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편집자말]
 
<어센트: 타임슬립> 영화 포스터

▲ <어센트: 타임슬립> 영화 포스터 ⓒ (주)풍경소리

 
스탠턴(셰인 워드 분), 키아(사만다 슈니츨러 분), 개릿(벤틀리 카루 분) 등이 속한 특수부대는 동유럽 어딘가에 위치한 적의 비밀기지를 습격해 적군을 모두 사살하고 기밀문서를 가져오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는다. 성공리에 작전을 마친 후에 본부로 귀환한 이들은 고장이 난 엘리베이터 대신에 계단을 이용하여 위로 이동한다.

그런데 계단은 끝없이 반복되고 자칫 머뭇거리기라도 하면 사이렌 소리와 함께 밑에서 따라오는 유령에 잡아먹히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다. 유일하게 바깥으로 연결된 비상구는 그들을 비밀기지 습격작전을 벌였던 과거의 시간과 장소로 안내한다. 

영화, 드라마, 소설이 '시간 여행'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타임머신>처럼 주인공이 자신의 목적에 따라 시간대를 넘나드는 '타임워프'가 있다. 다음으로 개인 혹은 집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 여행을 하는 초자연적 현상을 일컫는 '타임슬립'은 의도된 장치로 시간을 여행하는 타임머신과 성격을 달리 한다. <시간여행자의 아내>(2009)가 대표적인 타임슬립 작품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처럼 과거로 가서 변화를 주어 현재의 결과를 바꾸려는 시도는 '타임리프'라 구분한다.

마지막으론 특정한 시간이 계속 반복되는 개념을 의미하는 '타임루프'가 있다. 과거 여러 소설을 통해 다루어졌던 설정 '타임루프'를 하나의 장르로서 확립한 작품은 1986년 출간된 소설 <리플레이>이며 영화에서 중요한 타임루프물은 <사랑의 블랙홀>(1993)이 꼽힌다.

최근엔 타임루프를 SF로 변형한 <소스 코드>(2011)와 게임 내러티브로 재해석한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호러 <해피 데스데이>(2017), 미스터리 <7번째 내가 죽던 날>(2017), 액션 <리스타트>(2019), 로맨틱 코미디 <팜 스프링스>(2019)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한 타임루프 영화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어센트: 타임슬립> 영화의 한 장면

▲ <어센트: 타임슬립> 영화의 한 장면 ⓒ (주)풍경소리

 
영화 <어센트: 타임슬립>(영화제에 처음 공개할 적엔 제목은 '층'을 뜻하는 '스테어(stair)였고, 현재 영국과 호주의 개봉 제목은 '상승'이란 뜻의 '어센트(ascent)', 미국은 '비공식 비밀작전'이란 의미의 '블랙 옵스(black ops)'란 제목을 붙였다)도 타임루프물에 속한다. 메가폰은 <판도리카>(2016), <레드우드>(2017), <블랙 사이트>(2018), <아웃포스트 369>(2021) 등 저예산 장르 영화를 만들어 온 폴 페이튼 감독이 잡았다. 우리에겐 폴 페이튼은 낯선 이름이지만, 영국의 '프라이트페스트'에 연속적으로 초청 받았을 정도로 해외의 장르팬들에겐 친숙하다. 그는 "<사랑의 블랙홀>이 공포 영화로 느껴졌다"며 "타임루프를 다른 각도에서 공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힌다.

<어센트: 타임슬립>에서 끝없는 '계단'에 갇힌 특수부대원들은 영원의 굴레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임무 중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돌아보고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영화 속 주요 무대인 계단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전쟁터를 다른 형태로 시각화한 무대다.

어쩌면 전쟁 중에 저지른 살인, 범죄로 인해 텅 비어 버린 도덕성을 상징하는 곳일지도 모른다. 비밀기지에서 만난 전쟁포로가 던진 "내려가지 마요"란 말의 의미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신의 노여움을 사서 영원히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은 시시포스와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 올라가야 하는 영화 속 저주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인간성을 회복하라는 간절한 호소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센트: 타임슬립> 영화의 한 장면

▲ <어센트: 타임슬립> 영화의 한 장면 ⓒ (주)풍경소리

 
<어센트: 타임슬립>은 극단적인 색상을 사용하여 시각적 스타일을 구축한다. 비밀기지 습격 작전 시퀀스는 파란색, 계단 장면은 빨간색과 녹색을 활용하는 식이다.

폴 페이튼 감독은 줄거리의 이해를 돕고 영화의 주제를 강화하기 위해 색상 필터를 과감히 썼다고 설명한다. 아마도 워낙 저예산인 까닭에 촬영과 조명의 편의를 주기 위함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으리라 짐작된다. 물론, <서스페리아>(1977)의 다리오 아르젠토처럼 세련되게 색을 사용하지 못한 탓에 과잉이 넘쳐 촌스럽다는 인상을 지우긴 어렵다.

<사랑의 블랙홀>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타임루프' 설정과 <큐브>(1997)가 능숙하게 선보인 '단일 세트'를 가져와 주로 계단(영국의 한 쇼핑센터 계단에서 촬영했다고 한다)을 무대로 만들어진 <어센트: 타임슬립>은 저예산 장르 영화의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제작비의 한계로 인해 배우, 후반 작업, 액션, CGI는 A급 규모의 영화에 비하여 확연하게 떨어진다. 하지만,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장르의 재미만큼은 놓치지 않는다. 적은 제작비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자신감 넘치게 펼치는 톰 페이튼 감독. 장르의 팬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프라이트페스트 2019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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