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는 전신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고가의 장비나 특정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생활스포츠로 꼽힌다(물론 고가의 선수용 마라톤화도 있지만). 현재 국내의 마라톤 인구는 약 400만 명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10명 중에 한 명 정도는 건강을 위해 혹은 취미로 마라톤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전에는 매년 날씨가 따뜻해지는 4월부터 11월까지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가 1년에 200회 넘게 열리곤 했다. 

하지만 마라톤은 결코 만만한 종목이 아니다. 42.195km를 풀코스로 달리려면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 한국 신기록을 보유한 이봉주의 경우 2시간 7분 20초 동안 100m를 약 18초의 속도로 일정하게 달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는 성인남성 중에도 100m를 18초에 뛰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42.195km를 100m당 18초의 속도로 달렸다는 건 일반인의 기준에선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속도다.

그래서 마라톤 동호인들은 보통 풀코스를 3시간 내에 완주하는 이른바 '서브 쓰리'를 목표로 삼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역시 보통 의지와 체력으로는 달성하기 힘든 기록이다. 그런데 지난 2001년 19세의 나이로 풀코스를 2시간 57분7초에 완주한 자폐성 장애인이 있었다. 그리고 2005년 배형진씨의 감동스토리는 정윤철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져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바로 조승우 주연의 영화 <말아톤>이다. 
 
 <말아톤>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었음에도 전국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말아톤>은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었음에도 전국 5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 (주)쇼박스

 
<말아톤>으로 포텐 폭발시킨 특급 유망주

계원예고 시절부터 뮤지컬 무대에 오르며 배우의 꿈을 키웠던 조승우는 1999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서 이몽룡 역에 캐스팅되며 단숨에 한국 영화의 특급 유망주로 떠올랐다. 영화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조승우는 <와니와 준하> <후아유> <YMCA야구단>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험을 쌓다가 2003년 영화 <클래식>에서 손예진과 애절한 멜로 연기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감동시켰다. 

2004년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에 캐스팅돼 또 한 번 거장과 영화를 찍은 조승우는 2005년 <말아톤>에서 5살 지능을 가진 자폐증 장애인 연기에 도전했다. 조승우는 초원이의 순수함을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열연을 펼쳤고 <말아톤>은 전국 510만 관객을 모으며 크게 흥행했다. 조승우는 <말아톤>을 통해 대종상 영화제와 백상예술대상을 비롯한 국내외 5개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휩쓸며 유망주의 껍질을 완전히 벗었다.

조승우의 전성기는 2006년 최동훈 감독의 <타짜>에서도 이어졌다. 영화 <타짜>에서 원작 속 고니와는 다른 매력을 선보인 조승우는 대한민국 영화연기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전성기를 열었다. 비록 군입대 전에 선보인 <고고70>과 <불꽃처럼 나비처럼>, 전역 후 복귀작이었던 <퍼펙트 게임>이 만족스런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조승우의 커리어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에게는 '뮤지컬'이라는 또 다른 강력한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데뷔 직후부터 영화와 뮤지컬을 병행한 조승우는 다소 기복을 보이는 영화와 달리 뮤지컬에서는 아이돌 출신 김준수와 함께 최고의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배우로 명성을 떨쳤다. 조승우는 뮤지컬 배우로서 섬세한 연기와 정확한 발음, 그리고 요소요소에 들어가는 발군의 애드리브로 관객들을 사로 잡았다. <헤드윅>과 <지킬 앤 하이드>,<맨 오브 라만차>,<닥터 지바고> 등은 많은 관객들을 열광시켰던 조승우의 뮤지컬 대표작들이다.

2012년 <마의>를 시통해 드라마로 영역을 넓힌 조승우는 2012년 MBC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이병헌과 함께 출연한 <내부자들>에서 우장훈 검사 역으로 자신의 흥행 성적 신기록(915만 명)을 세웠다. 조승우는 2017년과 작년 최고의 웰메이드 범죄 스릴러로 꼽힌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1,2를 마쳤고 올해는 지난 4월에 종영된 jtbc드라마 <시지프스>에 출연해 명불허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가장 지루한 종목으로 500만 관객을 울렸다
 
 조승우는 <말아톤>을 통해 20대 중반의 나이에 5개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조승우는 <말아톤>을 통해 20대 중반의 나이에 5개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 (주)쇼박스

 
사실 마라톤은 관전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지루한 종목이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부분의 선수들이 비슷한 자세와 호흡으로 같은 방향을 향해 달리기만 하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말아톤> 역시 기본적으로 자폐를 가진 초원이(조승우 분)가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꿈이라는 '서브쓰리'에 도전하는 단순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말아톤>이 500만 관객을 울릴 수 있었던 비결은 스포츠보다 가족의 이야기를 더욱 중요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관객들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지하철역 장면이 대표적이다. 초원이는 지하철에서 성추행범으로 오해 받으며 궁지에 몰리자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라고 반복적으로 소리친다. 아마도 곤경에 처하면 자신의 상황을 알려 도움을 받으라고 교육을 받은 모양이다. 자신을 3인칭으로 칭한 것은 엄마(김미숙 분)가 평소에 했던 말을 따라 하는 초원이의 말버릇 때문이었다. 초원이는 동물원에서 버림 받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야기가 초원이와 엄마, 그리고 마라톤에 집중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나머지 가족들은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사춘기를 겪고 있던 동생(백성현 분)은 형에게만 쏟아지는 엄마의 관심 때문에 반항을 하기도 한다.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는 아빠(안내상 분) 역시 가족들의 생활비와 초원이의 훈련비를 마련하기 위해 고생이 많을 것이다. 아빠가 야구장에서 동생에게 "중원이, 아빠랑 둘이서 살래?"라고 넌지시 던진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

엄마는 여러 이유로 초원이에게 마라톤을 포기시키려 하지만 초원이는 엄마 몰래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대회장으로 향한다. 엄마는 그런 초원이를 말리러 대회장을 찾아가고 초원이는 집으로 가자는 엄마의 눈을 바라보며 "초원이 다리는?"이라고 해맑게 묻는다. 엄마가 초원이에게 기운을 넣어주기 위해 구호처럼 외치게 했던 그 말을 엄마 입을 통해 들은 초원이는 기어이 '서브쓰리'에 성공한다.

<말아톤>이 장편영화 데뷔작이었던 정윤철 감독은 첫 영화로 500만 관객을 모으며 일약 떠오르는 신예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07년 김혜수,유아인 주연의 <좋지 아니한가>, 2008년 황정민, 전지현과 함께 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가 연이어 흥행 실패하면서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입지가 좁아졌다. 정윤철 감독은 2017년 이정재와 여진구를 내세우고도 80만 관객에 그친 <대립군>을 끝으로 다음 작품을 선보이지 못하고 있다.

초원이의 든든한 지원군 손정욱 코치
 
 이기영(왼쪽)과 조승우의 연기호흡은 <말아톤>을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이기영(왼쪽)과 조승우의 연기호흡은 <말아톤>을 보는 또 다른 재미다. ⓒ (주)쇼박스

 
과거 보스톤 마라톤에서 1위를 했을 정도로 유명한 마라토너였던 손정욱(이기영 분)은 은퇴 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음주운전으로 사회봉사 200시간 명령을 받았다. 그는 초원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으로 봉사시간을 채우게 됐고 거기서 자폐마라토너 초원이를 만났다. 처음엔 귀찮다는 이유로 코치직을 꺼려 하지만 엄마의 간곡한 부탁과 정성으로 결국 초원이의 일대일 지도를 맡게 된다.

처음엔 운동장만 뛰게 하며 성의를 보이지 않지만 두 사람은 자두 사건을 계기로 가까워졌고 찜질방, 경마장 등 각종 친목활동(?)을 함께 하며 본격적으로 친해진다. 특히 한강에서 작은 대회에 출전해 함께 손을 잡고 뛰며 페이스 조절 훈련을 할 때는 코치와 선수가 아닌 마라토너끼리의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초원이에게 얼룩무늬 런닝화를 사주고 엄마가 마라톤을 포기시키려 할 때 끝까지 설득하려 한 인물 역시 손정욱 코치였다.

손정욱 코치를 연기한 배우 이기영은 80년대 중반부터 영화와 드라마, 연극무대를 넘나들며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인 배우다. 드라마 <타짜>에서는 전라도 짝귀, <자이언트>에서는 조필연(정보석)의 라이벌 민홍기, <펀치>에서는 이태준 검찰총장(조재현)의 형 이태섭을 연기하며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배우다. 최근에는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에서 전여빈이 연기한 재연의 삼촌 쿠토를 연기했다.

<다모>에서 이서진의 아역, <천국의 계단>에서 권상우의 아역을 맡으며 유명해진 백성현은 <말아톤>에서 초원이의 동생 중원이를 연기했다. 10대 시절까지만 해도 또래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을 만큼 독보적인 아역배우였기 때문에 <말아톤>에서도 매우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어느덧 30대가 된 백성현은 성인배우가 된 후에도 <아이리스2> <화정> <닥터스> <보이스> 등에 출연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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