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와 김윤석, 설경구는 뛰어난 연기와 티켓파워를 겸비한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라는 점 외에도 연극배우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과거 연극배우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대중들에게 얼굴이 덜 알려졌기 때문에 처음 영화에 출연할 때는 주연보다는 조연이나 단역을 맡는 경우가 많다. 특히 김윤석의 경우 2006년 <타짜>의 아귀를 만나기 전까지 제법 긴 시간 동안 여러 영화에서 출연분량이 많지 않은 조연으로 출연했다.

반면에 TV 탤런트로 어느 정도 입지를 굳힌 배우들의 경우엔 연극배우 출신들에 비해 영화 주연 데뷔가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이미 대중들에게 충분히 얼굴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스크린에서도 낯설지 않게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아들과 딸>과 <파일럿>, <서울의 달> 등으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다가 1995년 영화 데뷔작 <닥터봉>으로 순조롭게 충무로에 안착한 배우 한석규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최근엔 모델 출신 배우들이 스크린에서 새롭게 각광 받고 있다. 특히 함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좌절시키는 비현실적인 얼굴크기를 자랑하는 강동원은 모델 출신 배우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많은 대중들이 '영화배우 강동원'의 시작을 '우산씬'으로 대표되는 <늑대의 유혹>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강동원은 이미 그 전에 순진한 약사 역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바로 2004년 1월에 개봉한 <그녀를 믿지 마세요>였다.
 
 강동원은 김하늘이라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강동원은 김하늘이라는 좋은 파트너를 만나 스크린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 시네마서비스

 
모델 출신 배우 강동원의 영화 데뷔작

부산에서 태어나 창원과 거창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강동원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모델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이후 강동원은 2003년 드라마 <위풍당당 그녀>에서 배두나의 고향오빠를 연기하며 연기자로 데뷔했다.

2003년 일요 아침드라마 < 1%의 어떤 것 >에서 재벌손자 역을 무난히 소화하며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강동원은 영화 쪽으로 눈을 돌려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 출연했다. 강동원의 어설프지만 최선을 다하는 연기는 코믹 연기에 물이 오른 김하늘과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거함과 맞붙었음에도 불편하지 않은 웃음으로 전국 120만 관객을 동원하며 비교적 선전했다.

그리고 강동원은 그 해 여름 <늑대의 유혹>을 통해 우산 하나로 영화 역사상 가장 심쿵한 장면(여성관객 한정)을 만들어내며 최고의 대세남으로 떠올랐다. 비록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초대박 흥행작은 없지만 강동원은 출연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관객들 사이에서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그 중에는 사형수를 연기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같은 우울한 영화도 있었고 <전우치>처럼 유쾌한 영화도 있었다.
    
2016년 <검사외전>으로 1000만 관객에 단 30만이 부족한 970만 관객을 동원한 강동원은 같은 해 <마스터>로 700만 관객을 모은 후 2017년 대단히 의미 있는 작품에 출연했다. 바로 장준환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 1987 >이었다. 강동원은 이 작품에서 이한열 열사를 교과서에 실린 위인이 아닌 누군가의 첫사랑이자 친구, 그리고 의를 행하는 학생으로 묘사하며 극장 안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강동원은 2018년 김지운 감독의 <인랑>에 출연했다가 데뷔 후 처음으로 큰 시련을 경험했다. 하지만 작년 <부산행>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 <반도>를 통해 코로나19로 극장가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380만 관객을 동원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강동원은 올해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한일합작영화 <브로커>에서 송강호, 배두나, 이지은(아이유)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대가족의 예비 며느리가 된 프로사기꾼 그녀
 
 매운 고추를 한 가득 입에 넣는 연기는 대스타가 된 지금 다시 하긴 매우 힘들 것이다.

매운 고추를 한 가득 입에 넣는 연기는 대스타가 된 지금 다시 하긴 매우 힘들 것이다. ⓒ 시네마서비스

 
사기 혐의로 복역 중이던 영주(김하늘 분)는 가석방 심사에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교도관들을 울리고 가석방을 따낸다. 하지만 언니의 결혼식으로 가는 기차에서 우연히 희철(강동원 분)과 엮이게 되고 가방과 반지가 뒤바뀌는 사건이 발생한다. 결국 영주는 가방을 찾기 위해 희철이 사는 충청도 용강읍(실제로는 북한 평안남도에 있는 지명이다)에 찾아간다(그리고 반지를 잃어버린 희철은 힘들게 준비한 프러포즈에 실패한다). 

희철의 가족들은 처음 보는 영주를 희철의 애인이라고 오해하고 영주가 산부인과에서 나오는 장면이 발각되며 그녀의 임신까지 확신한다. 희철은 가족들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만 희철의 집을 찾는 과정에서 이웃들에게 들은 이야기로 그럴 듯한 스토리를 만든 '프로사기꾼' 영주의 명연기에 가족들은 모두 속아 넘어간다. 코믹한 장면을 슬픈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표현하는 김하늘의 연기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영주가 할머니(김지영 분)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가족들은 그녀를 더욱 대견하게 여기는 반면에 동네의 자랑이었던 희철은 '천하의 몹쓸 놈'으로 낙인 찍혀 내쫓긴다. 그러던 중 고추총각 선발대회에 출전하기로 했던 친구 영득(이천희 분)이 부상을 당하고 가족들은 희철이 고추총각 선발대회에 대신 출전하는 조건으로 집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한다. 그리고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영주와 희철은 점점 가까워진다. 

희철은 고추총각 대회에서 앞 출전자와 장기자랑 참가곡이 겹치며 위기를 맞지만 영주의 임기응변으로 설운도의 <여자여자여자>를 선곡하며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는다. 그리고 최종라운드인 고추 많이 먹기 대결에서 고추를 양손에 들고 입에 쑤셔 넣는 투혼(?)을 발휘한 끝에 상대의 기권을 이끌어낸다. 고추총각 선발대회 장면은 신인이기에 가능했던, 어쩌면 앞으로는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강동원의 희귀영상이다.

하지만 희철이 고추총각에 등극하던 날, 재은(남상미 분)이 용강에 찾아오면서 영주의 정체가 탄로나고 만다. 그리고 영주는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 가족들 앞에서 진실을 털어놓고 떠난다. 영주는 용강을 떠난 후 식당에서 일을 하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희철은 영주를 찾아낸다. 그리고 어리바리한 약사 최희철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참치(?) 강동원이 김하늘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영화는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시골에서의 삶을 꺼렸던 '도시 여성' 남상미
 
 강동원과 도시로 나가 살기를 원했던 남상미(왼쪽)는 결국 강동원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강동원과 도시로 나가 살기를 원했던 남상미(왼쪽)는 결국 강동원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 시네마서비스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는 주인공 김하늘과 강동원 외에도 송재호와 김지영, 임하룡, 류태호 등 노련한 중견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그리고 <논스톱4>에서 엠씨몽과 러브라인을 형성했던 이영은이 강동원의 여동생 역으로 출연해 각종 리액션을 담당하고 훗날 '천데렐라'로 유명해지는 이천희가 강동원의 고향친구를 연기했다. 하지만 특히 눈길을 끈 배우는 강동원의 진짜 애인으로 출연했던 재은 역의 남상미였다.

남상미는 널리 알려진 대로 왕십리 H대학교 앞에 있는 햄버거 가게의 얼짱 알바생으로 유명했다. 흔히 '어느 동네 몇 대 얼짱'이라 불리는 인물들은 대부분 얼짱대회 출신(구혜선, 박한별 등)인 경우가 많은데 남상미는 정말로 햄버거집 알바생으로 유명해진 경우다.

2003년 MBC 드라마 <러브레터>로 데뷔한 남상미는 제목이 비슷한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과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 나란히 출연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는 희철의 반지 분실로 인해 황당한 상황을 겪는 여자친구 재은 역을 맡아 시골에서 약사 생활을 하는 남자친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도시 여성을 연기했다. 남상미는 영화 말미에 희철이 있는 용강을 찾아 희철에게 이별을 통보하며 영화의 해피엔딩에 기여한다.

영화에서는 주로 조연으로 활약하던 남상미는 2005년 드라마 <달콤한 스파이>에서 처음 단독 주연을 맡았다. 이후 <불량가족>, <개와 늑대의 시간>, <식객>, <천하무적 이평강>, <인생은 아름다워>, <빛과 그림자>, <결혼의 여신>, <조선 총잡이>, <김과장> 등 여러 드라마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 강동원 김하늘 남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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