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영화 <학교 가는 길>의 김정인 감독.

다큐멘터리영화 <학교 가는 길>의 김정인 감독. ⓒ 이선필

 
시작은 아주 짧은 기사 하나 때문이었다. 2017년 무렵 강서구 장애인특수학교 건립을 위한 주민 토론회가 파행으로 치달았다는 내용을 본 감독은 다음 토론회 일정에 무작정 카메라 하나를 들고 찾아가 보기로 한다. 그렇게 감독은 4년 내내 카메라를 들고 장애부모연대, 특히 특수학교 건립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엄마들 틈을 파고 들었다.

지난 어린이 날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의 김정인 감독을 만났다. 강서구 최초 특수학교인 서진 학교의 설립 과정을 오롯이 담은 영화를 세상에 내놓은 그는 어떤 마음일까. 10일 오후 서울 망원동 모처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영화에 앞선 고민의 흔적

"저 또한 딸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학교 보내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의아했다. 기사의 여운이 오래 남아서 다음 토론회 때 작은 카메라 하나를 들고 갔는데 고성과 욕설이 오가고 있었다. 제 다리가 떨릴 정도로 현장은 격앙된 분위기였다. 근데 단상에 세 어머니가 계셨는데 그 와중에도 전혀 감정적이지 않고 차분하게 특수학교 건립 필요성을 말씀하시더라. 그분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저도 만나기 전에 약간 두려운 마음 있었지. 장애가 있는 자녀를 공개하는 게 조심스러울 테고 허락해주실까 불안했다. 근데 오히려 잘 왔다고 맞이해주시더라. 촬영하면서 알게 됐는데 그분들은 본인의 자녀를 비장애인들에게 더 알리고 싶어 했다. 자주 노출돼야 사람들의 편견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계시더라."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곳은 가양동에 들어선 대규모 임대주택단지를 비롯해 지금의 서진 학교 부지 등 강서구 일대다. 영화는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를 혐오 시설로 보고 반대하는 주민들의 모습, 학교 부지임에도 한방병원을 짓겠다며 엉뚱한 공약을 내세운 지역 정치인, 나아가 대규모 임대주택이 들어섰기에 저소득층 중심의 생활권이 형성된 동네의 역사를 짚는다. 감독의 고민이 엿보이는 지점이다.

"영화를 만든 저 또한 만약 제가 그곳 주민이었고, 내가 사는 동네에 서진 학교가 들어온다면 선뜻 나는 찬성한다고 말씀은 못 드릴 것 같다. 분명한 건 한국 사회가 나와 수준이 다르고 차이가 난다 싶으면 선을 긋고 급이 안 맞는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점점 도드라지는 것 같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건 누구에게든 도움이 안 되는 거잖나. 차이를 조율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나아가는 게 시간은 걸릴지언정 맞다고 생각한다. 가진 자든 못 가진 자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함께 살기 위해선 이 방법이 유일하다고 본다.

그래서 서진 학교에 반대 의견 가지신 분들을 섭외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반대 주민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긴 했다. 아마도 이 영화가 그분들에겐 불편할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특수학교 설립만이 아니라 그 동네가 가진 역사와 이면을 좀 더 다뤄보려 했다. 이 문제는 지역 이기주의나 님비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같이 반성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의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의 한 장면. ⓒ 영화사진진

 
매력적인 엄마들

영화 속 중심 인물인 이은자, 정난모, 조부용, 장민희, 김남연씨 등도 제각각 개성이 다르다. 차분하게 설명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내부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며 강하게 호소하는 이도 있다. 자신들을 향해 욕하고 장애가 있는 아이를 대놓고 혐오하는 이웃들 모습에 매번 울면서도 꾸역꾸역 한발씩 나아가는 이가 있는 반면, 상처받을지언정 의연하게 대처하는 이도 보인다. 영화가 거칠고 무겁기만 한 게 아니라 종종 유쾌하고 웃음 포인트가 있을 수 있는 것도 이런 엄마들의 각양각색 덕분이었다.

"어떤 캐릭터를 의도한 게 아니라 이미 활동하는 분들을 찍다보니 도드라진 분이 있는 건데, 아쉬운 건 어머님들 캐릭터가 사실 더 매력적이다. 그걸 영화에 다 담진 못했다. 본인들도 서로 친하지 않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웃음). 자주 싸우기도 하는데, 평소에 언니 동생으로 지내면서 밑바탕에 유대감이 강하다. 자칭 '강서 어벤져스'라며 모바일 메신저 방 이름을 지었더라. 그 표현에 저도 동의한다. 어벤져스 못지않게 활약하셨지.

제가 감히 그분들을 평가할 순 없지만 그분들의 활동을 보면 하나의 릴레이 달리기는 하는 느낌이었다. 이미 자녀가 성인이 돼서 특수학교 혜택을 볼 수 없는 엄마들은 자신들이 겪은 어려움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나섰다. 그 마음이 매력적이고 존경스럽다. 사실 이미 학교는 나와 상관없는 일일 수도 있잖나. 근데 후배 엄마들에게 그걸 물려주고 싶지 않아 하신다. 정작 청소년기 아이를 둔 어머님들은 아이 때문에 활동하는 데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 여유가 있는 어머님들이 나서는 면에서 제가 많이 배운 게 있다."


물론 이 사회에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하고, 교육 또한 그래야 한다는 것에 감독도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장애인의 탈시설을 강조하는 흐름에도 그게 맞다. 하지만 교육 문제에 있어서 여전히 한계와 빈틈이 존재한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는 게 감독의 말이었다. 

"이왕이면 장애인, 비장애인 같이 어울리는 게 좋다. 초등학교까진 괜찮은데 중학교부턴 너무 입시 중심 교육이라 어려움이 있더라. 물리적으로 같이 있을 뿐이지 통합 교육이 안 되는 여건으로 보인다. 특수학교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이미 중학교에 아이를 보낼 때 인원이 꽉 차서 못 보내는 일도 많더라. 아이 상황에 맞게 통합교육과 특수교육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적 관심과 논의가 필요하다."
 
 다큐멘터리영화 <학교 가는 길>의 김정인 감독.

다큐멘터리영화 <학교 가는 길>의 김정인 감독. ⓒ 이선필

 
변화가 일어나다

그간 <하늘 연어> <내사랑 한옥마을> 등 4편의 다큐멘터리를 발표한 김정인 감독은 이번 영화로 첫 극장 개봉을 경험하게 됐다. "약 5년간 준비했는데 이렇게나 시간이 많이 걸릴 줄 몰랐다"며 그는 "어머님들 기대에 못 미칠까 그게 참 힘들었다. 이 작품 이후 계속 다큐를 할지 다른 길을 택할지도 생각해볼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지난해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공개됐을 때 한 어머님이 '투쟁할 때 우리만 있는 줄 알아서 굉장히 외로웠는데 영화를 보니 곁에 머물러 준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며 고맙다고 하셨다.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은자님은 비장애인 큰딸에게 '나중에 내가 세상을 떠나고 동생과 단둘이 남겨질 때 이 영화를 보고 엄마가 열심히 뜨겁게 세상을 살았다는 걸 알고 열심히 살아주면 좋겠다'고 했다더라. 참,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헤아릴 수도 없다. 

저 또한 영화 이후 작지만 어떤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지하철에서 장애인을 만나면 피할 때가 있었는데 이젠 전혀 그러지 않는다. 속으로 그분에게 어떤 재능이 있을지 상상하게 된다. 제 딸도 제가 5년간 이 영화를 붙들 때 옆에 앉아 숙제도 하고 지켜보기도 했다. 처음엔 '저 언니 왜 저렇게 행동해?'라던 아이가 이젠 언니 오빠 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을 기점으로 감독은 특정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확장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한 NGO 단체에서 일하던 시절 촬영한 사람들을 다시 찾는 이야기도 막연하게 꿈꾸고 있다. "내공을 더 쌓아야 한다"며 웃어 보이는 그의 모습에서 선한 의지가 느껴졌다.
학교 가는 길 김정인 발달장애인 강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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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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