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포들이 임대료 문제로 건물주와 갈등한다는 보도가 간간이 나온다. 노포란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를 의미하는데 오랫동안 한자리에서 영업하며 그 지역 문화를 형성해 국가나 지자체가 역사를 인정해 지역 브랜드로 선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임대인과의 갈등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MBC < PD수첩 >은 지난 20일, 생존 전쟁 1부 '건물주와 벼랑 끝 노포들'편에서 을지 노가리 골목의 상징인 을지OB베어 등의 노포를 통해 건물주와 임차인의 갈등을 집중 조명했다. 

40년간 이곳에서 호프집을 운영해 온 을지OB베어가 계약기간 만료 한 달을 앞두고 나가라는 통보를 받게 된 건 지난 2018년. 임대료를 두 배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돌아온 건 건물주의 명도소송이었다. 이 소송에서 승리한 건물주는 지난 3월 100여 명의 용역을 동원해 가게 강제 철거를 집행하려 했다.

을지OB베어 사장이 견인차 밑에 깔리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 가운데 이 가게의 철거를 막은 건 단골 손님과 이웃들이었다. 건물주는 < PD수첩 > 제작진과의 통화에서 을지OB베어가 있던 자리에 커피숍을 차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취재 뒷이야기가 궁금해 이 편을 취재한 김경희 PD를 지난 21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김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PD수첩>의 한 장면

의 한 장면 ⓒ MBC

 
- 지난 20일 방송된 MBC < PD수첩 > 생존 전쟁 1부, '건물주와 벼랑 끝 노포들'편 취재연출 하셨잖아요. 
"사안이나 사건이 계속 벌어지니까 저희도 숨 가쁘게 달려온 것 같아요."

- 임대인과 오래된 가게의 갈등을 다루셨는데.
"지난 3월 11일 을지OB베어가 2차 강제 철거 시도를 당했어요. 최근에 좀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는데 여러 채널을 통해 보도가 됐어요. 대체 어떤 사연이 있나 보게 됐죠. 오래된 가게들 같은 경우 임차인들이 어떻게 오랜 시간 가게를 유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유지하면서 문제점은 없었는지 등을 알아보기 위해 일단 을지OB베어 쪽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 을지OB베어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있을 텐데.
"최근 몇 년 전부터 뉴트로 열풍들도 이어지고 옛것에 대한 젊은 층들의 호기심도 많잖아요. 저 역시 그런 부분에 관심이 있었죠. 을지OB베어 같은 경우 을지로 노가리 골목과 공구상들이 어우러져서 40년 넘게 있다 보니까 분위기가 좋더라고요. 그리고 서울시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고요. 또 중소벤처기업부는 30년 이상 대대로 이어지면서 우수성을 평가받은 점포들을 '백년가게'로 선정했어요. 을지OB베어도 백년가게 중 하나고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만드는 데 기여했던 가게죠."

- 을지OB베어는 을지로에서 상징적인 존재잖아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2018년 을지OB베어를 백년 가게로 선정했고, 서울시도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한 바 있는데요. 그럼 가게를 보존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신경 써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저도 그 부분에 대해 지자체와 해당 부처에 물어봤어요. 그런데 백년가게나 미래 유산으로 선정된 가게들과 건물주 사이에 갈등이 있다면, 이건 사적 가치 영역이기 때문에 법원의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고 이야기해요. 가게를 보전을 할 수 있게끔 경제적으로 뒷받침을 해 주거나 하는 혜택도 없습니다."

- 백년가게로 지정했을 땐 뭔가 의미가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일 텐데요.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는 건 무책임한 것 아닐까요.
"저도 동감합니다. 백년가게로 선정된 가게들과 건물주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 임차인들은 임대료를 맞춰주겠다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건물주가 바뀌고 오래된 가게에 대한 가치를 별로 못 느껴서 나가달라고 (임차인들에게) 이야기하죠. 실제로 전국에 백년가게로 선정된 곳을 보니까 그 위치가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 이런 사례가 을지OB베어 말고도 많나요?
"공씨책방이라는 곳도 을지OB베어의 지금 상황을 다 겪은 업체라고 보시면 되거든요. 지자체에서 인정받은 오래된 책방이고 도시의 역사도 베어 있죠. 그런데 가치가 있다고 선전만 됐을 뿐, 건물주가 바뀌면서 명도소송에서 패소했어요. 그래서 결국 이사를 하게 됐죠."

- 공씨책방 같은 경우 장소를 아예 옮긴 거죠.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새로운 건물로 옮겨서 운영중이에요. 원래는 좀 더 규모 있게 하셨죠. 지금은 원래 장소에서 100m 떨어진 건물 지하에서 하고 계시니까 예전보다 많이 규모가 줄어든 거예요."
 
  MBC < PD수첩 >은 지난 20일, 생존 전쟁 1부 '건물주와 벼랑 끝 노포들'편 한 장면.

MBC < PD수첩 >은 지난 20일, 생존 전쟁 1부 '건물주와 벼랑 끝 노포들'편 한 장면. ⓒ MBC

 
- 명도소송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세요.
"명도소송은 저희가 방송 프로그램에도 자막으로 설명했었는데요. 쉽게 말해서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나가줬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하고, 임차인은 더 있게 해달라고 이야기했을 때 임대인이 법적으로 임차인을 내보낼 수 있도록 소송하는 거예요."

- 그럼 임차인에 대한 법적인 보호장치는 없나요?
"방송에도 나왔지만 작년 9월에 이뤄진 상가임대차보호법 일부법률개정안을 보면 차임감액청구권이라고 있어요. 그게 뭐냐면, 코로나19 때문에 자영업자분들이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으시잖아요. 그래서 임대료를 일시적으로 낮춰달라고 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게끔 법으로 보장하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도 일부고요. 가장 큰 보호장치는 지난 2018년도에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임차인의 계약갱신청구권이 5년에서 10년으로 늘어난 부분이죠. 조금이나마 임차인 입장에서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시민단체나 자영업자분들이 노력해서 그나마 개정할 수 있었다고 전문가분들은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근데 예를 들어서 일본이나 영국이나 프랑스는 임차인이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이 있지 않은 한 계약기간을 무제한으로 해 놓기도 하거든요. 오랜 가게들이 한 곳에서 오래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건데 우리 나라는 그런 게 없는거죠. 임차인이 내쫓길 위기에 몰렸을 때 사실상 보호장치가 없다고 보입니다."

- 노포들은 이미 10년 이상 가게를 운영했기 때문에 계약갱신청구권은 의미가 없는것 아닌가요?
"이분들에겐 전혀 해당 사항이 없죠."

- 방송을 보면, 사실 임차인들이 무료로 있었던 게 아니고 임대료를 낸 건데, 마치 임대인들이 도와주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하던데.
"저도 그 부분에 있어서 취재하면서 좀 씁쓸했습니다. 심지어 노포들 같은 경우는 임대료를 (임대인의 요구대로) 올려주면서도 그 자리에 오래 있기를 바라거든요. 오래된 음식점들 같은 경우는 이사를 하게 되면 손맛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 것 때문에 옮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세요."

- 하나의 문화로서 역할을 하던 오래된 가게가 사라지면 그 지역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요?
"시민들이 오래된 가게에 대한 가치를 이야기해주고 지자체에서도 이 부분이 가치있다고 생각되면 도시개발을 할 때 이런 부분을 반영할 거라고 전문가분들은 이야기하세요. (오래된 가게가) 없어진다고 비단 단골들만 아쉬워하는 게 아니거든요. 프랜차이즈 등의 자본이 들어오는 게 다 좋은 건 아니잖아요. 나라에서 인정받은 점포들이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제도적인 방안이 필요할 것 같아요."

- 건물주 말 한마디로 임대료가 정해진다고 방송에서 잠깐 언급되는데, 이해가 안 가더라고요.  
"우리나라는 표준임대료라는 게 없어요. 저희도 취재하면서 여긴 임대료가 얼마고, 얼마가 저렴하고 비싼지 알아보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부동산은 얼마나 받고 있는지 잘 모르시더라고요. 왜냐면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 '이 정도는 주셔야 할 것 같다' '지난달에 옆 가게도 30만 원 올려서 우리도 그 정도는 받아야 할 거 같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시세가 형성되는 거예요. 그래서 정해진 임대료가 없어요."

- 법적으로 표준 임대료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상가 같은 경우는 조금 더 건물주의 사적인 영역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그래도 갈등을 없애려면 '이 가게의 임대료는 얼마구나' 정도는 알게끔 표준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 청량리 수산시장에 대한 사례도 소개됐는데요. 새 건물주인 대명종합건설은 자신들이 사들인 40개 점포에 대해 임대료를 30~40% 올려달라고 요구했죠. 재개발 등으로 가게를 비워야 할 시에는 그에 따라야 한다는 조건도 명시했더라고요.
"이행각서와 임대차계약서가 건물주 위주로 돼 있다고 변호사도 이야기하더라고요. 법적으로도 문제되는 게 없죠. 왜냐하면 임차인이 서명을 했으니까요. 임차인이 서명할 당시 강제성을 띠었나를 입증해야 하는데 그 강제성이라는 게 포박당하는 수준이 입증돼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입증하는 길이 쉽지 않죠."

- 그럼 청량리 수산시장 임대인들이 계속 장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그 자리에서 오래 장사하고 싶지만 재개발 등이 시작돼 나가야 한다면 대체 보존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이야기하세요. 사실상 명확한 대안이 없는 셈이죠. 굉장히 씁쓸합니다."(한편, < PD수첩 > 방송에서 대명종합건설 측 관계자는 장사 기간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재개발이 진행되기 전까지 계속 임차인이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 PD수첩 >이 대명종합건설 측에 공식적인 답변을 요청했지만 어떤 답도 들을 수 없었다).

-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 PD수첩 >이 임차인·임대인 갈등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했잖아요. 근데 오래된 가게에 좀 더 초점을 맞춰서 방송을 제작하고 싶었던 이유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지만, 현실적으로 오래 자영업을 하신 분들에게 혜택이 없어요. 그렇다면 어떤 제도가 만들어지고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할까 사례를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분들이 오랫동안 한 곳에서 장사를 해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골목을 형성하고 가치를 올리는 데 일조했다는 거죠. 그것에 대한 가치를 지자체에서도 인정해주고, 경제적인 논리 측면에서도 보호해줘야 건물의 가치가 상승하고 도시의 가치가 상승하고 국가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 아닐까요. '법적으로 이건 사적 영역이라 도와줄 수 없다'고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상생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임대인들이 서로 상생하기 위해서 임대료를 감면해주고 그러면서 세제 혜택을 받는 형태로 착한 임대인 운동 같은 것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개별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게 아니라 정부차원에서 좀 더 현실적으로 임차인의 생존권·재산권 같은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게 법률 개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김경희 PD수첩 노포 임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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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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