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타이틀

전주국제영화제 타이틀 ⓒ 전주국제영화제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고등학생 가혜(박한솔 분)는 집안의 가장이다. 아르바이트로 치킨집 배달을 하며 동생 광현(박지한 분)의 몫까지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두 사람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어른이나 가족은 없다.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정해진 아르바이트 시간이 끝나면 칼같이 추가 요금을 요구하는 것도 그녀에게는 생존 방법이다. 작은 융통성도 사치다. 그녀가 유일하게 자신에게 허락하는 자유는 배달 다닐 때 사용할 헬멧을 개인용으로 구입하는 정도다. 공용으로 쓰는 헬멧은 여러 사람의 땀냄새가 배어 쓸 수 없을 정도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착하고 성실한 학생으로 비쳐질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아르바이트로도 메울 수 없는 경제적 어려움과 이제 막 중학교에 입학한 동생의 요구들은 학교에서 훔친 물건으로 대신하고 있다. 어떤 물건은 중고로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기도 하고, 또 다른 물건은 집으로 가져와 직접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동생이 MP3 플레이어 타령을 해서 국산 기기를 훔쳐다 주기도 했다.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제일 좋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래도 가혜 자신 스스로 정해놓은 경계는 분명히 있다.

홀로 감당하기에 벅찬, 삶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생활을 이어가던 중, 광현이 갑자기 햄버거 이야기를 꺼낸다. 학교에서 반장으로 선출이 되었는데 자신을 뽑아준 반친구들에게 햄버거를 돌려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가혜는 동생의 말에 놀란듯한 눈치다. 글피 후면 방학이 시작하는 마당에 아직까지 동생이 학교에서 반장이 되었다는 것도 몰랐다는 사실에 한 번, 동생의 말대로 햄버거를 돌리려면 목돈이 또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한 번이다. 

"누나, 혹시 햄버거 사 줄 수 있나? 원래 반장 되면 다 돌리잖아."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오토바이와 햄버거> 스틸컷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오토바이와 햄버거>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2.
동생의 반친구들에게 돌릴 햄버거. 어렵게 균형이 맞춰지고 있던 저울에 큰 바위 하나가 던져진 셈이다. 올해 광현이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연초에 교복을 사고 새 가방에 신발에, 밀린 월세까지 해결하려다 보니 이미 치킨집 사장님에게 가불도 할 수 있는 만큼 끌어다 쓴 상황. 함께 몰려다니는 친구들 중 하나인 강섭(박강섭 분)에게도 급히 돈을 빌려보지만, 쉽게 빌릴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이맘때, 무리의 친구들이 길가에 세워져 있던 오토바이의 세이프 박스를 뜯어 훔치려던 사건이 벌어진다. 훔친 오토바이를 대포로 팔면 돈을 조금 챙길 수 있다는 것. 주인에게 걸려 잡힐 뻔 했는데도 다시 공원에 모여 웃고 떠드는 걸 보니 딱히 돈 때문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강섭만 보더라도 집에서 학원비를 다 내줄 정도가 되는데도 수업을 빠지고 있으니, 애초에 가혜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른 상태다.

원래부터 질이 좋은 친구들은 아니다. 몰려 다니며 오토바이로 폭주나 뛰고 담배나 피러 다니는, 밤새 피씨방이나 들락거리는 인물들. 그나마 강섭이 제일 순한 편에 속하긴 하지만 이들이 함께 몰려다니는 걸 보면 손가락질을 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들 무리에 속해있는 가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나마 동생 광현이 있어 금연도 하고 몰려다니는 일도 자제하는 것 같지만 일반적인 고등학생의 모습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다.

하지만 가혜는 무리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이건 아니라고. 학교 안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과 학교 밖에서 물건을 훔치는 건 다르다고. 이건 범죄라고 말이다.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오토바이와 햄버거> 스틸컷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오토바이와 햄버거>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3.
가혜의 이야기가 쌓이는 동안, 한 쪽에서는 동생 광현의 이야기가 쌓인다. 그래도 누나 가혜보다는 아직 철이 덜 든 중학생 광현. 누나가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 직접 본 적도 많으니 현재 상황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반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학기초에 바로 하지 못했다. 누나가 자신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모두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누나가 나쁜 형들과 어울려 다니며 담배를 피는 것도 싫고, 집에 혼자 남겨지는 것도 싫다. 무엇보다 싫은 건 누나가 어디선가 물건을 훔쳐오는 것 같다는 사실이다. 이번 MP3 플레이어도 그렇다. 누나는 친구 강섭이 형이 준 거라고 말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좋아 보이는 물건을 갖고 싶은 것은 사실이나 훔치는 것과 관련된 일들에 연루되고 싶지는 않다. 자신 때문에 누나가 물건을 훔치고 다닌다는 것도 싫다. 누나가 가져다 준 MP3 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면서도 짜증이 불쑥 치밀어 오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혼자 남겨진 교실에서 책상 위에 놓인 다른 친구의 아이팟을 보고 있을 때 마침 들어와 의심스런 눈길로 쳐다보던 세미(김민서 분)에게 소리를 지른 것 역시 비슷한 이유다. 순간적으로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은 아직 그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고, 그런 시선을 받고 싶지도 않다. 아니 어쩌면, 한순간이라도 다른 친구의 물건을 보고 욕심을 냈던 자신의 마음에 지르는 소리였을지도 모르겠다.

04.
가불을 해서라도 동생에게는 좋은 교복, 비싼 교복을 해주고 싶은 누나의 마음이 햄버거 앞에서는 달라질까? 반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말하지 못한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겨서라도 가혜는 햄버거를 돌릴 돈을 구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오토바이를 한 대만 훔쳐서 돈을 나눠 갖자는 강섭의 제안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 일이 분명히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어차피 똑같아. 교실 털이 하나 오토바이 털이 하나. 걸리면 큰일나는 거지 뭘 쫄아."

결국 가혜는 누군가의 오토바이를 훔쳐 판 돈으로 동생의 반 친구들에게 햄버거를 돌린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위하려는 누나가 싫은 동생과 그렇게 해서라도 동생을 뒷바라지하고 싶은 누나의 마음이 부딪히며 잠깐의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런 누나의 마음을 광현도 모르지는 않는다. 겉으로는 몸부림을 치면서도 결국 가혜가 주는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 뒷안장에 앉는다.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오토바이와 햄버거> 스틸컷

제 22회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오토바이와 햄버거> 스틸컷 ⓒ 전주국제영화제


05.
가족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삶을 자신의 등 위에 업고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이 자신의 삶도 제대로 가늠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그것이 일탈이나 비행의 변명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가혜와 광현의 삶이 분명히 달라질 것이라 믿는다. 경제적으로는 아직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관계와 정의의 경계만큼은 훨씬 더 빨리 명확해 질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바로, 이 영화를 연출한 최민영 감독이 일탈로 점철된 주인공의 삶을 유의 깊게 지켜보고 표현해 낸 유일한 이유일 것이다.
영화 전주국제영화제 오토바이와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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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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