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자료사진).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자료사진). ⓒ 연합뉴스

 
"10편까지 만들겠다."

생전 이춘연 영화인회의 이사장이 매체 인터뷰는 물론 사석에서도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다. 자신의 제작사인 씨네2000의 대표작인 <여고괴담> 시리즈를 향후 10편까지 완성하겠다는 다짐이었으리라. 

지난 2018년 8월 한국영상자료원이 마련한 '<여고괴담> 20주년 특별전' 자리에서도 그같은 이 이사장의 다짐은 변함이 없었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난해 7월 6편 <여고괴담 리부트: 모교>가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5편이 개봉한 지 11년 만이었다.

"학교에 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발굴되는 데에는 어른들의 잘못이 크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학교 제도에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냐." (이춘연 이사장, 2019년 8월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그렇게 호러라는 장르영화를 통해서까지 한국사회와의 공명을 부단히도 이어갔던 이춘연 이사장. 안타깝게도, 그가 직접 제작한 <여고괴담> 10편을 볼 수는 없을 듯 하다. 지난 11일 '한국영화계의 맏형'이자 '큰별'인 이 이사장이 별세했다.

향년 71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왕성하게 활동했기에 한국 영화계 전체가 애통할 수밖에 없었다. 별세 전날에도 <아들의 이름으로> 시사회에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는 전언이 넘쳐났기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11일 당일까지 올해 개최 중단을 알렸던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의 회의에 참석했다는 소식은 이 이사장의 한국영화에 대한 열의와 열정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이어지는 추모와 애도 행렬

아마도 한국의 영화인들은 둘로 나뉠 것이다. 이 이사장과 직접적인 인연이 있거나 그렇지 않거나. 직접적인 연조차 크게 관계가 없을지 모를 일이다. 후배 세대들 모두 이 이사장이 제작하고 출연한 영화들은 보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이 이사장은 제작사 씨네2000 대표이자 영화인회의 이사장으로서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동시대 현역 영화인이었다.

지금껏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 스크린쿼터감시단 공동위원장, 영화인회의 이사장 등을 도맡으며 한국영화계의 갖가지 현안을 앞장서 해결해왔고, 그렇기에 더더욱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각종 영화제나 시사회 등 굵직한 영화계 행사의 반가운 얼굴 중 으뜸이 바로 이춘연 이사장이었다.

상업영화, 독립영화 구별 없이, 영화인 단체부터 영화제, 영화 기자에 이르기까지, 이 이사장과 직접 작업을 했든 하지 않았든 한목소리로 진심어린 애도를 표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리라.

소셜 미디어 상에서도 애도와 함께 고인이 된 이 이사장과의 기억을 회고하는 글 들이 차고 넘친다. 그 중 영화를 그만두려던 시기 씨네2000에서의 시나리오 작업으로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았다는 어느 현역 감독의 회고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이 이사장의 지지와 조언을 통해 힘을 얻었다는 영화인들의 회고와 추모가 끊이질 않고 있다.

"우리들 세대 현장에서 영화를 만드는 분 중 가장 형님이었고, 영화계의 맏형 역할을 많이 하셨다. 영화계 현안마다 대소사에 늘 애정 어린 관심을 가졌던 분이고, 그렇다고 연세가 많으신 것도 아니고 평소에 몸이 아프신 것도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많은 이들이 놀라고 슬퍼하고 있다." (이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장, 12일 <뉴스1> 인터뷰 중)

한편으로, '영원한 현역'이라 불린 이 이사장은 요즘 말로 '꼰대'와는 거리가 먼 선배 영화인이기도 했다. 공적인 자리든 사석이든 청중이나 상대를 유쾌하게 만드는 '입담'으로 유명했고, 본인 역시 영화계 대소사를 아우르고 후배들을 독려하는 일에 애정을 기울여왔다는데 동의하지 않는 영화인은 없을 것이다.

4기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선임 즈음이던 2008년 가을, 후보 접수를 하리라던 영화계의 예상과는 달리 영화 제작에 매진했던 이 이사장은 당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껏 영화계를 위해 충분히 봉사했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제작자로서의 은퇴를 생각해본 적 있나"는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놓은 바 있다.

"카메라 앞에서 장렬히 전사할 때까지 걸맞을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대목이 찡하게 다가오는 한편 후배들에게 건네는 농담을 노력의 일환이라 여겼던 이 이사장의 속정이 드러나는 답변이라 할 만 했다.  

"카메라 앞에서 장렬히 전사할 때까지 걸맞은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왔는데. (웃음) 나름대로 적응 노력도 해왔다. 후배 프로듀서가 33살이라고 치면, 난 그 나이에 무슨 생각했나. 그때 사장이 영감처럼 쓸데없는 말을 해서 힘들었다면 나는 말 줄여야겠구나.

철없이 사는 게 중요하다. 폼 잡지 말고. 내 얼굴 봐라. 가만 있어도 '어' 하면 폼 잡는 외모다. 현장에서 내 의견과 다른 주장이 나와도 '옛날에는 말이지∼'라고 안 하려고 한다. 그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되거든. 후배들에게 농담하는 것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 (이춘연 이사장, 2008년 11월 <씨네21>, <"힘들수록 기본에 충실해야지"> 중에서)


영원한 영화인
 
 12일 서울 성모병원에 마련된 고 이춘연 씨네2000 대표의 빈소 모습. 지난 11일 갑작스럽게 별세한 이춘연 대표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12일 서울 성모병원에 마련된 고 이춘연 씨네2000 대표의 빈소 모습. 지난 11일 갑작스럽게 별세한 이춘연 대표의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 장례준비위원회 제공

 
씨네2000의 근작은 <더 테러 라이브>(2013)다. 그해 여름방학 기간 개봉해 550만 관객을 동원한 이 히트작을 씨네2000이 제작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영화인들이 당시 적지 않았다. 영화의 형식이나 주제 면에서 모두 상당히 혁신적이고 세련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기획자이자 제작자 이춘연의 영화들이 그랬다. 1980년대 화천공사 및 황기성사단에서 제작한 영화들, 이를 테면 이장호 감독의 <과부춤>(1993)이나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1988), 강우석 감독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모두 시대를 앞서거나 동시대 관객들의 감각에 조응하는 작품들이었다.

한국 호러영화의 이정표를 세운 <여고괴담> 시리즈를 필두로 1995년 설립한 씨네2000의 작품들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 여럿이었다. 씨네2000 설립에 앞서 김성홍 감독의 <손톱>(1994)으로 종전의 흥행을 기록한 이후 1998년 <여고괴담>을 터트리기 직전까지 <지독한 사랑>(1996), <3인조>(1997)에서는 각각 작가주의 감독인 이명세, 박찬욱 감독과 작업했다.

<여고괴담>처럼 장르영화의 획을 그은 작품도 있었다. <여고괴담> 1편과 같은 해 개봉한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은 한국 로맨틱 드라마 선구자 격인 영화였다. 변혁 감독의 <인터뷰>처럼 다시 실험적인 작품도 있었고, <돌려차기>(2003)라는 학원 스포츠 물을 제작하기도 했다. 씨네2000의 필모그래피 중 사극이 <황진이>(2007)이 단 한 편이라는 사실이 다소 의외일 정도다.

그러는 사이 <여고괴담>은 2009년 5편까지 제작됐고, 2013년 <더 테러 라이브> 이후 장고에 돌입했던 씨네2000은 지난해 김서형이 주연을 맡은 6편 <여고괴담 리부트: 모교>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선보였다. 이 이사장이 실로 오랫동안 준비했던 <여고괴담> 신작의 개봉을 직접 마주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는 영화인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론, 2010년 가을 이춘연 이사장과 장기간 인터뷰를 가졌더랬다. 당시 영화계 현안부터 아끼던 배우였던 심은하에 대한 추억은 물론 씨네2000의 작품 경향까지. 한국영화의 '뉴웨이브'와 산업화 및 정착기를 이끈 장본인이자 영화계 맏형으로서 이 이사장은 본인만의 이상과 감각, 특유의 입담을 유감없이 들려줬더랬다.

"연기자로 대표님을 또 뵙고싶다"는 끝인사로 당시 인터뷰를 마쳤던 것 같다. 1951년생으로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이 이사장은 1970년대엔 정극 및 뮤지컬에 연기자로서 직접 무대에 올랐고, 영화계에 투신하기 전까지 수많은 작품을 기획/제작하며 무대에 올린 뼛속까지 '광대'로 산 이력의 소유자다. 

류승완 감독의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 <부당거래>(2010), <더 테러 라이브>(목소리 출연)엔 직접 출연도 했다. 연기자 출신 이 이사장이 까마득한 아래 연배의 후배가 "연기자" 운운하는 질문에 정확히 어떤 대답을 들려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다소 경직됐던 인터뷰 초반과 달리 '허허' 특유의 웃음을 짓던 이 이사장의 얼굴은 잊혀지지 않는다. 스크린에서 마주하는 자신의 얼굴에 대해 또 특유의 입담으로 유쾌하게 털어놓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제 '영원한 영화인' 이춘연 이사장의 입담과 웃음은 마주할 수 없겠지만 이 이사장이 남긴 작품들은, 그의 족적은 한국영화계에 영원히, 찬란하게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13일 밤, JTBC를 통해 방송된 제5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연기상 수상자로 무대에 선 이병헌은 "사실 오늘 기쁜 일로 이 자리에서 왔는데 마음이 무거운 건 어쩔 수 없네요"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애도를 표현했다. 나란히 참석한 전도연 역시 "영화계 일이라면 대소사 가리지 않고 참석하셨는데, 아마 이 자리에 계셨다면 누구보다 기뻐해주시지 않았을까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라며 침울해 했다.

그렇게 여러 영화계 선후배로 구성된 장례위원 중 한 명이기도 한 배우 이병헌이 JTBC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백상 무대에서 전한 애도야말로 영화인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 했다. 영화인장을 치르고 있는 고 이춘연 이사장의 영결식은 토요일인 15일 오전 열린다. 진심을 다해 고 이춘연 이사장님의 명복을 빈다.  

"제가 영화를 처음 시작하던 90년대 중반 그때부터 영화에 대한 꿈을, 영화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셨던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씨네2000 대표이자 영화인회의 이사장으로 계셨던, 한국영화계의 큰형님과 같고 대들보 같았던 이춘연 대표님입니다. 그런데 이틀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이병헌)
이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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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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