있다.<스타워즈> 시리즈를 'SF히어로 영화'로 분류할 경우 역대 톱10 흥행 영화 중 히어로물의 비율은 70%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초능력 없이도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들을 구해내는 영웅들은 현실에서도 존재한다. 바로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불길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귀중한 생명을 구해내는 소방관들이다. 단순히 '불 끄는 업무를 하는 공무원'이라는 인식에 머물러 있는 국내와 달리 미국에서 소방관들은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영웅들'로 상당한 예우를 받고 있다. 미국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순위에서도 소방관은 언제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소방관들이 등장하는 영화들도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특히 폴 뉴먼 주연의 1974년 작 <타워링>은 '화재 영화의 바이블'이라 불리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개 부문을 휩쓴 명작이다. 그리고 17년 후 <타워링>에 버금가는 또 한 편의 화재 영화가 제작돼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바로 "네가 가면, 우리도 간다(You Go, We Go)"라는 명대사로 더욱 유명한 론 하워드 감독의 1991년작 <분노의 역류>다.
 
 <분노의 역류>는 화재현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아카데미 시상식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분노의 역류>는 화재현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아카데미 시상식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 UIP KOREA

 
미처 만개하지 못한 볼드윈 4형제의 셋째 

우리나라에 김태우-김태훈 형제, 김태희-이완 남매가 있는 것처럼 할리우드에도 많은 형제(혹은 남매, 자매) 배우들이 있다. 하지만 에릭 로버츠와 줄리아 로버츠, 숀 펜과 크리스 펜처럼 한 쪽이 지나치게 유명해 상대적으로 한 쪽이 빛을 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나마 다코타와 엘르 패닝 자매 정도가 아슬아슬한 인지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형제 배우를 이야기할 때는 볼드윈가의 4형제를 빼놓을 수가 없다. 장남 알렉 볼드윈을 필두로 대니얼, 윌리엄, 스티븐 4형제가 모두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볼드윈가 역시 환갑을 훌쩍 넘는 지금까지 중후한 매력을 뽐내며 할리우드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맏형 알렉을 제외하면 나머지 형제들의 지명도는 조금 떨어진다. 특히 셋째 윌리엄 볼드윈은 할리우드의 슈퍼스타로 성장할 싹수를 보였기에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큰 형을 제외한 형제들과 함께 올리버 스톤 감독의 < 7월4일생 >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윌리엄 볼드윈은 1991년 <분노의 역류>에서 주인공 브라이언 역에 캐스팅됐다. 커트 러셀을 비롯해 로버트 드 니로, 도널드 서덜랜드 등 유명배우들이 대거출연한 이 작품은 세계적으로 1억52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 <분노의 역류>에서 터프한 친형 알렉과는 대조적인 스마트한 매력을 발산한 윌리엄은 단숨에 할리우드의 유망주로 떠올랐다.

윌리엄은 차기작으로 당대 최고의 섹시스타 샤론 스톤과 함께 에로틱 스릴러 <슬리버>에 출연했고 1995년에는 최고의 모델 신디 크로포드가 출연한 <페어 게임>의 남자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슬리버>는 샤론 스톤의 인기 덕분에 그나마 해외에서 흥행에 성공했지만 <페어 게임>은 북미 1100만 달러로 흥행 참패하고 말았다(<페어게임>의 제작비는 5000만 달러였다).

<패어 게임>의 실패 후 윌리엄 볼드윈의 가치는 순식간에 추락했고 그가 다시 대작 영화에 캐스팅되는 일은 없었다. 윌리엄 볼드윈은 최근 5년 동안 4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대중들이 기억할 만한 영화는 하나도 없다(2012년 출연작인 <생존자들>은 국내에서 2016년에 개봉해 '130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지금도 꾸준히 연기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한때 할리우드가 주목하던 유망주였던 윌리엄의 현재에 아쉬움이 남는건 어쩔 수 없다.

불과의 싸움에서 이긴 맥카프리 형제
 
 <분노의 역류>는 화마에 맞서 싸우는 소방관들의 동료애로 많은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분노의 역류>는 화마에 맞서 싸우는 소방관들의 동료애로 많은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 UIP KOREA

 
어린 시절 아버지의 화재 진압 현장을 견학(?)갔다가 아버지가 불길에 휩싸여 순직하는 장면을 목격한 브라이언(윌리엄 볼드윈 분)은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소방관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브라이언은 형 스티븐(커트 러셀 분)이 반장으로 있는 17소방대로 발령 받았다. 브라이언의 형 스티븐은 누구보다 용기 있는 소방관이지만 가정을 돌보지 못해 부인과 별거하고 아버지가 남긴 통통배에 가까운 보트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브라이언은 형을 따라간 첫 출동에서 어리바리한 모습을 보이다가 사람이 아닌 마네킹을 구출하며 망신을 당한다. 특이한 사실은 <분노의 역류> 최고의 명대사로 꼽히는 "You go, We Go(네가 가면, 우리도 간다)"가 초반부 크게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 등장한다는 점이다(물론 후반부에 또 나오지만). 사실 "You Go, We Go"는 특정 인물의 대사보다는 17소방대 대원들의 협동심과 소속감을 상징하는 구호로 쓰인다. 

역류하는 불과 싸우는 17소방대의 고군분투를 다룬 <분노의 역류>에서는 스티븐의 부인을 통해 소방관 가족들의 고충도 함께 보여준다. 위험 속으로 들어가 불을 끄고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들은 시민들의 영웅이지만 그 위험 속으로 가장을 보내야 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전혀 다른 문제다. "당신은 (소방관으로) 최고에요. 하지만 그 때마다 난 아들을 걱정해야 해요"라는 부인(레베카 드 모네이 분)의 말이 전혀 이기적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로널드(도널드 서덜랜드 분)와의 면담을 통해 범인이 액스(스콧 글렌 분)라는 사실을 알게 된 브라이언은 화학공장 사고현장에서 스티븐과 액스의 갈등에 개입하고 액스는 높은 곳에서 추락한다. 그리고 브라이언은 결정적인 순간에 호스를 낚아채 화재 진압에 성공한다(영화적으로 가장 스팩터클한 장면이자 동시에 영화니까 가능한 장면이다). 스티븐은 불과 싸워 이긴 동생을 보며 동료들에게 "저것 봐, 저게 내 동생이야!"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이 같은 브라이언의 노력에도 스티븐은 결국 순직하고 만다. 하지만 훌륭한 소방관으로 성장한 자랑스런 동생의 모습을 봤기에 스티븐은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스티븐의 성대한 장례식이 끝난 후 브라이언은 다시 화재 현장으로 출동한다. 그리고 <분노의 역류>는 "현재 미국에는 1,200,700명의 소방관이 활약하고 있다"는 자막을 통해 소방관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막을 내린다.

대배우 로버트 드니로-도날드 서덜랜드의 활약
 
 대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소방관 출신의 화재 조사관 림게일을 연기하며 화재 원인을 밝혀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대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소방관 출신의 화재 조사관 림게일을 연기하며 화재 원인을 밝혀내는데 큰 역할을 한다. ⓒ UIP KOREA

 
<분노의 역류>는 화재현장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다. 소방관들은 불 속에서 화재를 진압하고 사람들을 구해내는 일에는 전문가지만 화재의 원인을 파악하고 불의 속성을 연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전문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분노의 역류>에서는 화재 조사관 도널드 림게일 역의 러버트 드 니로와 방화범 수감자 로널드 바텔 역의 도널드 서덜랜드를 통해 역류의 원인과 범인의 실체에 대해 밝혀 낸다.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대배우 로버트 드 니로는 전직 소방관이자 화재 조사관으로 수많은 현장경험과 방대한 지식을 자랑한다. 워낙 많은 영화에서 악역을 맡았던 화려한 경력 때문인지 관객들에게 진범이 아닐까 의심을 받기도 하지만 림게일은 브라이언의 멘토 역할을 하며 역류의 비밀을 풀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시의원 스웨이잭(J.T. 월쉬 분)이 방화 사건과 연루됐다는 걸 처음 발견한 인물도 바로 림게일이었다.

유명 방화범이었던 로널드 바텔은 브라이언과의 면회를 통해 범인의 실체를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드라마 < 24시 >로 유명한 배우 키퍼 서덜랜드의 아버지인 도널드 서덜랜드는 영화와 TV를 오가며 수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지난 2014년에는 <헝거게임> 시리즈의 스노우 대통령 역으로 MTV영화제 최고의 악당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분노의 역류> 속 바텔 역시 서덜랜드의 명연기를 만나 입체적인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이 밖에 다양한 연기폭을 가진 여성배우 제니퍼 제이슨 리는 브라이언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시의원 스웨이잭의 비서 제니퍼 베잇커스로 출연했다. 강간 피해자(<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마약 중독자(<러쉬>), 매춘부(<마이애미 블루스>) 등 흔치 않은 역할을 주로 연기하는 배우로 유명하지만 <분노의 역류>에서는 비교적 평범한 역할을 맡았다. 2016년에는 <레이트폴8>으로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분노의 역류 커트 러셀 윌리엄 볼드윈 로버트 드 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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